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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없애는 코로나?…재택근무가 노동계층을 재편한다

등록 2020-07-06 07:00수정 2020-07-06 10:09

옥스퍼드대 분석 결과, 미국 일자리 52%가 재택근무 가능
재택근무의 확산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 가상회의 플랫폼 줌을 이용해 온라인 회의를 하고 있는 장면. 유튜브 갈무리
재택근무의 확산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가 크다. 가상회의 플랫폼 줌을 이용해 온라인 회의를 하고 있는 장면.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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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순조롭게 정착해 가는 재택근무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지난달 27일 코로나19 상황 정례브리핑을 마치며 이런 당부를 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 악순환 고리에 빠진 상태입니다. 환자가 다시 줄어들면 코로나19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원인입니다. 미래학자들은 이미 사회의 모든 관계가 변화하고 있고 변화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개인의 활동, 사업장의 작업, 음식점의 서비스도 코로나로 달라진 새로운 일상에서는 앞으로 크게 변화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생활속 거리두기 실천이 가능한 시설이나 장소, 모임만 선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세상의 변화를 가장 실감하는 것 중 하나가 재택근무다. 특히 강력한 이동제한(봉쇄) 조처를 취한 서구 선진국에서 재택근무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미국 시엔비시(CNBC)의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2%가 재택근무중라고 답변했다. 전미실물경제협회(NABE)의 4월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0%가 종업원의 5분의1이상을 재택근무시켰다고 답변했다. 한국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시적으로 재택근무제를 시행하는 기업들이 잇따랐다.

하루아침에 현실이 된 재택근무는 예상보다 순조롭게 정착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팬데믹 발발 이후 재택근무를 해온 미국인 노동자 다섯 중 셋은 봉쇄조처가 풀리더라도 재택근무하기를 원했다.

원격 수업은 물론 원격 회의도 일상화됐다. 픽사베이
원격 수업은 물론 원격 회의도 일상화됐다. 픽사베이

재택근무의 연착륙은 발전한 디지털 기술 덕분이다. 가상회의 플랫폼인 줌은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폭증하면서 주가가 올들어 거의 4배나 뛰었다. 봉쇄정책이 한창이었던 4월엔 3주만에 일일 이용자 수가 2억명에서 3억명으로 뛰었다. 기업용 메신저 슬랙도 올들어 분기 매출이 2억달러를 넘어섰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재택근무를 검토하고 도입하는 기업은 늘어갈 것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재택근무로 바뀔 수 있을까? 영국 옥스퍼드대칼 베네딕트 프라이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시티그룹과 함께 미국 전체 일자리의 절반이 재택 근무가 가능하다는 연구보고서 ‘원격근무의 새로운 세상’을 발표했다. 그는 2013년 미국 일자리 중 거의 절반(47%)이 자동화에 의해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당시 미국 702개 직종을 분석해 내놓은 논문 `고용의 미래'는 이후 일자리의 미래 연구에서 고전처럼 인용돼 왔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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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분야 재택근무 가능 비율 80%로 가장 높아

이번에 재택근무 분석에 사용한 자료는 인구조사국의 `미국인 시간 사용 서베이'다. 연구진은 1주일에 3일 이상 재택근무를 한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있는 직종을 재택근무 가능 직종으로 분류했다. 분석 결과 조사 대상 483개 직종의 23%인 113개가 원격근무 전환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주목할 것은 이들 직종 노동자 수가 미국 전체 노동자의 52%에 이른다는 점이다. 업무의 디지털화가 그만큼 많이 진행됐음을 뜻한다.

원격근무할 수 있는 업무 비중이 가장 높은 일자리는 관리, 사업, 금융 관련 직종이었다. 금융 직종이 80%를 웃돌아 가장 높았다. 정보와 교육, 전문 서비스 직종도 60%를 넘었다.

