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파라날천문대에서 촬영한 밤하늘의 은하수. 레이저가 가리키는 곳이 은하수 중심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는 혼자인가?”
이 물음은 아마도 인류 문명이 탄생한 이후 동서양 사상가들이 품어온 근본적 화두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인류가 우주 시대를 열면서 절실하게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도 외계인 또는 외계생명체의 존재다.
1969년 달 착륙의 꿈을 이룬 인류는 1970년대에 들어서자 우주에서 혹시라도 조우할지 모를 미지의 외계문명을 향해 잇따라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낸 방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우주선에 실어보내는 것이었다. 1972년과 1973년 발사한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에는 금속판을, 1977년에 보낸 보이저 1호와 2호엔 골든레코드를 실었다. 파이어니어 금속판엔 남자·여자의 모습과 태양계 구조 그림이, 보이저 골든레코드엔 다양한 이미지와 자연의 소리, 한국어를 포함한 55개 언어의 인사말 등이 담겨 있었다.
다른 하나는 지상에서 우주를 향해 직접 전파 메시지를 쏘는 것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으론 1974년 지름 300미터의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을 통해 보낸 전파 메시지가 처음이다. 메시지의 목적지는 2만5천광년 떨어져 있는 구상 성단 M13(허큘리스 대성단)이었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당시 관측한 밤하늘에서 별들이 가장 많이 밀집돼 있던 성단이었기 때문이다.
새로 작성한 메시지의 일부. 왼쪽은 남녀의 모습과 DNA 이중나선, 오른쪽은 태양계 구성도.
아레시보 메시지 송출 50주년을 앞두고 미국항공우주국(나사) 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과학자들이 두번째로 보낼 전파 메시지 초안을 작성해 지난달 국제학술지 ‘갤럭시스’(Galaxies)에 발표했다.
새 메시지의 이름은 ‘은하의 신호등’(BITG=Beacon in the Galaxy)이다. 메시지 작성을 주도한 제트추진연구소 조너선 지앙 박사는 새 메시지를 작성한 이유에 대해 “이전에 보낸 메시지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이제 더 자세한 정보를 보낼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아레시보 메시지를 기반으로 내용을 보완하고 다듬었다. 첫 메시지엔 사람의 형체와 DNA의 구조, 태양계의 모습, 지구의 주요 원소 이름, 10진법을 뜻하는 1에서 10까지 숫자, 메시지를 보낸 전파망원경 그림 등이 210바이트의 2진법 코드로 표시돼 있었다. 드레이크 방정식(인간과 교신 가능한 지적 외계생명체 수를 계산하는 식)의 고안자인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가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 등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것이다.
1974년 아레시보 메시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 왼쪽부터 DNA 이중나선, 사람 형체, 아레시보 망원경 모양.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번에 작성한 메시지는 20만4천비트(2만5500바이트)로 아레시보 메시지보다 분량이 121배 더 많다. 기본적인 수학, 물리학 개념을 비롯해 총 13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는 이번 메시지는 두 가지 면에서 이전보다 더 정교해졌다.
첫째, 은하수 내의 지구 위치를 더 정확히 표시했다. 아레시보 메시지에선 펄서(중성자별)를 이정표로 삼았다. 하지만 펄서의 위치는 일정하지 않고 구별이 쉽지 않은 게 문제였다. 과학자들은 이번엔 우리 은하의 구상 성단을 기준 좌표로 사용했다. 이 둥그런 별무리는 밝게 빛나서 식별하기가 쉽기 때문에 훌륭한 이정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둘째, 메시지를 받은 외계인이 언제 보낸 메시지인지 알 수 있도록, 시간 기점을 표시해 놓았다. 외계인에게 어떻게 시간 기점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은 수소 원자의 특성을 이용했다. 성간 우주먼지에 존재하는 중성 수소(양성자1, 전자1로 구성된 수소 원자)는 다른 원자나 전자와 충돌하면 고에너지 상태로 변한다. 그러나 일정 기간(1천만년)이 지나면 일부가 다시 저에너지 상태로 돌아가는 ‘스핀 반전’ 현상이 일어난다. 이 스핀반전 현상을 시간 측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기대는 선진적인 외계문명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새 메시지엔 새롭게 설계된 회신 주소도 있다. 만약 답장을 받는다면 어떻께 할까? 공동연구진의 일원인 필립 로젠(전 셰브론에너지기술기업 연구원)은 “그 다음엔 외계인에게 체스 규칙을 보내 게임을 해보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을 해 보면 외계문명의 논리적 사고력과 전략, 계획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태양(Sun)은 우리 은하의 중심(가운데 밝게 빛나는 원)에서 2만8천광년 떨어져 있다. 나사 제공
새 메시지를 보낸다면 어디로 보낼까?
