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배아 줄기세포로 만든 제노봇 3.0 이동·자가치유 능력 이어 재생산도 성공 주변 세포들 끌어모아 4세대까지 복제 상처·질환 맞춤형 치료 약물에 응용 기대
인공지능이 설계한 알파벳 C 모양의 부모 제노봇(오른쪽)이 복제를 하는 과정에 형성된 공 모양 세포. Credit: Douglas Blackiston and Sam Kriegman
모든 생물은 성장 과정을 거친 뒤 개체를 쪼개거나 싹을 틔우거나 새끼를 낳는 방식으로 재생산을 한다.
로봇도 생물처럼 세대 재생산이 가능할까?
지난해 최초의 살아 있는 로봇으로 주목받은 세포로봇 ‘제노봇’이 자가복제까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미국 버몬트대, 터프츠대와 하버드대 생체모방공학연구소 과학자들은 제노봇이 다른 세포를 흡수하는, 새로운 생물학적 재생산 방식을 통해 자가복제를 하는 데 성공했다고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제노봇 3.0으로 명명된 이 로봇은 지난해 실험용으로 많이 쓰이는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분화시켜 만든 제노봇 1.0과 2.0에 이은 3세대 로봇이다. 제노봇이란 이름은 이 개구리의 학명 ‘제노푸스 라에비스’(Xenopus laevis)에서 따왔다.
지난해 초 공개된 제노봇 1.0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라 특별한 방식으로 수백개의 세포가 결합한 심장세포와 피부세포로 이뤄져 있다. 엔진 역할을 하는 심장세포가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몸통인 피부세포를 앞으로 전진시킨다. 제노봇은 세포 에너지가 다할 때까지 최대 10일간 작동했다. 연구진은 이어 세포 표면에 섬모를 추가해, 수영하듯이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주변환경에 따라 몸 색깔까지 바꿀 수 있는 제노봇 2.0을 선보였다. 제노봇 2.0은 손상을 입어도 제 모습으로 복귀할 수 있는 자가 치유 능력도 갖췄다.
부모 제노봇(노란색)이 주변 세포들을 이리저리 밀며 덩어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Credit: Douglas Blackiston and Sam Kriegman
복제 거듭할수록 크기는 작아져
연구진이 이번에 공개한 제노봇 3.0에는 자가복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추가됐다. 눈송이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 듯, 주변의 세포들을 이리저리 밀어 뭉치는 방식으로 2세를 만들어낸다.
연구진은 우선 개구리 배아에서 장차 피부세포가 될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했다. 세포는 분열을 거듭해 5일 안에 약 3천개로 이뤄진 공 모양의 덩어리(구체)를 형성했다. 이 세포 덩어리는 지름 0.5mm에 겉은 미세한 섬모로 덮여 있다. 이어 연구진은 줄기세포들이 흩어져 있는 배양 접시에 세포 덩어리들을 넣었다. 그러자 세포 덩어리들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면서, 흩어진 세포들을 모아 새로운 세포 덩어리를 만들었다. 세포들이 뭉치면서 점차 새로운 제노봇이 만들어졌다.
연구를 이끈 조시 봉가드 버몬트대 교수(컴퓨터과학)는 “하나의 부모 제노봇이 덩어리를 쌓기 시작하면, 그 옆의 또 다른 부모 제노봇이 더 많은 세포를 그쪽으로 밀어주는 식으로 자식들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다만 제노봇 2세는 부모보다 크기가 작다. 복제를 거듭할수록 크기는 더 작아진다. 덩어리를 구성하는 세포 수가 50개 미만으로 줄어들면 이동 및 복제 능력이 상실됐다. 연구진이 확인한 결과 약 6만개의 세포가 있는 접시에서 형성된 12개의 제노봇 그룹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낸 제노봇은 1세대 또는 2세대의 자식을 만들고는 더이상 복제를 그쳤다.
심장세포의 수축·이완으로 움직이는 제노봇 1.0(왼쪽)과 표면에 난 섬모로 헤엄치듯 이동하는 제노봇 2.0.
이제까지 없었던 ‘운동 복제’…기계인가 유기체인가
어떻게 하면 제노봇이 여러 세대에 걸쳐 복제를 하게 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이를 알아내기 위해 세포의 진화 모델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삼각형, 사각형, 불가사리 등 수십억 가지의 제노봇 모양을 테스트한 결과, 1980년대의 고전적인 컴퓨터 게임 ‘팩맨’을 연상시키는 알파벳 ‘C’ 모양의 세포 덩어리가 가장 많은 세대를 낳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시뮬레이션을 토대로 공 모양의 제노봇을 C모양으로 자르자, 변형된 제노봇은 원래 제노봇의 두배인 최대 4세대까지 복제를 진행했다.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움푹 들어간 제노봇의 홈이 세포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다세포 유기체가 자체 성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가 복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봉가드 교수는 “이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자가 복제 방식”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 새로운 복제 방식을 ‘운동 복제’(Kinematic replication)라고 불렀다.
연구진은 이 로봇의 자가복제 방식을 이용하면 향후 상처나 선천적 기형, 암, 노화 등의 치료에서 좀 더 직접적이고 환자 개인에 맞춘 약물 치료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제노봇은 지난해 선보인 이후 논쟁의 대상이 됐다. 제노봇을 기계로 볼 건지,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볼 것인지가 논쟁의 핵심이다. 연구진의 입장은 “전통적인 기계로봇도 동물도 아닌 새로운 종류의 인공물”이라는 것이다.
연구진은 그러나 살아있는 세포를 사용하는 만큼, 윤리적 논란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실험실 내에서 쉽게 절멸시킬 수 있는 안전한 방식으로 연구윤리를 지켜가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