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혁의 의학과 서사(51)
재난의 소비와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재난의 소비와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이탈리아 화가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의 ‘Rosso Plastica M3’(1961).
재난 여행을 떠나 재난에 휩쓸리는 일에 대하여 재난 여행사(작품에서 재난 지역을 관광 상품으로 만든다는 재난 여행은 소설적 허구만은 아니고,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나 난징 대학살기념관 같이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 곳을 방문하는 다크 투어리즘을 과장한 것이다) ‘정글’의 상품 기획자 고요나는 십년 동안 지켜온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움을 깨닫는다. 경멸해 마지 않았던 김 팀장이 자신에게 치근대는 것을 보니, 회사가 자신에게 옐로카드를 내민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즉, 회사가 자신을 쓸모없는 인력으로 보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다. 반격을 위해 퇴사를 시전하는 고 사원, 하지만 김 팀장은 휴가로 회유한다. 이참에, 실적이 나쁜 여행지 중 하나를 골라서 다녀오고, 그 김에 해당 여행지를 접을지 말지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떠밀리듯 고요나가 선택한 곳은, 몇십 년 전 인종 살해가 벌어지던 와중에 싱크홀이 발생한 베트남 남단의 섬 무이.
2014년 과테말라에 생긴 싱크홀. 하수관 관리 부실이 태풍으로 인한 홍수와 겹쳐 만든 재난이다. 출처: 엔피알
진짜 재난을 만나는 법 소설은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이 온갖 회유와 고난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맞서는 모습을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주인공은 매니저와 기업의, ‘자본’의 음모에 참여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현실에서 끈 하나라도 잡기 위해서 타협하는 것이다. (물론 반전이 있지만, 작품을 통해 확인해주시길 부탁한다.) 작품 속에 ‘작가’가 등장해 소설과 작품 속 ‘기획’을 뒤섞는 것이나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일을 병치하여 혼란과 당혹감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소설적 장치는 독자를 매혹시킨다. 하지만, 여기에서 살피고자 하는 것은 작품이 그리고 있는 ‘재난’의 의미다. 작품에는 여러 재난이 나열된다. 주인공이 다니는 회사가 전 세계 각지의 재난을 상품화하는 곳이기에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화산, 지진, 전쟁, 가뭄, 태풍, 쓰나미 등 재난의 종류는 정글의 분류 법칙에 의하면 크게 서른세 가지로 나뉘었고, 거기서 또 152개의 여행 상품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런 재난 지역이, 그 흔적이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난 여행을 떠남으로써 사람들이 느끼는 반응은 크게 ‘충격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 내 삶에 대한 감사 →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재난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재확인한다. 저곳에는 위험이 있지만, 나는 안전하다. 그 거리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상품화의 힘이다.
윤고은의 2013년 소설 ‘밤의 여행자들’ 표지. 8년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아니, 우리가 모두 재난을 만난 지금, 소설은 더 적실하게 다가온다.
코로나19를 정면으로 목도하는 법 코로나19의 현실을 소설 속 관광 상품처럼 누군가 날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는 각자가 볼 수 있는 것을 볼 뿐이고, 거기에는 어떤 잘못도 없다. 단,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쓰고 있는 안경이 이미 어떤 색으로 물들어 있다면, 그래도 우리의 눈을 긍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2021년 7월 4차 대유행 전까지 ‘K-방역의 성공’에 취해 있었다. 효과적으로 확산을 막았다는 의미에선 성공이다. 하지만, 그 성공은 당연히 무언가를 대가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살려야 한다는 경제는 모두의 경제가 아닌 일부를 위한 경제였다. 마찬가지로, 지켜야 한다는 건강은 모두의 건강이 아닌 일부의 건강이었다. 그 뒤에 남겨진, 누구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은 고통은 ‘미증유의 재난’이라는 숫자와 마스크의 스펙터클에 지워지고 있다. 방역을 시작할 때, 처음부터 묻고 고민해야 했다. 이 정책으로 피해를 받는 것은 누구인지를 우선 살펴야 했다. 이미 방역 정책으로 인한 피해가 누군가에게 전가되었다면, 더구나 그 누군가가 그전에도 약자였다면 방역 정책이 성공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는 말로, 그 재난에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진짜 재난을 대신하는, 우리가 인식 가능한 ‘재난’이 상연되고 피해를 입지 않은 우리는 그 거리감을 통해 안도를 느낀다. 우린 코로나19 방역에 힘써야 하고,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모두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우리가 모두 나누어 져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약자가 더 큰 피해를 보는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우리가 쓰고 있는 자본이라는 안경의 가공할 마력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참, ‘밤의 여행자들’이 이번에 영국 추리소설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에서 수상했다. 뛰어난 작품에 걸맞은 수상 소식에 자리를 빌려 축하를 보낸다. 김준혁/연세대 교수·의료윤리학자 junhew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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