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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볼보 사고 데이터 개방’ 차량 시카고조약 될까

등록 2019-03-28 15:14수정 2019-04-05 10:02

볼보자동차 안전센터에서의 차량 충돌 실험. 볼보 제공
볼보자동차 안전센터에서의 차량 충돌 실험. 볼보 제공
[구본권의 사람과디지털]

볼포, 2020년 차량최고속도 180km 제한 이어
1970년부터 구축한 자체 사고데이터 일반 공개
일부 시장 포기하고 ‘안전 우선 고객’에 집중전략
안전을 위한 한 기업의 노력이 자동차업계 일반과 모든 차량 이용자에게 영향을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항공기 안전의 획기적 전기가 된 1944년 시카고조약과 같은 사고 정보 표준화와 공유가 자동차업계에도 가능해질 수 있을까?

볼보자동차의 안전 우선 시도가 자동차 업계 전반의 안전 강화로 확산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볼보자동차는 2020년을 목표로, ‘볼보차를 타는 누구도 부상당하거나 죽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비전 2020’을 내걸고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미 지난 5일 볼보는 과속으로 인한 치명적 사고를 막기 위해 2020년부터 출시되는 모든 신차의 최고속도를 시속 180km로 제한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볼보는 이어 지난 20일에는 자동차 안전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안전 차량(Equal Vehicles for All)’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볼보가 ‘3점식 안전벨트’ 개발 60돌을 맞아 선보인 새로운 안전 강화대책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볼보는 음주운전, 졸음운전 등 운전자 주의 소홀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2020년 이후 출시 차량에 ‘운전자 감시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차량내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운전자가 음주, 피곤, 주의 산만 등으로 운전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될 경우 강제로 차량 속도를 낮추거나 콜센터에서 전화를 걸어 알려주는 방식이다. 또한 2021년부터 ‘케어 키(Care Key)’를 도입해, 소유자가 자녀나 초보운전자에게 차량을 빌려줄 경우에 차량의 최고속도를 스스로 제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모두를 위한 안전 차량’ 프로젝트에서 가장 주목되는 내용은 볼보가 축적해온 자동차 사고조사 ‘디지털 라이브러리 공개’다.

볼보자동차가 1970년부터 꾸려온 자체 교통사고 조사팀. 볼보는 4만3000건이 넘는 사고 데이터가 담긴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일반에 공개해, 차량 안전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볼보 제공
볼보자동차가 1970년부터 꾸려온 자체 교통사고 조사팀. 볼보는 4만3000건이 넘는 사고 데이터가 담긴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일반에 공개해, 차량 안전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볼보 제공

볼보가 실제 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 축적해온 연구결과를 경쟁 자동차업계에 공개할 뿐 아니라 대중에게까지 오픈하는 디지털 라이브러리다.

볼보는 1970년부터 자체 사고 조사팀을 꾸려 교통사고 현장을 찾아가 도로 및 교통상황, 사건 발생 시각 및 충돌 원인, 피해 등을 기록하고 연구해왔다. 탑승자 7만2000명, 사고건수 4만3000건이 넘는 데이터다. 볼보는 이를 기반으로 경추 보호 시스템(WHIPS), 측면 충돌 방지 시스템(SIPS), 사이드 에어백 및 커튼형 에어백 등 숱한 혁신적 안전장치를 선보여왔다.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통해 공개되는 데이터는 볼보 자체 연구만이 아니라 외부 연구기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축적된 지식들로, 실제 사고 현장의 데이터와 충돌시험용 인체 모형을 통해 쌓아온 테스트 결과 등이다. 자동차 업체들의 충돌시험은 실제 사람들처럼 다양한 키와 몸무게의 인체모형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때문에 평균 수치 너머의 인체는 사고시 큰 손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볼보의 연구 결과, 키가 큰 여성은 남성들보다 충돌시 목 부상 위험성이 훨씬 높다는 게 밝혀졌고, 이는 경추 보호 시스템(WHIPS) 개발로 이어졌다.

볼보, 60년전 개발한 3점식 안전벨트도 업계에 개방 사례

이번 디지털 라이브러리 개방은 볼보의 3점식 안전벨트 기술 공개와 정신이 통한다. 볼보는 1959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3점식 안전벨트 기술을 단독사용하지 않고, 모두의 안전을 위해 공개한 바 있다. 볼보의 연구와 기술개방 덕분에 자동차 안전의 표준이 된 3점식 벨트는 최소 1백만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볼보의 사고조사 자료와 연구결과 공개라는 선도적 조처가 자동차업계로 확산된다면 차량 안전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항공기 사고 조사와 자료 공유 사례가 좋은 예다.

항공 안전을 획기적으로 높인 것은 1944년의 시카고조약(Chicago Convention: 국제민간항공조약)과 부속조항 13(Annex 13)이다. 잦은 사고로 항공기 탑승이 위험하던 시절, 세계 각국 항공사들이 항공사고 보고 양식을 통일해 공유하기로 한 조약이다. 조약 덕분에 세계 어디에서 항공사고가 발생하든지 자세히 조사해 보고하고 위험요소를 조직적으로 찾아내 공유하면서 안전을 개선하게 됐다. 최근 보잉 737맥스의 사고와 결함도 전세계 항공업계에 빠르게 공유되며 운항금지로 이어졌다.

볼보의 ‘모두를 위한 안전차량(Equal Vehicles for All)‘ 이니셔티브 프로젝트
볼보의 ‘모두를 위한 안전차량(Equal Vehicles for All)‘ 이니셔티브 프로젝트

안전장치 과의존은 위험운전 부작용 불러

하지만 볼보의 안전성 강화를 위한 일련의 정책은 기술과 정책 강화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시장의 반응, 운전자의 행동과 습관 변화, 심리적 대응 등이 변수이기 때문이다.

볼보의 안전센터 책임자인 마린 에크홀름은 과학기술 전문지 ‘MIT 테크놀로지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안전장치에 대한) 과의존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끄럼방지 브레이크나 4륜구동 등 안전장치로 인해 더 공격적으로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에크홀름은 “이들 안전장비는 운전자 보호를 위해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지, 운전자가 이를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80km 속도 제한과 운전자 감시 장치는 질주능력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낳았지만, 볼보는 안전을 우선시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더 강화하는 전략으로 승부를 본다는 전략이다. 볼보는 수년 전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널찌감치 유지하도록 하면서 자동으로 작동하는 브레이크(시티 스케이프)를 신차에 적용했다가 끼어들기 빈발 등으로 인한 운전자 반발에 부닥쳐 결국 기능을 제거한 사례가 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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