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정보기술 혁신기업들 사옥의 공통된 키워드는 창의성을 위한 개방성이다. 이들 기업은 사무공간을 벽과 칸막이가 없는 거대한 소통 공간으로 설계하는 게 특징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의 설립자이기도 한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사옥을 지을 때 독특한 건축 철학을 구현했다. 남녀 화장실 4개, 회의실 8개, 카페, 식당을 모두 거대한 중앙 로비에 몰아넣어, 전 직원이 수시로 마주치도록 했다. 직원들 사이에 의도하지 않은 만남이 이뤄지게 했는데, 잡스는 창의성이 다른 사람들 간의 의도하지 않은 만남을 통해서 피어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잡스의 유작이 된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우주선 사옥도 비슷한 설계의도로 건축됐다. 페이스북 사옥은 회의실, 화장실, 식당 등을 빼고는 아예 ‘방’이 없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도 다른 직원 수천여 명과 똑같이 칸막이 하나 없이 열린 공간에서 책상 하나만 두고 함께 일한다.
그런데, 개방형 사무실이 협력과 창의성을 늘린다는 정보기술 기업들의 신념과 건축철학과 정반대되는 연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개방형 사무실이 직원들간의 협업과 생산성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연구 결과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이선 번스타인과 스티븐 터번 교수가 2018년 7월 영국 왕립학회가 발간하는 저널 <필로소피컬 트랜젝션>에 실은 ‘개방된 작업공간이 협업에 끼치는 영향’ 논문(The impact of the ‘open’ workspace on human collaboration)이다.
두 교수는 개방형 사무실이 실제로 직원들간의 접촉과 협업을 증진시키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실증적 연구를 수행했다. 개방형 사무실로 바꾼 2곳의 다국적 기업 직원들을 모집해 사무실내 상호작용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목걸이 장치를 착용하도록 했다. 적외선 센서와 마이크, 블루투스 기기를 이용해 직원들이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등을 측정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이선 번스타인과 스티븐 터번 교수가 개방형 사무실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위해 2곳의 다국적기업 직원들에게 착용하도록 한 목걸이형 측정장비. 영국 왕립학회 ‘필로소피컬 트랜젝션‘ 제공.
첫 번째 기업에서 직원들은 오래된 칸막이가 있는 사무실에 근무할 때, 서로를 빤히 바라볼 수 있는 개방된 사무실과 비교해 면대면 상호작용이 세배나 많았다. 개방형 사무실로 변경한 뒤 직원들간의 이메일도 전보다 56%가 증가했다. 면대면 접촉이 줄어든 대신 이메일소통이 늘어난 것이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개방형 사무실로 바꾼뒤 면대면 상호작용이 3분2가량 감소하고, 직원들간 이메일 소통은 22~50% 증가했다. 논문 저자들은 프라이버시가 보호되지 않는 개방된 공간에서 직원들은 상호간의 면대면 소통과 대화를 하는 대신 필요시 이메일 소통을 선택하는 현상을 보였고 이는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두 교수는 직원들이 사무공간에 가족사진, 화분, 머그잔 등으로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면 일터에서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러한 개방형 사무공간에서의 근무는 직원들로 하여금 항상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쓴 채 일하도록 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미국 월간지 <디 애틀랜틱>은 지난 26일 “고용주에게 벽을 빼앗긴 직원들이 에어팟을 사랑하게 되었다”라는 기사를 실어, 애플의 귓속형 무선 이어폰 에어팟의 인기를 다뤘다. <디 애틀랜틱> 기사는 2016년 애플이 출시한 무선 이어폰 에어팟이 시장의 부정적 전망과 달리 큰 인기를 얻게 된 배경으로 개방형 사무공간의 증가에 맞선 사무직 노동자들의 개인적 공간 추구 성향을 지목했다. 모든 직원들이 음악 감상과 블루투스 통화를 선호하기 때문에 귀속 이어폰이 대중화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벽과 칸막이가 사라진 사무공간이 반강제적으로 요구하는 상호작용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게 귓속 이어폰이 사무실에서 널리 착용되는 주된 목적이라는 것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