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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인공지능 판사’는 사람보다 공정하게 판결할까

등록 2019-12-22 18:44수정 2019-12-23 02:35

[사법영역의 인공지능 적용 확대]
에스토니아·중국·호주서 잇단 도입
학습 데이터 따라 차별·편견 드러내
‘답없는 문제’는 미래에도 사람의 일

지난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대강당에서 ‘인공지능과 법, 그리고 인간’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려 인공지능시대 사법 체제의 변화와 미래를 점검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대강당에서 ‘인공지능과 법, 그리고 인간’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려 인공지능시대 사법 체제의 변화와 미래를 점검했다. 연합뉴스

# 2011년 4월 법원의 보석 허가 판결이 판사의 식사시간과 높은 상관성을 보인다는 논문이 미 국립과학원회보에 발표됐다. 이스라엘 법원이 10개월간 처리한 1000건 넘는 보석 신청을 분석했더니, 시간당 보석 허가율은 오전 업무 개시 직후엔 65%였으나 점심을 앞둔 시간대엔 0%로 떨어졌다. 점심식사 뒤 보석 허가율은 다시 65%로 올라갔다가 업무가 종료하기 직전 시간대엔 0%로 수렴했다. 보석 여부가 판사들의 허기감에 좌우된 것이다. 2016년 영국 셰필드대 등 공동연구진은 인공지능 재판 프로그램을 개발해 기존 재판 결과를 79%의 정확도로 예측했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했다. 인공지능이 유럽인권재판소 인권 조항과 판례 584건에 대해 기계학습을 통해 학습한 결과였다. 미국 형사재판에선 이미 인공지능의 판단이 판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노스포인트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고리즘 ‘컴파스’는 폭력 범죄자의 재범 가능성을 분석해 판사에게 형량 결정용 자료를 제공한다.

지난 18일 사법정책연구원은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인공지능과 법 그리고 인간’ 주제의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카이 해르만드 에스토니아 법무부 차관(판사)은 “에스토니아는 내년부터 정형화되어 있어 분쟁 가능성이 적은 7000유로(910만원) 이하의 소액재판에 대해 인공지능 판사가 결정하는 시스템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인구 133만여명의 에스토니아는 모든 국민의 세금·의료·부동산·교육·재판기록 등 데이터를 디지털화한 엑스(X)로드 시스템을 운영하는 전자정부 선도국가다. 중국은 올 초부터 ‘인공지능 판사’가 맞춤형 질의응답을 통해 형사 소송 진행을 돕는 온라인 서비스를 도입했다. 오스트레일리아 가정법원은 이혼재판에서 인공지능이 94개 요소를 제시하고 부부의 재산 분할을 해준다.

사람의 판단이 완벽하지도, 정확하지도, 100% 공정하지도 못하다는 점은 ‘인공지능 재판관’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 조사결과 한국의 사법신뢰도는 27%로, 42개 조사대상국 중 꼴찌그룹이었다.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과 검찰개혁 요구 대규모 집회 이전의 조사임을 고려하면 이후 국민의 사법신뢰는 더욱 하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공지능을 도입하면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얼룩진 사법 제도를 공정하게 만들 수 있을까.

판례 검색과 증거 분석 등 사법영역에서 인공지능의 적용은 늘어나지만 알고리즘이 사람의 판단을 대체하면서 새로운 차별과 편파성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알고리즘은 효율적이고 객관적이라는 기대를 받았지만, 백인 남성 데이터 위주로 학습한 인공지능이 흑인과 여성 등 소수자를 구조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현상이 다수 보고되었다. 마르크 쾨클베르크 빈대학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도덕적·법적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인공지능 사용에는 사람의 감독, 차별 금지, 투명성, 공정성 등의 윤리 지침이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공정성과 효율에 대한 높은 기대는 사법영역에도 편견 없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개입을 요청하고 있지만 결과는 역설적이다. 새로운 차별과 편견을 불러왔으며 기계 위임을 통해 개인은 권한과 책임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기소와 중재, 재판 등 사법영역에 인공지능 적용 확대는 예고돼 있지만 알고리즘 의존은 신종 차별을 넘어서는 차원의 문제를 불러온다. 선택을 자동화하고 결정 권한을 기계에 위임하는 것은 사람의 권한과 책임, 조정권마저 기계에 넘기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과 상황마다 판단은 달라지며 비슷한 문제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각이다. 답이 없고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한 판단을 우리는 재판과 법관이라는 제도에 위임해 왔다. 재판은 쉽고 간단하게 답이 나오지 않는 복잡한 사람들간의 다툼과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완벽하지 않지만 인간다운 유연성을 갖춘 제도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부분적으로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답이 없는 문제는 앞으로도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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