50년 전 아레시보 메시지는 전달 가능성보다는 먼 외계까지 전파를 보낼 수 있다는 기술적 시연에 중점을 뒀다. 이번에는 지적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에 보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연구진은 우리 은하 중심에서 2000~6000파섹(6520~1만9560광년, 1파섹은 3.26광년) 사이에 있는 성단을 수신처로 제안했다. 이는 은하 중심에서 1만3000광년이 떨어진 곳에서 은하 탄생 후 80억년 시점에 지적 생명체 출현 확률이 가장 크다는
은하 시뮬레이션 결과(2021.1.18. ‘갤럭시스’)에 기반한 것이다. 참고로 태양계는 은하 중심에서 2만8천광년 떨어져 있다. 장 박사는 인터넷 과학미디어 ‘라이브사이언스’에 “만약 외계인이 있다면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메시지를 보내는 시기는 3월이나 10월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지구 태양과 은하수 중심을 잇는 선에서 90도 각도 위치에 있는 이 시기에 보내면 태양에 의한 배경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시지를 보내려면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50년 전 메시지를 보냈던 지름 300미터의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더는 사용할 수 없다. 2020년 무너져 내린 뒤 철거됐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새 메시지를 보낼 후보로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에 있는 지름 500미터의 전파망원경 패스트(FAST), 일명 ‘톈옌’(天眼)이나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세티(외계지적생명체탐색) 연구소의 알렌 망원경을 꼽았다. 그러나 두 망원경 모두 지금은 전파 수신만 가능하다. 메시지를 보내려면 송신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 지장 박사는 메시지를 당장 보낼 계획이 있는 건 아니며 초안을 토대로 본격적인 토론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이 새 메시지를 보낼 후보로 제안한 지름 500미터의 중국 전파망원경. CGTN 동영상 갈무리
아레시보 메시지를 보낼 당시와 지금의 우주 인식 사이엔 큰 격차가 있다.
당시만 해도 인류가 아는 행성은 태양계 안에 있는 8개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태양계 밖의 별들도 행성을 거느리고 있고, 이들 중 상당수에는 액체 상태 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까지 확인한 외계행성이 5천여개에 이른다. 지구보다 조금 크거나 작은 암석행성만 해도 1천개가 넘는다. 외계 생명체 탐색의 기대치가 그만큼 높아졌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을 기대할 수는 없다. 목적지까지 가는 데만도 수천년이 걸린다. 아레시보 메시지는 수십년째 날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목표 지점(M13)까지 총 이동거리의 0.2%밖에 가지 못했다. 지앙 박사는 “비록 얼마후 우리는 사라지지만, 우주라는 바다에 ‘우리가 여기 있다’는 메모를 담은 병을 띄워 보내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전파망원경을 이용해 외계인에게 전파 메시지를 보내는 시도는 아레시보 이후에도 몇차례 더 있었다. 칼 세이건이 창설한 행성협회에 따르면 인류가 우주에 보내고 있는 전파가 미치는 범위는 최대 200광년 거리다.
1999년과 2003년에는 러시아 과학자들이 5.0파섹 이내의 가까운 별들을 향해 ‘코스믹 콜스’(Cosmic Calls)라는 이름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2017년엔 샌프란시스코의 메티(METI) 인터내셔널이라는 비영리단체가 12광년 거리의 적색왜성에 메시지를 보냈다.
메티는 최근 두번째 메시지 전송 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10월4일 지구로부터 물병자리 방향으로 39.6광년(12.1파섹) 떨어져 있는 적색왜성 트라피스트1(TRAPPIST-1)을 향해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이 별을 공전하는 7개의 행성 중 3개가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있는 ‘골디락스’ 구역에 있다. 메시지에는 원소 주기율표와 몇가지 음악이 담긴다. 이 조직 대표인 더글러스 바코치(Douglas Vakoch) 박사는 만약 외계생명체가 이 메시지를 받고 답신을 한다면 80년 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별과의 거리, 행성의 지름과 질량 관측 자료를 기반으로 상상한 트라피스트1 행성계의 모습. 나사 제공
그러나 미지의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시도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이들은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외계인을 향해 지구와 인류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넘기는 건 잠재적 위험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2012년 개봉한 <배틀쉽>은 이런 상상을 반영한 SF영화다. 이 영화엔 인류가 외계에 보낸 신호로 지구의 존재를 알게 된 외계인들이 지구를 쳐들어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버클리캘리포니아대의 세티연구소 수석과학자 댄 워디머는 ‘월스트리스저널’에 “천문학자의 99%는 이것이 나쁜 아이디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 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20여명의 과학자, 기업가들과 함께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우리에게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예측할 수 없는 다른 문명에 신호를 보내는 것은 모든 지구인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며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전 세계적인 과학적, 정치적, 인도주의적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전의 스티븐 호킹(이론물리학)도 외계문명과 접촉하려는 시도에 대해 경고한 적이 있다. 그는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외계 선진 문명을 만나는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콜럼버스를 만나는 것과 같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론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도 지난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인류 역사상 최대 실수가 될 것”이라고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세티연구소의 전파망원경 ‘앨런’. 세티연구소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의 앤더스 샌드버그 박사는 ‘뉴사이언티스트’에 “우리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은 그들에게 군대를 보낼 주소지를 알려주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외계문명에 메시지를 보내려면 세간의 비웃음, 기술적 난관, 그리고 그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인지에 대한 의구심이라는 세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샌드버그는 “그런 위험은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은하통신을 시도하기 전에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서 함께 결정을 하는 게 더 현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의 우려에도 새 메시지를 작성한 과학자들은 낙관적인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이들은 “수십만년 전 현대인류의 먼 조상때부터 우리는 소통을 추구해 왔다”며 ‘외계인이 땅딸막하고 의뭉스럽더라도 만일 그들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들에 대해 알고 싶다’는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하며 이 말에 메시지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세이건의 말에는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온 호기심과 과학적 탐구 정신이 깔려 있다.
그러나 과학적 명분에도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토론토 요크대의 캐스린 데닝(인류학) 교수가 몇년 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을 향해 던진 질문은 논란의 핵심을 잘 드러내준다. “누가 지구를 대변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 과학자들이 일방적으로 지구의 잠재적 위험 수준을 결정해도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원치 않는 상황에서 힘을 가진 몇몇이 메시지를 보내도 괜찮을까?”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