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만든 '코로나19'(2019-nCoV)의 구조 모형. 미 질병통제센터 제공
에이즈, 조류독감, 사스, 에볼라, 메르스, 코로나19까지. 근래에 인류 보건을 위협한 전염병은 거의 대부분 동물로부터 유래했다. 유인원, 새, 박쥐, 사향고양이, 낙타 등 다양한 동물을 숙주와 매개체로 인간에게 전염된 감염질환들이다. ‘코로나19’는 박쥐 또는 천산갑이 숙주와 매개동물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연구진의 추정이 있는 상태이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국내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일 코로나19 감염환자로부터 바이러스를 분리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오는 17일부터는 분리, 배양한 바이러스주를 연구기관에 분양해 진단시약과 치료제, 백신 개발을 지원할 예정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의 인간동물공통 감염 바이러스가 출현해 대규모 전염병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감염균의 정체를 탐지하고 구조를 파악하는 능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인간동물 공통 전염병은 약 120여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 30~40%가 국내 발병 가능한 것으로 예측된다. 대비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2월15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먹이를 찾는 판골린(천산갑). 2월16일은 멸종위기에 몰린 '세계 판골린의 날'이다. AP 연합뉴스
동물 바이러스 데이터베이스다.
현재 전세계 병원균의 약 10%만 식별됐을 뿐 동물에 의해 전염되는 대부분의 병원체는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 개발을 통해 확보된 유전자 분석기술은 신속하게 병원균의 염기서열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1982년 설립돼 미 국립 바이오테크놀로지 정보센터(NCBI)가 운영하고 있는 유전자은행(젠뱅크:GenBank)에는 현재 30만여 생물종의 유전자 정보가 등록돼 있다. 젠뱅크에 동록되는 유전자 정보의 증가 속도는 컴퓨터칩의 성능 개선 속도를 가리키는 무어의 법칙과 유사한 수준이다. 18개월마다 2배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젠뱅크는 유전자를 연구하는 세계 모든 학자가 정보를 입력하고 누구든 자유롭게 그 정보를 사용해 분석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하고 있다.
젠뱅크에는 현재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의 염기서열(시퀀스)도 3만5000개 이상 등록돼 있다. 고슴도치 코로나바이러스, 벨루가고래 코로나바이러스, 알파카 코로나바이러스 등도 있지만 가장 많은 것은 박쥐 코로나바이러스다.
무리 지어 겨울잠을 자는 관박쥐. 스페인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온대 지역을 가로질러 우리나라와 일본까지 분포한다. 김선숙 국립생태원 박사 제공.
미국의 정보기술지 <와이어드>는 12일 전염병 확산상황에서 동물 바이러스 유전자데이터베이스의 가치를 소개했다. 2007년 2월 중국 연구진은 광둥성의 동굴 깊숙한 곳에서 채집한 박쥐 혈액에서 HKU4-CoV로 불리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염기서열을 분석해 공개했다. 당시엔 수백건 넘게 공개되는 바이러스 시퀀싱의 주목받지 못했다. 5년 뒤인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메르스가 발병했다. 과학자들이 메르스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인간 세포를 공격하는 단백질이 HKU4-CoV의 구조와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연구진은 박쥐 바이러스에서 테스트한 메르스 바이러스의 변종들을 분석한 결과, 이 바이러스가 동일한 수용체를 통해서 인간 세포에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당시엔 누구도 HKU4-CoV의 단백질 염기서열과 인간 전염과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미 국립보건원 산하 로키마운틴연구소의 연구원 마이클 렛코는 “메르스 발발 당시 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었다면 확산 초기에 전염을 막고 치료약을 개발하는데 큰 효과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와이어드> 인터뷰에서 밝혔다.
미래 유행할 변종 바이러스의 출현을 예방하기는 어렵지만, 방대한 동물바이러스 데이터베이스의 구축과 분석은 전염 초기에 대응책을 제공해준다는 것을 알려준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