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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120년 전의 이 사진관…한국 최초의 사진관일까

등록 2020-05-25 04:59수정 2020-05-25 10:18

[박상준의 과거창]
1901년 일본 풍속사진첩에 등장
촬영자는 독일인 지리학자 추정
사진관 주인 누구일진 설왕설래
1901년 일본에서 출판된 책에 실린 한국의 사진관 모습.
1901년 일본에서 출판된 책에 실린 한국의 사진관 모습.

초등학교 시절 추억 중에서 ‘바늘구멍 사진기’를 기억하는 이가 많다. 아주 작은 구멍이 뚫린 상자를 고정해두면 그 안쪽에 바깥 풍경이 아래위가 뒤집힌 채로 맺힌다.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불리는 이 원리는 사실 기원전부터 동서양에서 알려져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묵자 등이 이런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나뭇가지로 만든 바구니의 틈 사이를 통과한 빛이 안쪽에 상을 맺었다, 등등.

필름과 인화지가 사라지고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세가 된 시대다. 졸업식 날 대목을 기대하며 모이던 사진사들은 옛말이 되었고 동네 사진관도 증명사진이 아니면 찾을 일이 없다. 그러면 우리 땅에 처음 사진관이 생긴 것은 언제일까? 이와 관련해서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최소한 120년 전에 찍힌 ‘사진관’의 모습이다.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찍혔는지 아직도 명확하지 않고, 사진 속 사진관은 과연 누가 운영하던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이 수없이 검색되지만 대부분 내용에 오류가 있다.

필자가 직접 팩트로 확인한 것은 이 사진이 1901년 일본에서 출판된 ‘세계풍속사진첩’이라는 책에 나온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24번째 도판으로 ‘한국의 건물’이라는 제목의 사진 네 점이 같이 실려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사진이다. 즉 이 사진의 의도는 원래 초가와 기와집이 같이 있는 경성의 길거리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거기에 우연히 ‘사진관’이란 간판이 내걸린 집이 찍힌 것이다. 여기서 ‘한국’이란 대한제국을 말한다.

그런데 이 일본 서적은 도판의 출처가 서양 자료들임을 밝히고 있다. 그중에 뉴기니나 보르네오, 필리핀 등 다른 지역의 자료들을 제외하면 이 사진의 원출처로 추정되는 것은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이 낸 ‘Völkerkunde’(민족학)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1885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마지막 개정판은 1888년에 나왔다. 이 책에 이 사진이 실려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으나, 적어도 독일인이 촬영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는 점을 암시하는 또 다른 사실이 있다.

조선일보 1983년 11월 3일치에서 이규태가 밝힌 바에 따르면, 독일 최초의 장갑순양함인 비스마르크후작(Fürst Bismarck)호가 1903년(또는 1902년)에 제물포(인천)에 왔을 때 기관장인 칼 빌케가 이 사진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1983년 당시 사업상 한국을 방문했던 빌케의 손자가 이 사진을 할아버지의 유품 중에서 발견하여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사진의 설명은 ‘우리 일행이 가마를 타고 통과했던 황궁으로 가는 큰길’이라 붙어 있었다는데, 아마도 칼 빌케가 프리드리히 라첼의 책 아니면 그 책에서 오려낸 사진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사진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종종 ‘한국인이 연 최초의 사진관’으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이미 일본 사람이 한반도에서 사진관을 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과연 이 사진 속 사진관의 주인이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는 불명이다. 한국인 최초로 상업적 사진관을 개업한 이는 서화가로도 유명했던 해강 김규진(1868~1933)으로 알려져 있다. 근거는 1907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천연당 사진관의 광고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사진 속 사진관이 천연당 사진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규진이 천연당 사진관을 처음 개업한 때는 1898년, 1903년, 1907년 등 여러 설이 있으나, 1898년이 아니라면 1901년 이전에 찍힌 이 사진 속 사진관의 주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진관은 간판에 한글을 쓴 점이나 전형적인 한국 거리 모습 등으로 보아 일본인보다는 한국인이 주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다면 그 후보자는 김규진이 아니면 황철(1864~1930)일 수도 있다. 황철은 1882년에 중국에서 사진 기재를 사 왔으며 1895년 6월에 포천군수로 부임하기 전까지 경성에서 촬영소, 혹은 사진관을 운영했다고 한다. 또한 같은 시기의 지운영(1852~1935)이나 김용원(1842~1896)도 빼놓을 수 없다. 지운영은 한국인 최초로 고종의 사진을 촬영했고, 김용원은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운 뒤 1883년에 서울 저동에 촬영국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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