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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의료 사고’에 ‘잊혀질 권리’ 첫 판결…국내는?

등록 2019-01-24 10:49수정 2019-04-05 10:08

[구본권의 사람과디지털]

2014년 ‘잊혀질 권리’ 판결 이후 의료 사고 관련 요청 주목
네덜란드 법원 “블랙리스트 의사로 지목되지 않을 권리”
‘공식기구의 판단 vs 구글 알고리즘 판단’ 대립
국내는 ‘임시조치’영향 ‘맛없는 식당’도 검색안되는 실정
중대한 의료 과실을 저지른 의사의 ‘과실 내역’이 인터넷 검색 결과화면 맨 꼭대기에 노출되는 것은 적절한가, 부적절한가?

논란이 뜨거운 ‘의료과실 정보제공’ 문제에 대해 네덜란드 법원이 ‘잊혀질 권리’를 적용해, 검색 결과 첫 화면에서 해당 내용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 21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암스테르담 지방법원은 한 외과의사가 구글을 상대로 낸 검색결과 삭제 요청을 받아들여, 구글에 대해 해당 결과를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외과의사는 수술후 환자 치료에서 의료 과실을 저질러 징계위원회로부터 ‘의사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 해당 의사는 징계에 대해 항소를 제기했고, 자격정지는 조건부로 연기되어 진료를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구글에서 이 의사의 이름을 검색하면 경멸적 표현으로 가득한 비공식 블랙리스트로 연결되는데 소송을 제기한 의사 쪽은 이를 ‘디지털 족쇄’라고 주장하며 삭제를 요구했다.

구글과 네덜란드의 데이터 프라이버시 감시단체(Autoriteit Persoonsgegevens)는 검색 결과 삭제 요청에 대해 해당 의사가 여전히 집행유예 상태이고 문제의 정보는 적절하다는 것을 근거로 링크 삭제에 반대했다.

이 사건은 의사 과실에 관한 잊혀질 권리의 최초 사례로 여겨져 눈길을 끈다. 암스테르담 지방법원은 판결에서 해당 의사는 누군가 구글에서 그 이름을 검색할 때마다 ‘블랙리스트 의사’라는 결과로 지목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암스테르담 법원은 이러한 의사의 권리가 해당 정보에 관한 공중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시했다.

2011년 국내에 소개된 빅토어 마이어쇤베르거의 <잊혀질 권리>.
2011년 국내에 소개된 빅토어 마이어쇤베르거의 <잊혀질 권리>.
재판부는 2014년 의사의 진료 과실에 관한 웹사이트는 정확하지만, 경멸적으로 지칭하는 블랙리스트 사이트는 해당 의사로 환자를 진료할 수 없게 만들며, 이는 의료징계위원회의 판단과도 부합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구글은 “(잊혀질 권리가 적용되면) 많은 사람들이 공개된 의료기록 데이터에서 관련 정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7월 이뤄졌지만, 판결 공개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최근에야 공개됐다.

외과의사의 변호사 빌럼 반 린던은 “의사들이 더 이상 수술의 적합성에 대해 구글에 의해 판단받지 않아도 되도록 만든 획기적인 판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징계위원회가 있지만 그동안은 구글이 재판관 노릇을 해왔다. 구글이 정보를 보여줄지 감출지를 결정했는데, 왜 구글이 그러한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판결 이후 빌럼 반 린던은 사소한 징계를 받은 의사 15명의 기록을 블랙리스트에서 삭제해 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지만, 절반만 수용됐다고 밝혔다. 린던은 “의사 징계위원회는 처벌을 위한 게 아니라, 의사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잊혀질 권리’는 2014년 5월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인 유럽연합 사법재판소가 스페인 시민이 구글을 상대로 요구한 부적절한 검색 결과 삭제 요청을 인정함으로 탄생했다. 마리오 코스테하 곤살레스라는 사람이 2010년 3월 구글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한 결과, 과거 부채로 인해 바르셀로나 주정부가 자신의 주택 경매와 매각 공고를 게재한 신문 『라 방과르디아』(La Vanguardia) 1998년 1월 19일치와 1998년 3월 9일치가 검색결과 화면에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고 삭제를 요청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곤살레스는 검색 당시 사회보장 분담금 빚을 청산했으며 10년도 지난 시점의 금융정보를 노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삭제를 요청했다. 잊혀질 권리는 자신에 관한 검색 결과가 ‘부적절하거나 과도한’ 내용에 대해 삭제를 요청할 수 있게 해주는데, 2014년 판결이후 유럽연합에서 약 300만명이 삭제 요청을 제기했다.

네덜란드 법원의 의료 과실 관련 잊혀질 권리 판결은 구글과 프라이버시 감시단체가 반대한 것에서 드러나듯, 논쟁적인 사안이다.

2014년 잊혀질 권리 판결 직후인 2015년 구글이 자체적으로 삭제 요청을 공개한 사안에서 의료 사고가 관련된 경우가 있으나, 이번 법원의 판결과는 차이가 있다.

영국에서 한 의사가 자신의 의료사고를 다룬 50여 건의 신문기사 링크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한 사안이다. 구글은 해당 의료사고가 언급되지 않고 의사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기사 3건만 삭제하고, 사고를 다룬 나머지 링크는 삭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의료 사고, 의사 과실 정보는 의료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중요한 정보이다. 특정 의사의 이름을 검색했을 때, 검색 알고리즘에 의해 관련 의료 사고 정보가 검색결과 최상단에 노출되곤 했는데 이에 대해 ‘잊혀질 권리’가 적용된 사안은 향후 검색 결과 중립성과 정보 유용성에 대한 논의로 확대될 전망이다. 네덜란드 의사의 변호인이 주장한 것처럼 전문가 위원회의 판단보다 구글의 알고리즘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이다.

국내에서는 유사한 경우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정보통신망법상의 임시조치는 피해를 주장하는 관련자가 포털에서 관련 정보의 삭제를 요청하면 수용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포털 에서 맛집 검색을 하면, ‘맛없는 식당’의 후기는 거의 검색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당사자가 관련 게시글로 피해를 주장하면 삭제해주기 때문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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