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시대의 예술작품’ 전시회에서 이수진 작가가 A.I. 아틀리에와 협업해 밀레의 ‘저녁종’을 모티브로 창작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이 작가는 여자의 발 밑에 놓인 감자바구니가 아이의 관이었다는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프랑스 혁명 당시 봉기한 민중의 이미지를 A.I. 아틀리에로 합성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국내에서 인공지능 창작 도구를 활용한 미술전시회가 처음 열렸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네덜란드 델프트공대의 넥스트렘브란트 프로젝트와 프랑스의 인공지능화가 오비어스 등 인공지능의 미술작품 창작이 화제였지만 국내 전시회는 없었다.
지난달 28일부터 닷새 동안 서울 종로구 인사동 미술세계 갤러리에서 열린 ‘인공지능시대의 예술작품’ 전시회다. 인공지능연구원이 개발한 인공지능 창작 도구 ‘에이아이(AI) 아틀리에’를 이용해, 인공지능 연구자이자 사진작가인 이수진씨가 작업했다. 따라서 전시회는 인공지능 스스로 창작활동을 한 작품들이 아니라, 창작자가 ‘에이아이 아틀리에’를 활용해 표현 의도를 구현한 ‘인간의 작품’들로 구성됐다.
전시작들은 사진작가 장 외젠 앗제, 빈센트 반 고흐, 장 프랑수아 밀레 세 작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에이아이 아틀리에를 이용해 사진과 붓질효과 등 새로운 요소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작품은 모두 1024*768 해상도로 종이에 평면 컬러프린트됐다. 인공지능 창작 도구와 ‘협업’한 창작이라고 도록은 설명했지만 창작자 주도의 작품 활동이라는 점은 여느 미술전시회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인공지능연구원의 박대영 선임연구원은 “기존의 화풍 변환기술(스타일 트랜스퍼)은 사진을 특정 작가의 화풍으로 변화시켜주는 기능만 있는 반면, 에이아이 아틀리에는 콘텐츠의 구도와 내용을 작가가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고 다양한 이미지를 추가해 조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유명 화가의 화풍으로 사진을 바꿔주는 스타일 트랜스퍼는 전체 프레임을 선택해 전이와 변환을 한 번밖에 할 수 없는데, 에이아이 아틀리에는 원하는 영역만 선택해 얼마든지 전환하는 기능이 있다. 전시장에는 관람자가 직접 창작 도구를 작동시켜 창작해볼 수 있는 환경도 제공되었다.
이수진 작가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작품이 전통적 전시공간에 처음 진입했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며 “미술품 전시의 대표적 공간인 인사동에서 미술전문지 소속 갤러리를 전시장으로 선택했고 도록과 액자 등도 의도적으로 전통적 미술품 전시 문법을 따랐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에이아이 아틀리에라는 창작 도구가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과물을 오래 작업할 수 없었고, 연구과제의 결과물 제출이라는 형태로 전시회가 추진된 성격이 있다”면서도 “기술은 갈수록 개선될 것이고 창작자에게는 새로운 창작 도구가 늘어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도구를 활용하면 창작 의지를 가진 누구나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고 작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인공지능연구원이 개발한 창작도구 AI 아틀리에를 작동시켜볼 수 있다. 원본 이미지에서 디지털펜으로 비행기나 달 모양을 그린 뒤 검색하면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사진이미지를 해당 위치에 삽입하는 기능을 간단하게 구현할 수 있다.
국내 첫 인공지능 미술전시회는 알파고처럼 그 결과물이 센세이셔널하지도, 넥스트 렘브란트나 초상화처럼 완벽하지도, 오비어스의 그림처럼 경매에서 거액에 낙찰이 이뤄지지도 않았다.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미술보다는 인공지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인사동 골목에서 짧은 기간 소박하게 진행된 이번 전시회는 인공지능 시대 예술과 창작의 방향을 보여준다. 이 작가는 세 부분의 전시 중에서도 밀레를 소재로 한 7작품에 대해 창작 의도를 별도로 해설하는 등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이는 인공지능 시대에 도구가 강력해져도 도구의 역할보다 사람의 해석과 의미 부여가 여전히 더욱 중요할 것임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고도화할지라도, 예술품은 여전히 작가와 감상자가 얼마나 작품과 활동을 풍부하게 예술적으로 설명하고 의미 부여하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사진 구본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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