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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초신성 관측기록은 케플러보다 꼼꼼했다

등록 2018-02-12 07:01수정 2018-02-12 09:02

서양보다 앞서나갔던 전통 천문학
미 선교사 출신 평양신학교 교사가
1936년 영문 책자 펴내 세상에 알려
영문서적 <한국 천문학>(Korean Astronomy)에 실린 1930년대 당시의 서울 관상감 관천대. 현재 서울 계동 현대건설 사옥 경내에 있다.
영문서적 <한국 천문학>(Korean Astronomy)에 실린 1930년대 당시의 서울 관상감 관천대. 현재 서울 계동 현대건설 사옥 경내에 있다.
태양과 같은 항성은 수명이 다하면 폭발을 일으키는데, 이때 확 밝아진 모습으로 관측되며 신성(nova)이라고 부른다. 한편 태양보다 훨씬 큰 항성은 마지막 폭발 역시 더 거대해서 초신성(supernova)이라고 하는 매우 밝은 별로 나타난다. 그러나 초신성은 매우 드문 현상이어서 우리 은하계 안에서 맨눈으로 관찰된 것은 17세기가 마지막이다. 1604년 10월에 밤하늘에 갑자기 나타나 50일 가까이 금성 다음으로 밝게 빛났던 별이 그것이다. 당시 독일의 유명한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가 이 초신성을 자세히 관찰하고 연구했기에 세계 천문학계에서는 이 별을 ‘케플러의 초신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케플러 초신성에 대해 가장 자세히 관측한 자료가 남아 있는 기록은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선조 37년인 1604년에 장장 7개월여에 걸쳐 이 별에 대해 꼼꼼하게 관찰한 기록이 선조실록에 담겨 있다. 처음 관측한 날짜도 케플러보다 나흘이 빠르고 기록도 매우 상세해서, 현재 세계 천문학계에서는 케플러 초신성의 주요 연구 자료로 선조실록을 채택하고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이렇듯 붙박이별(항성)이 아니라 갑자기 나타난 별들을 객성(客星)이라고 불렀다. 객성의 정체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혜성, 신성, 초신성, 변광성 등이다.

<한국 천문학>에 실린 1930년대 당시의 마니산 참성단.
<한국 천문학>에 실린 1930년대 당시의 마니산 참성단.
우리나라의 전통 천문학이 서양에 처음 체계적으로 소개된 것은 1936년의 일이다. 일찍이 1907년부터 평양신학교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쳤던 W. C. 루퍼스(Will Carl Rufus)는 우리의 전통 천문학에 대해 연구했고, 그 결과를 왕립아세아학회 한국지부 간행물 등에 발표하곤 했다. 그는 1936년에 그간의 연구들을 모아 <한국 천문학>(Korean Astronomy)이라는 영문 책자를 간행했는데, 여기에는 단군, 기자 시대부터 고구려와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 각 나라의 천문학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였다. 특히 조선시대는 매우 상세히 서술해서 전체 내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케플러의 초신성에 대해서도 이 책에 언급되어 있으며, 황적색 빛을 띠는 별이 밝기가 변하면서 점점 어두워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서술해놓았다.

1876년생인 루퍼스는 미국 미시간주의 앨비언대학과 미시간대학에서 공부한 천문학자, 수학자이자 기독교인이다. 1946년에 그가 작고한 뒤 <파퓰러 애스트로노미>에 실린 부고 기사에는 그를 또한 철학자, 시인, 교육자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평양신학교, 연희전문학교 등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쳤으며, 이때의 제자 중 한 사람이 훗날 미국에 유학해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이원철이다. 이원철은 루퍼스와 마찬가지로 앨비언대학과 미시간대학을 다닌 뒤 1926년에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루퍼스의 지도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천문학>에 실린 동양의 별자리 28수 소개 표.
<한국 천문학>에 실린 동양의 별자리 28수 소개 표.
루퍼스는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지내다가 자녀 교육 문제로 1917년께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그 뒤 은퇴할 때까지 미시간대학에서 천문학과 교수로 일했다. 중국과 한국의 전통 천문학을 연구하여 이 분야의 드문 전문가가 되었고, 미국 대학 최초로 천문학사 강의가 개설되는 데에 기여한 과학사학자이기도 했다.

<한국 천문학>에서 본문 못지않게 돋보이는 부분은 권말에 실려 있는 풍부한 그림 자료들이다. 비록 흑백이긴 하지만 1930년대 당시에 입수할 수 있었던 여러 자료를 사진으로 실었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과 서울 관상감 관천대이다. 참성단은 지금처럼 관광사적지로 개발되기 전의 모습이고, 관천대는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정에서 담벼락과 붙어 있는 이채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 관천대는 현재 계동의 현대건설 사옥 부지 안에 있다.

또 참고자료로 실린 표들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동양의 전통 별자리인 28수이다. 각각 동북서남 네 방위를 맡는 청룡, 현무, 백호, 주작 네 신과 그에 따른 일곱개씩의 별자리를 기록했고 이들이 서양 별자리와는 어떻게 대응되는지도 밝혀두었다. 또 이들 각각이 어떤 동물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중에서 십이지신에 해당되는 것은 무엇인지도 다 표시했다. 요즘은 동양에 독자적인 별자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많지만 루퍼스가 80여년 전 이 책을 집필할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교양 상식이었을 것이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1936년에 W.C.루퍼스가 우리 전통 천문학을 소개한 영문 책자 <한국 천문학> 속표지.
1936년에 W.C.루퍼스가 우리 전통 천문학을 소개한 영문 책자 <한국 천문학> 속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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