보고서는 특히 소득계층별로 재택근무 여건이 확연히 차이가 나는 데 주목했다. 원격근무가 가능한 전문, 기술 직종의 노동자들은 임금도 높고 코로나19의 영향을 덜 받는다. 반면 웨이터, 미용사, 체력훈련사, 호텔·병원 등의 접수 담당자 등 대면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임금도 낮고 타격도 훨씬 크다. 보고서는 상위 절반의 소득층에선 약 절반 가량이, 하위 절반의 소득층에선 10% 미만이 재택근무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재택근무 확산이 노동자들의 불평등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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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자가 제1계급…유일하게 잘 나가는 노동계급

미국 노동부 장관 출신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코로나19가 미국 노동자들을 새로운 4개 계급으로 재편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중 제1계급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원격근무자들이다. 전체의 35%인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가상회의 등 디지털 도구 덕분에 굳이 사무실에 갈 필요가 없어 코로나19에도 임금이 감소하지 않은, 유일하게 잘나가는 계급이라고 그는 평가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미래의 노동계급은 재택근무자냐 아니냐로 나뉠 판이다.

재택근무 가능 비율은 나라별로도 격차가 크다. 경제의 디지털화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시카고대 베커프리드먼연구소가 85개국을 비교한 연구 결과를 보면, 격차가 10배나 됐다. 아프리카 모잠비크가 5%로 가장 낮았고, 유럽의 룩셈부르크가 53%로 최고였다. 북유럽 선진국들은 40%를 웃돈 반면 저개발국, 개발도상국들은 10~20%대에 머물렀다. 재택근무 가능 비율이 높으면 코로나19의 영향을 더 줄일 수 있다.

온라인 교육(에듀테크)과 통신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전은 재택근무를 촉진하는 요인이다. 현재의 이동통신보다 속도가 20배 빠른 5세대 이동통신(5G) 보급이 확산되면 원격 로봇, 증강·가상현실도 활짝 기지개를 켤 수 있다. 보고서는 “이는 결국 전 세계적인 자동화를 재촉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택근무의 확산은 신흥 개발도상국들에 새로운 성장 모델을 제시하는 측면도 있다. 보고서는 재택근무로의 전환은 기존 성공모델인 중국의 제조업 주도형 성장보다 인도와 같은 서비스 주도형 성장 모델의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자동화율이 높아지면서 제조업 인력은 갈수록 줄고 있다. 저임금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중국식 발전 모델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인도 경제 성장은 콜센터나 인사, 총무, 회계, 무류 등 비핵심업무의 아웃소싱 같은 서비스 업무 분리에 힘입은 바가 크다.

재택근무의 확산은 출장여행과 출퇴근 시간, 비용을 줄여준다. 픽사베이
재택근무의 확산은 출장여행과 출퇴근 시간, 비용을 줄여준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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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노동자 모두 위험-기회 병존…“역사상 가장 큰 노동실험 시작”

재택근무가 뉴노멀이 되면 기업과 사회에 어떤 변화가 올까? 우선 기업들의 출장 여행이 줄어든다. 보고서에 따르면 출장 여행은 전체 항공여객의 15%에 불과하지만 세계 항공 수입의 40%를 차지한다. 기업들의 출장 여행이 1% 감소하면 항공사 이윤은 10% 줄어든다. 보고서는 올해 출장 여행이 지난해보다 25%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것이 현실화하면 항공사 수입은 10% 줄어들게 된다. 기업 고객이 수입의 70%를 차지하는 호텔의 경우엔 기업 출장의 25% 감소는 매출 18% 감소로 이어진다.

기후변화에 미칠 영향도 크다.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대의 차량 통행과 사무실의 전기 소비량이 감소한다. 이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프라이 교수의 분석에서 언급한 미국 노동자의 52%가 일주일에 하루씩 재택근무를 하면 연간 2천만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감축된다. 미국 전체 배출량의 2.5%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국의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가운데 430만대를 세워두는 것과 같다.

미래의 기업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사무실 없는 노동 시대를 향해 갈까? 보고서는 “위험과 기회가 병존한다”고 진단했다. 기회 요인으론 출퇴근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인재 채용의 범위가 넓어지고 일과 삶의 균형이 확대되는 이점도 있다. 위험 요인은 소속감이 옅어지는 점이다. 이는 기업문화 유지를 어렵게 하고 직원간 협력과 아이디어 개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직원들로선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기업으로선 보안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유럽 에메아공정연구소 로버트 갈릭 소장은 보고서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디지털 흐름을 가속화하고 새로운 관행과 가능성, 사고 방식의 문을 열었다”며 “역사상 가장 큰 노동실험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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