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보이저 2호가 1200만km 거리에서 촬영한 천왕성. 위키미디어 코먼스
태양계 행성 중 상대적으로 탐사에서 소외된 얼음행성에 대한 본격적인 탐사가 10년 안에 시작될 가능성이 커졌다.
과학자들이 태양계의 7번째 행성인 얼음왕국 천왕성을 향후 태양계 행성 탐사의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의 자문기구격인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의 ‘행성과학과 우주생물학 10년 조사 위원회’는 최근 발표한 2023~2032년 우주탐사 프로그램 보고서에서, 향후 10년간 추진할 대형 우주탐사 프로그램의 1순위로 천왕성 탐사선(UOP)을 권고했다. 예상 비용은 42억 달러(5조2600억원)다. 천왕성 탐사는 10년 전 보고서에선 화성과 유로파(목성 위성)에 이은 3순위였다. 유로파 탐사선은 2024년 발사 일정이 잡혀 있다.
이 보고서는 나사와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우주탐사와 관련한 방침을 정할 때 길잡이 역할을 한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나사는 그동안 위원회의 권고를 따랐다”며 천왕성이 다음 10년 탐사의 우선순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2031년이나 2032년에 천왕성 탐사선을 보내면 목성 중력의 도움을 받아 비행할 수 있어 유리하다고 밝혔다. 천왕성 도착 예상 시기는 지구 출발 13년 후다.
천왕성과 해왕성은 대기 중의 메탄 성분으로 인해 둘 다 푸른빛을 띠지만, 해왕성이 좀 더 짙다. 나사 제공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라빗 헬레드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행성과학)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지구형 암석 행성과 목성형 가스 행성의 중간 크기인 천왕성과 해왕성은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독특한 행성 유형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두 행성은 모두 얼음행성이다. 작은 암석 핵 주위를 물, 암모니아, 메탄 등으로 이뤄진 거대한 얼음 맨틀이 휘감고 있다. 수소, 헬륨, 메탄 등 대기 구성 물질도 서로 비슷하고 크기도 비슷하다. 두 행성이 모두 푸른빛을 띠는 건 메탄 때문이다. 메탄은 붉은빛을 흡수하고 푸른빛은 반사한다. 다만 해왕성보다 2배나 더 두터운 천왕성 대기의 연무 층이 푸른빛을 희석시켜 천왕성이 더 옅다.
보고서가 해왕성보다 천왕성에 우선순위를 둔 이유는 기술적 문제 때문이다. 나사 고다드우주비행센터의 에이미 사이먼 박사는 ‘네이처’에 “천왕성 탐사선은 현재의 로켓 기술로도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태양과의 평균 거리가 29억km(지구~태양 거리의 19배)인 천왕성까지는 스페이스엑스의 대형 로켓 팰컨헤비로도 우주선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태양에서 45억km 떨어져 있는 해왕성까지 보내려면 현재 개발 중인 나사의 차세대 로켓 에스엘에스(SLS)처럼 더 큰 로켓이 필요하다.
지구와 천왕성의 크기 비교. 지름이 지구의 4배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천왕성 탐사는 1986년 보이저 2호가 유일하게 8만km 거리에서 근접 통과비행하면서 단 몇 시간 동안 관측 임무를 수행한 것이 사실상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관측 자료에서 천왕성에 지구 질량의 몇배에 해당하는 수소와 헬륨이 있는 것을 보고 과학자들은 천왕성을 매우 특이한 천체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발견한 5000여개의 외계행성의 35%가 천왕성과 비슷한 크기로 확인됐다. 보고서는 천왕성 탐사를 통해 다른 외계행성들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천왕성은 태양계 행성 중 특이하게 자전축이 거의 수평으로 누워 있다. 과학자들은 행성 형성기에 지구 크기만한 원시행성과 충돌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 영향으로 자기장도 지구처럼 일정하지 않고 비대칭적으로 복잡하게 회전한다. 또 토성처럼 13개의 고리가 있으며 위성도 27개가 된다. 천왕성의 구름에선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황화수소도 발견됐다.
천왕성의 고리. 자전축이 거의 수평인 관계로 고리가 수직으로 형성돼 있다. 나사 제공
천왕성 탐사선은 궤도선과 대기 탐사선으로 구성한다.
주력 우주선인 궤도선은 수년 동안 천왕성을 공전하면서 오로라 현상을 초래하는 자기장의 특성을 파악한다. 궤도선은 또 천왕성 위성 가운데 일부를 골라 정밀 조사한다. 과학자들은 얼음 표면 아래에 물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티타니아와 오베론 등을 조사 대상 후보로 꼽았다. 대기 탐사선의 주된 임무는 천왕성의 강력한 바람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다.
천왕성 탐사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기술보다 예산이다. 나사는 현재 진행 중인 화성 표본 수집-귀환 임무에만도 앞으로 수년간 70억 달러 이상을 더 투입해야 한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태양계 행성 탐사 프로그램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유로파 탐사선 ‘유로파 클리퍼’ 예산도 애초 42억5천만 달러에서 50억 달러로 늘어난 상태다. 토성 위성 타이탄 등 다른 우주탐사 임무도 예산 문제로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
‘네이처’는 나사가 천왕성 탐사를 정식으로 채택할 경우 비용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유럽우주국과 손잡을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우주국이 지난해 발표한 ‘장기 우선순위’에는 다른 나라 우주국과의 협력을 통한 얼음행성 연구가 포함돼 있었다.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 카시니 탐사선이 9만6천km 거리에서 찍은 사진이다. 나사 제공
위원회가 천왕성 다음으로 높은 우선순위에 둔 것은 토성의 위성인 엔셀라두스다. 예상 비용은 49억 달러다. 토성의 6번째 큰 위성인 엔셀라두스는 땅속 바다에서 얼음 표면을 뚫고 유기물이 포함된 물기둥이 분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엔셀라두스 탐사의 목표는 표면에 착륙선 오비랜더(Orbilander)를 보내 2년간 물기둥이 퇴적시킨 물질에서 생명체 흔적을 찾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에는 처음으로 ‘킬러 소행성’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나사의 준비 상태에 대한 분석도 포함돼 있다.
나사는 얼마 전 예산 절감을 이유로 소행성 추적 우주망원경 ‘니오 서베이어’(NEO Surveyor) 발사 시기를 2026년에서 2028년으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우주망원경은 광학망원경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소행성들을 적외선으로 식별한다. 보고서는 그러나 지구근접 소행성을 가능한 한 일찍 탐지하는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킬러 소행성 추적 프로그램이 과학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만큼 ‘니오 서베이어’가 다시 예정대로 추진될지 주목된다.
780쪽에 이르는 이번 보고서는 137명의 과학자가 참여한 가운데 527개 백서 검토와 2년간의 토론을 거쳐 작성됐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