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일본에서 출판된 책에 실린 한국의 사진관 모습.
초등학교 시절 추억 중에서 ‘바늘구멍 사진기’를 기억하는 이가 많다. 아주 작은 구멍이 뚫린 상자를 고정해두면 그 안쪽에 바깥 풍경이 아래위가 뒤집힌 채로 맺힌다.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불리는 이 원리는 사실 기원전부터 동서양에서 알려져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묵자 등이 이런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나뭇가지로 만든 바구니의 틈 사이를 통과한 빛이 안쪽에 상을 맺었다, 등등.
필름과 인화지가 사라지고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세가 된 시대다. 졸업식 날 대목을 기대하며 모이던 사진사들은 옛말이 되었고 동네 사진관도 증명사진이 아니면 찾을 일이 없다. 그러면 우리 땅에 처음 사진관이 생긴 것은 언제일까? 이와 관련해서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최소한 120년 전에 찍힌 ‘사진관’의 모습이다.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찍혔는지 아직도 명확하지 않고, 사진 속 사진관은 과연 누가 운영하던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이 수없이 검색되지만 대부분 내용에 오류가 있다.
필자가 직접 팩트로 확인한 것은 이 사진이 1901년 일본에서 출판된 ‘세계풍속사진첩’이라는 책에 나온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24번째 도판으로 ‘한국의 건물’이라는 제목의 사진 네 점이 같이 실려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사진이다. 즉 이 사진의 의도는 원래 초가와 기와집이 같이 있는 경성의 길거리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거기에 우연히 ‘사진관’이란 간판이 내걸린 집이 찍힌 것이다. 여기서 ‘한국’이란 대한제국을 말한다.
그런데 이 일본 서적은 도판의 출처가 서양 자료들임을 밝히고 있다. 그중에 뉴기니나 보르네오, 필리핀 등 다른 지역의 자료들을 제외하면 이 사진의 원출처로 추정되는 것은 독일의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이 낸 ‘Völkerkunde’(민족학)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1885년에 초판이 나왔으며 마지막 개정판은 1888년에 나왔다. 이 책에 이 사진이 실려 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으나, 적어도 독일인이 촬영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는 점을 암시하는 또 다른 사실이 있다.
조선일보 1983년 11월 3일치에서 이규태가 밝힌 바에 따르면, 독일 최초의 장갑순양함인 비스마르크후작(Fürst Bismarck)호가 1903년(또는 1902년)에 제물포(인천)에 왔을 때 기관장인 칼 빌케가 이 사진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1983년 당시 사업상 한국을 방문했던 빌케의 손자가 이 사진을 할아버지의 유품 중에서 발견하여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사진의 설명은 ‘우리 일행이 가마를 타고 통과했던 황궁으로 가는 큰길’이라 붙어 있었다는데, 아마도 칼 빌케가 프리드리히 라첼의 책 아니면 그 책에서 오려낸 사진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사진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종종 ‘한국인이 연 최초의 사진관’으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에 이미 일본 사람이 한반도에서 사진관을 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과연 이 사진 속 사진관의 주인이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는 불명이다. 한국인 최초로 상업적 사진관을 개업한 이는 서화가로도 유명했던 해강 김규진(1868~1933)으로 알려져 있다. 근거는 1907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천연당 사진관의 광고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사진 속 사진관이 천연당 사진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규진이 천연당 사진관을 처음 개업한 때는 1898년, 1903년, 1907년 등 여러 설이 있으나, 1898년이 아니라면 1901년 이전에 찍힌 이 사진 속 사진관의 주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사진관은 간판에 한글을 쓴 점이나 전형적인 한국 거리 모습 등으로 보아 일본인보다는 한국인이 주인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렇다면 그 후보자는 김규진이 아니면 황철(1864~1930)일 수도 있다. 황철은 1882년에 중국에서 사진 기재를 사 왔으며 1895년 6월에 포천군수로 부임하기 전까지 경성에서 촬영소, 혹은 사진관을 운영했다고 한다. 또한 같은 시기의 지운영(1852~1935)이나 김용원(1842~1896)도 빼놓을 수 없다. 지운영은 한국인 최초로 고종의 사진을 촬영했고, 김용원은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운 뒤 1883년에 서울 저동에 촬영국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