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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왈보·안창남보다 먼저…101년전 하늘 난 한국인 있었다

등록 2019-05-06 06:00수정 2019-05-06 14:34

[박상준의 과거창]
7살때 하와이로 이민간 이응호
1차대전때 미 육군 조종사 출격
안창남·서왈보보다 앞서 활약
1917~1918년 당시 미첼 필드 비행학교에서 훈련기로 가장 많이 쓰인 커티스 JN-4 비행기. 이응호도 이 비행기로 훈련받았을 것이다. 위키백과
1917~1918년 당시 미첼 필드 비행학교에서 훈련기로 가장 많이 쓰인 커티스 JN-4 비행기. 이응호도 이 비행기로 훈련받았을 것이다. 위키백과

한반도에서 비행기가 처음으로 날아오른 것은 1913년, 라이트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하고서 10년 뒤의 일이다. 당시 일본인 나라하라 산지가 자신이 제작한 비행기를 가져와서 경성(서울) 용산의 일본군 기지 연병장에서 이륙시켰다. 그렇다면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는 누구였을까?

최초의 비행사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곤 하는 안창남은 정확히 말하자면 한반도에서 비행한 최초의 한국인 조종사이다. 1921년 일본에서 최초로 치러진 비행기 면허 시험에 합격한 안창남은 1922년 겨울에 고국을 방문하여 수만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몇 차례 시범 비행을 했다. 그런데 안창남보다 앞서서 비행기 조종사가 된 인물이 여럿 확인되지만, 좀 복잡한 논점들이 있다. 당시는 한반도를 떠나 외국으로 가야만 비행기 조종을 배울 수 있었는데, 그 대상지는 일본, 중국, 그리고 미국이었다. 유럽도 가능했지만 당시에 유럽 땅에서 비행기 조종을 배운 한국인의 기록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얼마 전까지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로 널리 알려졌던 인물은 1919년 중국의 남원항공학교를 마치고 조종사가 된 서왈보였다. 그 시기에 중국 각지에서는 비행학교를 마치고 조종사가 된 한국인들이 다수 배출되었는데, 한국인 최초의 여성 비행기 조종사인 권기옥도 중국 윈난육군 항공학교 1기생 출신으로 1925년에 중국군 전투조종사로 임관했다.

그러나 근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서왈보보다 앞서서 1918년 미국에서 비행기 조종사가 된 사람이 있다. 바로 1차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한 이응호(조지 리)라는 인물이다. 이응호에 대한 사실은 재미언론인 한우성과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주립대의 장태한 교수가 다년간의 추적 조사 끝에 알아낸 것이다. 1896년 제물포에서 태어난 이응호는 일곱 살인 1903년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로 가는 이민선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이응호의 아버지는 도산 안창호와 가까운 사이였으며, 당시에 미국으로 간 한인 대부분이 그랬듯이 교민 단체를 통해 고국의 독립운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며 지원 활동에 참여하곤 했다.

이응호가 10대 후반의 청년으로 자란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로부터 몇 년간 어수선한 세계정세를 살피던 이응호는 아버지 몰래 모병관을 찾아가 입대 의사를 밝혔으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로 계속 거부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참전을 결정한 미국이 동양계 주민들에 대한 추첨이라는 형식으로 징병 정책을 시행하자 대상자로 선정되어 입대하게 되는데, 이것이 1917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훈련받은 곳이 바로 미국 육군 항공대였다. 미국의 한인들이 내던 신문인 ‘신한민보’ 및 미국 지역지인 ‘스탁튼 데일리 레코드(Stockton Daily Record)’에는 당시 이응호의 행적이 여러 차례 비교적 상세히 보도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그는 1918년에 항공학교를 마치고 조종사가 되었다. 그리고는 1차대전에 참전하여 유럽 전선에서 총 156회의 출격을 무사고로 마치고 전역한 뒤 미국 여성과 결혼하여 뉴욕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후손들은 지금도 여전히 뉴욕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응호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하나의 쟁점은 그가 비행기를 조종했는가, 아니면 비행선을 조종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입대한 뒤 처음 6개월간은 텍사스의 켈리 필드(Kelly Field) 비행장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 뒤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거쳐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있는 미첼 필드(Mitchel Field) 비행학교를 마치고 조종사가 되었다. 그리고서 유럽 전선에서 종군한 그의 활약상은 당시의 ‘신한민보’에 나와 있는데,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와 독일 국경지대에서 휴전 조약 때까지 공기선(비행선)을 탔다’고 되어 있다. 즉 그는 1차대전에 비행선 조종사로 참전한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미 육군항공대 사정에 밝은 군사전문가에 따르면 그 시기에는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선 조종도 했었다고 한다. 결국 이응호가 비행기와 비행선 양쪽을 다 조종했었는지는 앞으로 객관적으로 더 규명해내야 할 사실인 셈이다. 100여 년 전에 그가 다녔던 비행학교들과 당시의 동료 훈련생과 교관들, 또 조종사 수료증 및 사진 기록들, 관련 도서들 등을 더 발굴해봐야 할 것이다.

사실 최초의 한국인 비행사가 누구며 그가 비행기를 조종했는지 비행선을 조종했는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 시대에 해외로 나가 비행기 조종술을 배웠던 사람들은 대부분 고국의 독립운동에 기여하고자 하는 동기가 컸다. 오늘날 독립유공자로 기억되는 안창남이나 서왈보는 비행기 사고로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이응호 역시 당시의 재미 교포들에게 큰 희망과 자부심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과학기술의 시대에 한국인 항공사의 여명을 비추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길이 기억될 인물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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