모기가 빨간색을 포함해 특정 색상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워싱턴대 제공
대표적인 여름 불청객 모기가 극성을 부리는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지구 온난화로 여름철이 길어지면서 모기의 활동 기간도 길어졌다. 5월부터 서서히 개체 수가 늘어 6~ 9월 중 왕성한 활동을 한다. 여름철 우리에게 달려들어 피를 빨아대는 모기는 암컷이다. 이는 산란에 필요한 단백질을 보충하려는 행위다.
그동안 모기가 흡혈 대상을 찾는 데 쓰는 신호는 주로 동물의 호흡과 땀, 피부 온도 세 가지로 알려져 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진이 이번에 표적을 찾아내는 새로운 신호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그 네번째 신호는 색깔이며, 모기를 유인하는 공통된 색상은 빨간색이다. 녹색은 모기의 관심을 가장 덜 받는 색깔이었다.
이전 연구에서도 모기가 숙주를 찾기 위해 시각을 이용하는 것은 확인한 바 있지만 그 정확한 기제는 규명하지 못했다. 모기에 물리지 않으려면 올 여름부터는 옷색깔에도 신경을 써야 할 모양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모기는 시각과 후각의 합동작전을 통해 흡혈 대상을 찾는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 모기는 먼저 우리가 내뿜는 호흡에 포함된 이산화탄소 같은 특정 화합물의 냄새로 대상의 위치를 파악한 뒤, 2차로 그 대상과 관련한 빨강, 주황, 검정 등의 색상을 눈으로 찾아내 그쪽을 표적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모기는 그러나 녹색이나 보라색, 흰색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사람의 손가락에 앉은 모기. 피부색과 상관없이 사람 피부에서 나오는 빛 신호도 주황색 계열의 긴 파장이다. 워싱턴대 제공
연구진은 뎅기열, 황열병, 지카바이러스 등을 옮기는 이집트숲모기(Aedes aegypti)를 비롯한 3종의 암컷 모기를 실험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어 짝짓기를 한 뒤 먹이를 주지 않은 50마리의 암컷을 카메라가 장착된 소형 풍동 터널에 넣었다.
터널 바닥에는 여러 색상의 점이나 사람 손 같은 다양한 모양의 시각물을 배치했다. 그런 다음 1시간 후 상자 안으로 이산화탄소를 쏘아주었다. 이산화탄소는 사람과 포유동물의 호흡 과정에서 배출되는 기체다.
실험 결과, 모기들은 이산화탄소가 방출되기 전에는 터널 바닥에 표시해 놓은 여러 색상의 점을 무시하고 천장과 벽을 무작위로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산화탄소가 상자 안에 들어오자 바닥의 점 색상에 따라 모기의 행동이 달라졌다. 점 색상이 녹색(green)이나 파란색, 보라색일 경우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붉은색, 주황색, 검은색, 청록색(cyan) 점을 보면 그쪽을 향해 날아갔다. 후각으로 공격 대상을 특정한 뒤, 눈으로 정확한 공격 부위를 찾아내는 역할 분담 방식이다.
연구를 이끈 제프리 리펠 교수(생물학)는 보도자료에서 이를 “길을 가다가 파이나 계피 냄새가 날 경우 근처에 빵집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빵집이 어딨는지 찾는 것”에 비유했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색상의 파장은 대략 450나노미터(파란색,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인 650나노미터(붉은색) 사이에 있다. 연구진은 모기가 사람의 눈과 같은 방식으로 색깔을 인지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모기가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은 후 반응을 보인 색깔은 510~660나노미터의 주황색~빨간색 계열이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의 피부에서도 피부색과 상관없이 주황색~빨간색 계열의 장파장 신호가 나온다. 모기가 맨살을 잘 찾아내 공격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대로라면 빨간색 계열 옷을 입지 않거나 피부 노출 부위에 다른 색 옷을 입으면 모기에 물리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연구진은 실제 피부색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람의 피부색과 같은 색소를 뿌린 카드와 연구원의 맨손으로 별도의 실험도 진행했다. 이 실험에서도 모기는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산화탄소가 뿌려진 뒤에나 시각적 자극체를 향해 날아갔다. 특정 피부색에 대한 선호도는 관찰되지 않았다.
필터로 카드의 장파장 신호를 차단하거나 연구원의 맨손에 녹색 장갑을 끼우면 이산화탄소를 뿌려줘도 그쪽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유전자 실험도 추가했다. 암컷 모기에서 붉은색을 선호하도록 유도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그러자 이산화탄소가 있어도 특정 색을 선호하지 않았다.
또 이산화탄소 냄새를 맡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난 모기는 어떤 색상에 대한 선호도도 보여주지 못했다. 장파장 신호(붉은색 계열)를 볼 수 없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모기는 이산화탄소가 있어도 색맹이나 마찬가지였다.
모기들이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색은 빨간색이며, 다른 색상에 대해선 모기 종마다 선호도가 약간씩 다르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이번 연구가 모기의 숙주 탐색 시스템 전모를 확인한 건 아니다. 리펠 교수는 “이번 실험은 모기가 숙주를 찾는 첫번째 단계를 보여준 것”이라며 “더 많은 연구를 통해 피부 분비물 같은 다른 시각 및 후각 신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숲모기가 아닌 다른 모기들의 경우엔 선호하는 숙주에 따라 다른 색상을 선호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에 함께 실험한 말라리아모기(Anopheles stephensi)와 열대집모기(Culex quinquefasciatus)는 이집트숲모기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말라리아모기는 이집트숲모기와 비슷한 색깔 선호도를 보였지만 빨간색보다 검은색을 더 선호했다. 열대집모기는 빨간색 뿐 아니라 파란색에도 관심을 보였다.
연구진은 또 색상만 아니라 명암도 행동을 유발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단일 색상보다는 체크무늬가 모기를 더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영국 본머스대의 카산드라 에드먼즈(법의생물학) 강사는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빨간색과 검은색 체크무늬를 피하면 모기에 물릴 위험이 줄어들 수 있지만 종간 색상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효과가 있다는 보장은 없다”고 논평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