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세포로 분화된 인간 배아. 위키미디어 코먼스
2018년 11월 중국의 한 과학자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자를 교정한 쌍둥이 아기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해 세계 생명과학계에 큰 파문이 일었다.
당사자인 허젠쿠이 중국 난팡과기대 교수가 채택한 방법은 배아에서 유전자 가위(크리스퍼-카스9)를 이용해 에이즈 감염에 관여하는 CCR5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 유전자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세포에 침투하기 위해 달라붙는 세포 표면의 수용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다.
당시 그는 쌍둥이의 아빠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어 아기들의 감염 위험을 없애기 위해 유전자편집한 배아를 이식했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생명과학자들은 그의 시술이 생명 윤리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비난했고 학술지 ‘네이처’와 ‘미국의학협회저널’(JAMA)은 그의 연구논문 게재를 거부했다. ‘네이처’는 그해 말 허젠쿠이를 ‘올해의 인물 10인’에 선정하며 그를 ‘크리스퍼 악당’으로 호칭했다. 진상 조사에 착수한 중국 사법 당국은 그를 불법 의료 행위죄로 기소한 뒤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제 형 집행기간 만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세계 최초의 유전자편집 아기의 미래를 둘러싼 또 다른 윤리적 논란이 일고 있다고 과학저널 ‘네이처’가 보도했다.
‘네이처’에 따르면 중국의 저명한 생명윤리학자 두 명은 최근 유전자편집 아기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보호하기 위한 연구센터를 설립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과학계 인사들은 의도 자체는 환영할 만하지만 불필요한 감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에서 생명윤리학의 초석을 놓은 중국사회과학원 추런중 박사와 화중과학기술대 레이루이펑 교수는 공동으로 작성한 성명에서 어린이에 대한 특별 보호 필요성을 전제로 “유전자편집은 아이들의 게놈에 오류를 일으켜 후대에 유전될 수 있다”며 향후 배아 유전자 검사를 포함해 이들의 유전자를 정기적으로 검사해 이상 유무를 살펴볼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또 허젠쿠이와 그의 소속기관인 난팡과기대, 그리고 정부가 아기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이들의 의료 비용을 지원하고 일차적인 재정적, 도덕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젠쿠이와 가까운 한 소식통은 ‘네이처’에 그가 형기를 마치고 곧 출소할 것이며 연구원으로 복직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18년 11월 홍콩에서 열린 제2회 인간게놈편집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하고 있는 허젠쿠이. 그는 20분 동안 약 60개의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배아 유전자편집과 이식 과정을 발표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알프레드디킨연구소 의료인류학자 에벤 커크시(Eben Kirksey)는 허젠쿠이가 아이들에게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애초 허젠쿠이는 아이들에게 18세까지 건강보험을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엄마가 쌍둥이를 조산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건강보험 적용이 거부돼 자신이 직접 비용을 지불했다고 한다.
허젠쿠이의 배아 유전자편집을 통해 태어난 아기는 쌍둥이 외에도 2019년에 태어난 한 명이 더 있다. 성별은 모두 여성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전 세계에서 배아 유전자편집 시술을 받고 탄생한 아기들은 이제 유아가 된 이 세명이 전부다. 추 박사는 “다른 아기들이 이후 더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허젠쿠이에 대한 형사 처벌을 목격한 중국 과학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유전자편집 배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자가 중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러시아 모스크바의 쿨라코프국립산부인과의학연구센터의 분자생물학자이자 유전학자 데니스 레브리코프는 이미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난청과 관련된 유전자 GJB2를 편집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나 아직 이 기술 사용에 동의하는 러시아의 청각 장애인 부부를 찾지 못했다. 레브리코프는 ‘네이처’에 “조만간 원하는 부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희망자를 찾으면 먼저 배아 유전자편집을 마친 뒤 당국에 배아 이식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허젠쿠이를 2018년 ‘올해의 인물 10인’에 선정하며 그를 ‘크리스퍼 악당’으로 호칭했다. 네이처
추와 레이 박사의 제안에 대해 연구자들은 몇가지 우려를 표명했다.
커크시는 소녀들이 심리적, 사회적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유전자 편집이 아이들에게 특별히 해를 끼쳤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두 박사의 제안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특별한 보호는 더 강력한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추 박사도 유전자 편집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그는 그러나 “누가 그것을 확신할 수 있겠느냐”며 정기적 유전자 검사는 그런 불확실성을 해소해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개탄 버지오(유전학) 교수는 유전자 편집이 어느 정도 이뤄졌으며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잠재적으로 건강에 끼칠 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평가하기 위한 정기적인 유전자 검사가 평생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떤 유형의 유전적 변이가 일어나서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 켄트대 조이장 교수(사회학)는 명확하게 역할이나 책임을 정해 놓지 않으면 훗날 검사 권한이 남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유전자편집 아기라는 낙인이 아이들에겐 가장 큰 위험 요소일 수 있다”며 “소수의 엘리트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것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는 커녕 위험을 더할 뿐”이라고 말했다.
체외수정 기술 개발자인 로버트 에드워즈(왼쪽)와 최초의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 브리태니카
1978년 태어난 최초의 시험관아기 루이스 브라운(Louise Brown)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불임부부들에게 희망을 준 체외수정 시술은 지금은 보편적으로 시행되지만 당시엔 큰 충격이었다. 시험관에서 인위적으로 수정을 시도하는 방식을 놓고 윤리적, 종교적 논쟁이 벌어졌다.
커크시 박사는 “브라운은 평생 동안 온갖 의료 검사를 받았으며, 이 바람에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유전자편집 아기들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만약 유전자편집 아기들의 신상이 대외적으로 노출돼 루이스 브라운같은 공인이 된다면 아기들의 삶은 정상적 삶을 위한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