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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건망증은 ‘건강하고 우수한 두뇌’의 증거”

등록 2019-03-26 15:30수정 2019-04-05 09:47

1921년 노벨상을 받은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건망증 증세와 관련한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1921년 노벨상을 받은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건망증 증세와 관련한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구본권의 사람과디지털]

인체·동물 실험결과, 망각은 ‘지적 판단’ 최적화 도구
낡은 정보 인한 오판 막기 위해 뇌는 지속적 ‘덮어쓰기’
디지털 ‘외뇌’ 환경 세부기억보다 추상화·개념화 더 중요
1921년 5월 미국 보스턴을 방문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당시 미국에서 구직자 대상으로 유행하던 ‘에디슨 테스트’의 한 문항이었다.

“음속은 얼마입니까?”라는 질문이 아인슈타인에게 던져졌다. 아인슈타인은 소리가 어떻게 전파되는지를 이해하게 만든 물리학자이다.

아인슈타인의 대답은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정보를 기억하고 다니지 않는다”였다.

망각이나 건망증이 인지능력의 결함이 아니라, 뛰어난 지적 능력의 증거라는 연구 논문이 디지털 환경에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폴 프랭클랜드와 블레이크 리처드 연구진은 2017년 6월 ‘셀(Cell)’의 자매지이자 세계적 신경생물학 국제학술지인 ‘뉴런(Neuron)’에 ‘기억의 지속과 순간적 속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망각의 가치를 조명한 바 있다.

논문에서 저자들은 기억의 목표가 시간이 경과한 뒤에 상세한 내용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의사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지적 능력을 최적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세상에서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정보에 조첨을 맞추기 위해 뇌는 부적절하거나 사소한 정보를 망각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과 동물을 상대로 기억과 기억상실, 뇌 활동에 관해 수년간 실험을 한 결과, 이러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논문을 통해 밝혔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장기기억 형성에 관련한 뇌 조직인 해마에 만들어지는 새로운 뇌 세포는 기존의 오래된 기억을 덮어쓰고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오래된 기억을 새로운 기억으로 덮어쓰는 것은 진화에서 커다란 장점이다. 낡아서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 수 있는 정보 대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세상을 탐색하려고 할 때 뇌가 끊임없이 상충하는 기억을 불러온다면, 현명한 결정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우리 뇌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세부적 내용을 망각하도록 하고 대신 큰 그림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인간이 과거의 경험들을 통해 일반화(추상화)해서 현재의 상황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이러한 두뇌의 망각 특징은 하버드대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샥터가 저서 <기억의 일곱가지 죄악>에서 지적한 인간 기억의 불완전한 오류 성향이 인간 지적 능력의 진화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과 통한다. 샥터는 망각과 같은 인간 기억의 오류 성향에 대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과정과 기능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며, 기억의 또다른 적응적 특징의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컴퓨터의 저장된 메모리 호출과 달리, 인간은 망각과 선택적 기억을 통해 매번 새로운 자신의 기억을 재구성한다는 주장이다.

연구를 수행한 프랭클랜드와 리처드는 “우리는 제퍼디 퀴즈대회의 승자를 부러워하지만, 진화는 우리 기억을 사소한 퀴즈게임의 승리 대신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최적화하도록 진화했다”라며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는 (상세하게 기억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망각하는 게 건강에 좋다”고 주장했다.

망각의 긍정적 측면을 조명한 연구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인간 두뇌의 외부 기억장치로 작용하면서 ‘외뇌’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현재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거엔 전화번호와 집 주소 수십개씩을 기억했는데, 지금은 한두개도 외우지 못한다고 탓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간 기억과 망각은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세부적 내용을 망각하고 커다란 그림과 추상적 개념화를 갖추는 방향으로 진화한 만큼, 외뇌 환경의 디지털 시대에 있어 망각과 기억은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할 요구가 커진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논문 출처 : ‘The Persistence and Transience of Memory’
Blake A. Richards & Paul W. Frank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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