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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글라이더 동양 신기록 세운 김광한

등록 2019-02-11 05:59수정 2019-02-11 16:59

[박상준의 과거창]
비행기 정비소서 일하며 연습
창고에 버려진 글라이더 손질
11시간40분 동안 하늘 머물러
글라이더 체공시간 동양 신기록을 수립한 직후의 김광한 .
글라이더 체공시간 동양 신기록을 수립한 직후의 김광한 .
집안 어른 중에 일제강점기 때 글라이더를 탔다는 분이 계셨다. 처음 그 얘기를 듣고는 당시에 꽤 여유 있게 사셨나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짐작했던 것과는 좀 다른 시대 상황이 있었다. 2차 대전이 발발한 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일제는 학생들에게 글라이더 교육을 광범위하게 시켰던 것이다.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한동안 군수산업 및 관련 연구를 금지당했고 당연히 비행기도 제작할 수 없었다. 그러자 무동력인 글라이더에 눈을 돌려 활공이나 항공역학 기술을 발전시켰고 뛰어난 글라이더를 많이 개발해냈는데, 2차 대전 때에 일본은 이러한 점에 주목했다. 게다가 글라이더를 쓰면 장차 전투기를 조종할 예비 조종사의 선발도 적은 예산으로 할 수 있었다.

일본이 진주만 공습으로 2차대전에 끼어들기 11개월쯤 전인 1941년 1월 26일. 일본 이코마산에서 한국인 김광한이 글라이더를 타고 날아올라 장장 11시간 40분 동안 하늘에 머물렀다. 글라이더 체공 시간의 동양 신기록이 수립된 순간이었다. 더구나 당시 일본인들이 최신형 기체를 타고 신기록에 도전하던 것과는 달리 폐기처분되어 창고에 처박혀 있던 낡은 글라이더를 손질해서 탄 것이라 더 값진 일이었다.

1915년생인 김광한은 일본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비행사 면허를 땄지만 민족차별 때문에 조종사로서 대성할 길이 막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글라이더로 눈을 돌렸던 인물이다. 원래 그의 집안은 우리 근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손위 형제 중 김장한은 덕혜옹주의 약혼자였다. 그의 백부인 김황진이 고종의 최측근 시종이었던 덕분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리고 큰형인 언론인 김을한은 일본의 한 정신병원에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던 덕혜옹주를 찾아내어 1962년에 귀국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 ‘덕혜옹주’에 등장하는 김장한은 실존 인물인 김장한과 김을한 형제가 결합된 캐릭터이다.)

하지만 막내아들이었던 김광한은 성장기에 지독한 빈곤을 겪었다.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돈이 없어 진학하지 못하고 신문 배달을 다닐 정도였다. 그러다 형 친구의 도움으로 일본에 가게 된 뒤 비행기 정비소에서 일하다 비행학교까지 들어가게 된다. 장성한 그는 키가 180cm 정도로 일본에서는 매우 큰 축에 속해서 적잖은 덕을 보았다. 당시 비행기는 손으로 직접 프로펠러를 돌려 시동을 걸어야 했는데 키가 작은 일본인들이 그에게 부탁할 때가 많았고, 그는 그 대가로 비행기 조종을 연습할 시간을 얻곤 했다.

신기록 수립으로 이름이 알려진 김광한은 조선총독부의 초청으로 1941년에 귀국한 뒤 여의도비행장에서 학생들의 글라이더와 비행기 조종 교육을 맡게 된다. 그러던 1943년 겨울 어느 날,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의 한 젊은이가 찾아와 ‘초면에 실례지만 비행기 한 번 태워줄 수 없겠냐’고 부탁해 왔다. 너무나 당돌한 요청이었지만 김광한은 그 진심에 마음이 움직여 시험비행이라는 명목으로 격납고에서 비행기를 꺼낸 뒤 20여 분 동안 태워주었다고 한다. 바로 이 사람이 오늘날의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의 창립자인 조중훈(1920~2002)이었다. 당시 김광한은 그가 10대 후반의 소년처럼 보였다고 했지만, 그때 조중훈은 이미 선박기관사 자격증도 따고 스스로 자동차 정비 사업도 하던 20대 초반의 엔지니어였다.

그에 앞서 김광한은 신의주에서도 2년여 동안 머무르며 항공 교육에 종사했는데, 하루는 어떤 여성이 찾아와 비행기 조종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남학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은 끝에 마침내 2급 비행사 면허를 취득한 그때 그 여성이 오늘날 미국 LA의 코리아타운이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소니아 석(1917~1996)이다. 한국 이름이 석숭희였던 그는 일본 학생과 싸운 일로 정학을 당하자 학교를 그만두고는 운전을 배워 17세 때부터 택시운전사로 일했다. 당시 경성(서울)에서 운전을 하던 이정희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두 번째 여성 운전사로 알려졌으며, 때로는 오토바이를 타고 신의주 시내를 질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정희와 소니아 석 모두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소니아 석은 한국전쟁이 나기 전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50년대에는 김치공장을 세우기도 했고 LA에 한인회관을 건립하는 등 교민 사회에 크게 기여하여 지금까지도 기리는 사람이 많다.

김광한은 한국전쟁이 나자 육군항공대 조종사로 복무하면서 318회의 무사고 정찰 비행을 기록했으며 휴전이 된 뒤에도 한동안 군에 남았다. 그가 당시를 회고한 바에 따르면 마치 영화 같은 에피소드들이 꽤 있다. 휴가 간 장군을 급하게 귀대시키느라 충청도 한 시골 마을에 비행기를 착륙시켰다가 몰려든 주민들 때문에 이륙에 애를 먹기도 하고, 선물받은 소 한 마리를 다리를 묶어 비행기에 싣고 나르면서 혹시라도 소가 날뛰어 추락할까봐 소머리를 허벅지에 얹고 달래었던 일 등등.

군에서 전역한 김광한은 민항기 조종사가 되었지만 외국인보다 훨씬 박한 봉급에 어려운 생활 형편을 벗어나기 힘들었다고 한다. 자식 3남매 등 다섯 식구가 단칸방 셋방살이를 못 면하다 결국 그는 60년대 초 미국 이민길에 올랐고 그 뒤로 이 땅에서는 잊힌 인물이 되고 말았다. 일본의 활공사보존협회(滑空史保存協?)에서는 김광한의 기록과 경력을 기념하는 웹페이지를 지금까지도 운영하고 있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곽노필의 미래창 바로가기 http://plug.hani.co.kr/fu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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