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 성공을 꿈꾸며 개발되지만 그중에 성공의 열매를 맺는 것은 지극히 일부다. 기술적 완성도, 상품의 결함, 시장의 미성숙 등 실패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실패들은 더 많은 눈길을 받는다. 기술과 상품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망가지거나 사라지기 때문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가 펴내는 미국의 과학기술 전문지 <엠아이티(MIT) 테크놀로지 리뷰> 최신호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해 각광받을 2019년의 기술을 소개하면서, 21세기 들어 실패한 기술 10가지도 함께 조명했다.
1. 세그웨이
미국의 저명한 발명가 딘 케이먼이 2001년 개발해 판매한 두바퀴 전동 이동수단이다. 자이로스코프를 활용해 넘어지지 않고 몸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다. 딘 케이먼은 “세그웨이는 말과 4륜 마차 시대의 자동차와 같은 의미의 이동수단이 될 것”이라며 도시와 교통의 모습을 혁신시킬 것이라고 자신했다. 스티브 잡스로부터 “개인용 컴퓨터(PC)만큼 엄청난 발명”이라는 평가를 받고, 벤처캐피털리스트 존 도어는 “인터넷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그웨이는 거의 대중화되지 못한 채 실패했고 중국 회사(나인봇)에 인수됐다. 탑승자를 멍청하게 보이는 비싼 전기 스쿠터라는 게 밝혀졌고, 관광지나 공항에서 제한적 용도를 찾았다.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 대회’(구글 IO)에 구글안경을 쓰고 나타난,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한겨레 자료 사진
2. 구글 글래스
구글글래스는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2012년 구글 개발자대회(I/O)에서 공개하면서 폭발적인 관심과 기대를 모은 안경 형태의 인터넷 연결, 카메라, 증강현실 도구이다. 스마트폰을 대체할 새로운 형태의 착용형 스마트 기기로 주목받으며 상품화됐지만, 실패했다. 구글 글래스는 착용자에겐 편리하지만, 그가 있는 모든 공간을 몰래 카메라의 녹화대상으로 만드는 도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구글 글래스를 쓰는 것 자체로 다른 사람들의 분노와 우려를 발생시켰다.
3. 원 랩탑 퍼 차일드(One Laptop Per Child)
매사추세츠공대 미디어랩의 창립자인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2005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100달러 노트북’을 만들어 저개발국가 어린이들에게 보급하자”고 제안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저가 교육용 노트북이다. 2008년 ‘엑스오’(XO)란 이름의 첫 제품이 만들어진 뒤 40개국 어린이들에게 21개 언어로 200만대 넘게 전달됐지만, 홍보한 ‘교육적 효과’를 거의 거두지 못했다. 인터넷과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해결해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려 했지만, 이후 더 편리한 상용 태블릿, 노트북 그리고 스마트폰이 나왔다. 교육의 문제를 도구와 기술로 접근해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한 실패 사례다.
4. 유전자 조작 아기
지난해 말 중국 과학자에 의해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를 조작해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유전형질을 지닌 ‘맞춤형 아기’가 태어났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수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 치료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 유전자 가위 시술이 인체에 무해할지는 알 수 없다. 규제가 존재하는 이유인데, 이를 무시하고 기술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사례다.
5. 암호 화폐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는 소수의 투기꾼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을 더 빈곤하게 만드는 결과일 수 있다. 기술이 잘못 적용된 사례다. 암호화폐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기술인 블록체인은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인데, 투기수단으로 쓰이며 빛이 바랬다.
6. 전자투표
좋은 의도를 갖고 개발됐지만, 현실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냈다. 전자 투표 이전에는 개표 이후에도 검증가능한 투표 다발이 남아 있었다. 이제 선거는 해킹에 더 취약해졌다.
7. 개인정보 유통
기술이 규제를 뛰어넘는 사례다. 개인들이 의식하지도 못하고 통제할 수도 없는 자신에 관한 정보가 공유되고 뒤섞이고 가공되는 소셜 미디어와 데이터 분석은 개인의 자유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페이스북과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시 마포구의 한 편의점에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와 전용 연초가 진열되어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8. 전자담배
흡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공중보건 규제를 회피하는 구멍을 만들어내어, 새로운 형태의 니코틴 중독을 가져오고 있다.
9. 1회용 플라스틱용기 음료
캡슐커피 덕분에 아침에 30초를 절약할 수 있지만, 재활용하기 어려운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
누리꾼(@neuroprofesor)이 고프로의 아웃도어용 카메라 ‘히어로3’와 셀카봉을 활용해 지인과 함께 패러글라이딩하는 모습을 담아 지난 6월 인터넷에 공개한 사진. 출처 픽사베이
10 셀카봉
이미 무수한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이러한 10가지 나쁜 기술을 뽑은 <엠아이티 테크놀로지 리뷰> 편집진은 무엇을 ‘나쁜 기술’로 선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어려웠음을 토로했다. 처음부터 ‘악한 기술’을 개발하려고 할 수도 있지만, 애초 구상한 훌륭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해도 나쁜 기술이 될 수 있다. 세그웨이나 구글글래스는 기술의 실패라기보다 제품의 실패이다. 다른 유형의 유사한 제품들이 시장에서 널리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원랩탑퍼차일드와 전자투표는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기술적 문제로 단순화시킨 게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유용한 기술, 가장 강력한 기술이 가장 해로울 수 있다. 이는 기술에 대해서 기술자만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와 통제가 더욱 필요함을 알려준다. 자동차는 현대 기술문명의 꽃이지만, 이로 인해 해마다 125만명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미세먼지와 같은 간접적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