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비스의 기준과 법규를 따르는 텔레마케터의 전화만 차단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매우 낮다.
우리가 이미 인공지능 로봇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도구는 전화기다. 전화기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 중 상당 시간을 로봇을 상대하며 살게 만든다. 자동차와 컴퓨터, 스마트폰도 사람과 관계를 맺는 기계이지만 전화와는 방식이 다르다. 상대가 기계라는 것을 알고 선택한 도구와 달리, 전화와 문자메시지는 상당수 이용자가 사람인 줄 알고 받았지만 로봇인 경우가 많다.
하루에 걸려오는 전화와 문자메시지 비중에서 사람보다 로봇이 많은 사람이 당신만은 아니다. 후후, 후스콜, T전화 등 스팸 여부를 알려주는 발신자 정보제공 앱을 설치해 사용하지만, 제대로 걸러지지 않아, 여전히 많은 시간과 주의력을 로봇 상대에 할애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소비자원이 제공하는 ‘텔레마케팅 거부 서비스(www.donotcall.go.kr)‘. 통신 이용자가 이 서비스에 등록할 때에만
2014년부터 정부(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원) 차원에서 원치 않는 스팸전화를 막아주는 ‘텔레마케팅 거부 시스템(www.donotcall.go.kr)’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시행 6년째임에도 등록된 전화번호가 수천 곳에 불과하다. 전화권유판매 사업자가 영업을 하기 전에 시스템에 수신거부 의사를 등록한 이용자 휴대전화번호를 텔레마케팅 대상목록에서 제외시킬 수 있도록 한 기능인데, 대부분의 사업자가 규정과 이 시스템을 무시하고 ‘스팸 영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실효성이 낮다. 기자도 2014년부터 ‘텔레마케팅 거부 시스템’을 사용해오고 있지만, 자동 스팸전화는 여전하다.
스팸 전화의 피해가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은 미국에 새로운 스팸 전화 차단 방법이 등장했다. 지난 9일 ‘CNBC’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통신사업자인 버라이즌은 통신사 차원에서 로봇이 거는 스팸전화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로 했다. 그동안 유료, 무료 스팸 차단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이 있어왔지만, 서비스를 활성화하려면 사용자가 설정하는 절차가 필수적이었다.
스팸차단 앱인 ‘하이야(Hiya)’에 따르면, 미국 휴대전화 가입자들이 2019년 상반기에 받은 스팸전화는 약 253억 통이다. 미국 성인 1인당 100통 넘는 스팸전화를 받은 셈이다. 현재 미국인들이 받는 전화의 약 50%는 로보콜이 차지할 정도로, 미리 녹음된 스팸전화가 무작위로 발신되는 현실이다. 미국 국민의 70% 이상은 텔레마케팅 거부 서비스(Do not call)에 전화번호를 등록하는 ‘스팸전화 차단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스팸이 이 시스템을 우회하기 때문에 차단 효과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버라이즌은 미국 통신사 최초로 사업자 차원에서 로봇이 거는 스팸전화(로보콜)을 원천차단하기로 했다. 버라이즌에서 새로 개통하는 전화 회선은 로보콜 자동 차단이 바로 적용되고, 이어 기존 가입자들에 대한 로보콜 차단 서비스가 진행될 예정이다. 기존 스마트폰의 스팸차단 서비스나 앱 설치의 경우 사용자가 직접 ‘설정’ 메뉴에서 스팸 수신 여부를 설정해야 했지만, 버라이즌이 서비스하는 방식은 ‘초기 설정 방식(디폴트 세팅)’의 변경이다. 이용자가 전화를 개통한 뒤 별도로 설정하지 않거나 앱을 깔지 않아도 자동으로 로보콜이 차단된다. ‘스팸전화 수신’으로 설정을 변경하면 로보콜을 받을 수 있다.
경쟁 통신사인 T모바일은 이용자가 설치해야 하는 스팸차단 앱을 제공하며 스프린트는 월 2.99달러에 스팸차단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람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와 역할을 대체할지 모를 미래를 걱정하기에 앞서,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로봇이 거는 스팸전화도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로봇이 사람의 지능을 앞서기 때문에 생겨난 피해가 아니다. 로봇을 악용하는 소수의 탐욕을 통제하지 않아서, 또 그런 현실에 눈을 감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방치한 결과 생겨난 다수의 피해다. 초기설정(디폴트 세팅)을 통해 로봇이 거는 전화를 사업자가 전면 차단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라는 걸 미국 사례가 알려준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