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프램튼은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물리학과 교수로, 끈 이론과 양자장 이론에 관한 기념비적 논문을 다수 발표한 세계적 물리학자다. 18살에 옥스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오랫 동안 노벨물리학상 후보군에 속했던 프램튼의 물리학자로서의 경력은 탁월했다. 69살의 프램튼 교수는 2012년 1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마약 밀수 현행범으로 체포돼 4년8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아르헨티나 감옥에 수감됐다.
아내와 이혼한 프램튼 교수는 사건 1년 전부터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난 미모의 체코 모델 데니스 밀라니를 채팅을 통해 사귀어왔다. 밀라니의 남미 촬영여행에서 두 사람은 뜨거운 첫 만남을 약속했다. 프램튼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니 밀라니는 또 다른 촬영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 상태라, 프램튼은 다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이동하는데 그녀로부터 현지에 두고온 가방을 부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프램튼은 공항에서 자신과 밀라니의 가방을 부쳤는데, 밀라니의 가방 바닥엔 코카인 2킬로그램이 숨겨져 있었다.
가짜뉴스에 왜 학식과 지혜 있다는 사람도 빠져들까?
그때까지 프램튼은 밀라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실제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실제 체코 모델 밀라니는 30대 유부녀인데 프램튼을 전혀 알지 못했고, 프램튼은 밀라니를 사칭한 상대와 채팅을 통해 사랑을 키워온 것이었다. 부탁받은 가방에 마약이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지인의 경고를 받았지만, 프램튼은 그럴 리 없다며 가볍게 묵살했다.
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까?
프램튼 교수의 드라마같은 사연 아니더라도, 주위엔 황당한 헛소리를 믿거나 스스로 그 주장을 증폭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적지않다. 허위 조작정보가 난무하는 현실이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가짜 뉴스가 황당한 헛소리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풍부한 사회경험과 학식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통되고 이는 지지 확산의 논리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현명한 사람이 사기를 당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하는 사례도 흔하다. 직장생활이나 가정생활, 사회관계 등에서 문제없는 이들이 왜 허위임이 명백해 보이는 사기와 거짓 정보에 빠져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일까.
<뉴사이언티스트> 기자인 데이비드 롭슨의 최신작 <인텔리전스 트랩>은 “왜 똑똑한 사람이 멍청한 결정을 내릴까”를 탐구하고, 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스라엘 솔로몬왕은 누구보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삶은 현명함과 거리가 멀다. 성경이 금지한 수백명의 이교도 첩과 후궁을 두었고, 왕위를 계승할 자식 교육 실패해 왕조가 패망했다.
다른 사람의 딜레마에 대해서만 현명한 판단을 하는 이런 현상을 캐나다 워털루대학의 심리학자 이고르 그로스먼은 ‘솔로몬의 역설’이라고 이름붙였다.
‘솔로몬의 역설’ 피하는 방법
그로스먼은 오랜 기간 연애 관계인 집단을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을 진행했다. 한 그룹은 그들의 연인이 몰래 바람을 피워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황이었다. 두 번째 그룹은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의 파트너가 친구를 속이고 바람을 피워온 사실을 알게 된 상황이었다. 두 그룹이 똑같이 바람피운 파트너라는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를 일련의 테스트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를 측정했다. 그로스먼은 지혜를 “인생의 문제를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는 추론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예상대로 친구의 파트너가 바람을 피웠다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지혜로운 판단을 내렸지만, 자신의 연인이 바람을 피운 상황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게 실험 결과로 입증됐다. 현명한 판단을 위해서는 개인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람은 배제하고, 해당 사안에 대해 거리두기를 하고 제3자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이 얻어진 심리 실험이다.
그로스먼이 지혜를 연구하기 위해 동원한 실증적 측정방법은 가짜 뉴스 현실에서 눈길을 끈다. 스마트폰과 편리한 검색 덕분에 얼마든지 필요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은 각자를 스스로 지식과 지혜를 갖췄다고 여기기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로스먼은 의사결정 테스트에서 정치적·개인적 문제 등 다양한 딜레마에 처한 개인이 얼마나 상반되는 관점을 모색하고 상황에 고유한 불확실성을 수용하려고 하는지를 측정했다. 또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지로 나타나는 지적 겸손 정도를 측정했다. 그로스먼은 개인적·정치적 문제에 있어 자신의 생각과 상반되는 관점으로 생각해보고 자신의 삶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토론한다고 생각하는 게 솔로몬의 역설을 벗어나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롭슨은 “지능은 자동차 엔진과 같다. 구동력이 커지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조향장치, 속도계, 내비게이션이 모두 작동할 때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원을 돌거나 낭떠러지에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