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가운데)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 강민국(오른쪽) 원내대변인, 전주혜 원내대변인이 9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 국민의힘 국회의원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를 의뢰하기 위해 민원실로 들어서고 있다.공동취재사진단
정의당과 국민의당, 열린민주당, 시대정신, 기본소득당 등 국회 비교섭단체 5당이 9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소속 의원들의 부동산 거래 조사를 의뢰했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와 강민정 열린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국민권익위를 방문해 비교섭단체 5당 소속 국회의원 개인정보 및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를 제출했다. 조사 대상은 5당 소속 의원 14명 전원과 이들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 등이다.
반면,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 등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이날 서울 종로구 감사원을 찾아 감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국민의힘 의원 102명 전원 및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의 부동산 취득 경위와 그 과정에서 비밀 누설, 미공개 정보 활용이 있었는지를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은 삼권분립의 원칙 때문에 국회의원을 감사할 수가 없다”던 석달 전 판단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어서 ‘보여주기식’ 조사 의뢰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추 수석부대표는 “감사원법에 직무감찰 대상으로 국회를 배제한 것은 삼권분립 존중 차원이지만 자발적으로 조사를 의뢰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시비와 관계없이 전문성을 발휘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엘에이치(LH) 사태가 터지고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권익위원회에 전수조사 의뢰를 검토할 때 감사원의 국회의원 조사는 불가능하다고 이미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는 지난 3월19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감사원은 삼권분립의 원칙 때문에 국회의원을 감사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원리상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감사원법 24조에 국회·법원 및 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은 직무감찰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감사원의 국회의원 부동산 거래 조사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당 차원에서 공식 확인한 것이었다. 당시 주 원내대표는 “권익위도 자체 조사 인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권익위원장이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이어서 중립성 때문에 할 수가 없다”며 국회 안에 조사특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대표 경선에 나선 주 전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권분립 원칙이 헌법상 예외도 있기 때문에 ‘우리를 조사해달라’고 해서 그쪽에서 가능하다고 하면 특별히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감사원도 의원 조사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린 상태라, 국민의힘이 요청한 의원 부동산 거래를 검증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군색한 처지가 된 국민의힘에서는 ‘국회의원 부동산 투기 조사가 가능하도록 감사원법을 원포인트 개정하자’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김기현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감사원 감사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감사원법 개정은) 여당만 합의하면 될 것 같은데 여당이 왜 자꾸 발을 빼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도 <와이티엔>(YTN)에 출연해 “원포인트로 감사원법 24조를 빨리 개정하자는 게 저희(당) 입장”이라며 “여당이 동의해주신다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이런 태도는 삼권분립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면서까지 민주당이 감사원법 개정에 반대해 조사가 어렵다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비판이 커지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권익위에 조사를 맡기자는 의견이 나온다. 당권주자인 조경태 의원은 “감사원 감사가 현행법에서 가능하지 않다면, 권익위원회에라도 조사를 의뢰하는 게 맞는다”며 “(전현희) 권익위원장이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이기 때문에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사명감이 높은 권익위 공무원을 믿고 맡겨도 된다”고 밝혔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