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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큰 정부의 시대…방만재정·빅브라더는 막아야 한다

등록 2021-01-05 04:59수정 2021-01-05 07:16

[새해 연속기고] 2021, 11개의 질문 ③ 국가의 귀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권범철 kartoon@hani.co.kr
권범철 kartoon@hani.co.kr

코로나19의 짙은 그림자가 걷히지 않은 채 새해를 맞는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과 인식과 삶과 관계를 모두 바꿨다. 그동안 인류가 구축해온 유·무형의 자산과 가치와 체계와 질서를 코로나19는 하루아침에 허물어뜨렸다.

코로나19가 사라지더라도,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2021년 초두, <한겨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코로나19 이후의 전망을 담은 석학과 전문가들의 특별기고 ‘2021, 11개의 질문’을 마련했다.

코로나19의 경제적 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2020년 6월 세계은행이 내놓은 ‘2020년 세계경제전망’(Global Economic Prospects)에 따르면 선진국은 물론 신흥경제국들까지 반세기 만에 최대의 경기 위축을 겪을 것이고, 전세계 국가의 93%는 국내총생산(GDP) 감소를 겪을 텐데, 이것은 1870년 이후 최악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여기에 더욱 악화된 불평등이 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세계는 커져가는 불평등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세계에서 중산층이 늘어나는 유일한 나라는 중국밖에 없었다. 이제 코로나19는 사회적 약자들과 그들이 사는 공간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코로나19는 빈민들이 밀집한 지역, 콜센터나 물류센터 같은 특수고용의 현장, 요양원과 같은 노인들의 거처, 서울동부구치소와 같은 주변인들의 공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세계적인 지속가능발전목표도 흔들리고 있다. 유엔개발계획은 지난 30년간 세계가 극복해온 여러 위기와는 달리 건강, 교육, 소득을 동시에 무너뜨리는 코로나19는 이 추세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모두가 국가의 귀환을 원하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인가 해야 하고, 그것을 할 주체는 국가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어마어마한 큰 정부의 시대이다. 미국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2조6천억달러를 이미 썼거나 배정해 놓고 있다. 한국 정부 연간 전체 예산의 4배가 넘는 돈을 코로나19에만 쓴다. 아시아 주요국들은 이미 7조달러를 썼고, 일본은 지디피의 절반에 가까운 2조2천억달러를 썼고, 중국은 지디피의 7%를 배정해 놓았지만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더 쓰겠다는 입장이다. 한국도 코로나19 추경과 한국형 뉴딜 예산을 합치면 200조원이 넘는 돈을 썼거나 쓸 계획이다. 스티글리츠는 경제의 규칙을 새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규칙의 내용이 무엇이든, 공통점은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문제는 어떤 국가냐이다. 순진해 보일 정도로 낙관적인 전망은 세계경제포럼이 내놓았다. 마치 2차 대전 때 겪은 보편적 공포의 기억이 전후에 사람들로 하여금 관대한 복지국가를 지지하게 만들었듯이 팬데믹은 어쩌면 더욱 너그럽고 포용적인 복지국가로의 또 한번의 전환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다. 과연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더 관대한 복지와 더 평등한 사회와 약자들을 위한 더 많은 공적 지출에 동의하게 될까?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고령화의 진전과 더불어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들고 로봇과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그 줄어든 경제활동인구조차 취업하지 못하는데 코로나19는 노동시장에 또 한번의 타격을 가했다. 관대한 복지국가를 위한 세금을 낼 사람이 없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

언제까지 지금처럼 돈을 쓸 수 있을까? 그나마 한국처럼 예산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쓸 수 있는 나라는 행복한 편이다. 아시아에서도 한·중·일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이 정도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고 이들은 국제금융시장의 역대급 저금리에 의존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가고 나면 부채 쓰나미가 몰려올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국가의 역할은 늘어나야 하지만 갑자기 커져버린 정부의 규모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다음은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생활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국가가 괴물로 변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출입통제를 위해 중국 우한에서 처음 떴던 드론은 벨기에의 브뤼셀, 스페인의 마드리드, 프랑스의 니스로 이어졌고, 마침내 한국에서도 신축년 해돋이 인파를 감시하기 위해 드론을 띄웠다. 휴대전화 위치정보, 신용카드 사용내역과 함께 이제는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정보무늬(QR코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대기업과 정부는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중국의 큐아르코드는 색깔 구분까지 되어 있어서 녹색은 정상, 노란색은 접촉자, 빨간색은 확진자를 뜻한다. 더 황당한 것은 막상 본인들은 자신이 왜 노란색이나 빨간색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빅데이터를 분석한 인공지능이 그에게 노란색이나 빨간색이라는 전자 주홍글씨를 새겨주었을 뿐이다.

지금은 방역을 위해 사용하는 이 방대한 데이터를 팬데믹 이후에 다른 목적으로는 쓰지 않게 될까?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자, 이제 데이터를 쓰지 않던 과거로 되돌아갑시다”라고 합의하게 될까?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얼굴인식이나 전자결제의 보편화로 데이터를 마음대로 쓰던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그 정치적 위험성에 대해 물으면 이런 답이 돌아오곤 했다. “맞아, 아주 위험하지. 우리도 알면서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편하니까 계속 쓰게 돼.” 이것이 정답이다. 이제 세계는 데이터 활용이 목숨을 살려줄 수도 있고, 정밀한 정책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해버렸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어떻게든 쓸 것이다. 데이터를 쓰지 말자는 당위가 아니라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전제로 새로운 리바이어던의 등장을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결론은 두 가지이다. 국가의 역할은 커져야 하지만 재정은 건전해야 한다. 데이터는 쓸 수밖에 없지만 빅 브러더는 막아야 한다. 모순돼 보이는 이 두 개의 명제를 실현하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국가 설계의 핵심이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공적 사회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그런데 우리보다 2~3배 많은 공적 사회지출을 하는 유럽 국가들은 왜 처참하게 방역에 실패했을까. 무소불위 같아 보이던 슈퍼강대국 미국은 왜 최악의 코로나 피해국가가 되었을까. 공통점은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정부라는 행정적 요인과 과학적 증거를 외면하게 만드는 정치적 요인이다. 증거와 과학에 기반한 정책과 합리적이고 통합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복지국가의 규모를 키우기에 앞서 증거와 과학에 기반해 모든 비효율과 낭비를 제거해야 한다. 거대하게 돌아온 국가는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는 국가라야 한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 정책과 정권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 사용의 민주성을 보장하는 안전장치의 제도화와 기술적인 대안을 선도해나가야 한다. 팬데믹 직후부터 필자가 ‘과학기반 복지국가’라고 불러왔던 주장의 요체이기도 하다.

케이(K)방역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백신 도입이 기대보다 늦어졌다고 해서 이제 케이방역은 실패했다는 비판도 많지만, 전세계 데이터를 펼쳐놓고 보면 아직도 우리는 아주 잘하고 있다. 오히려 케이방역 성공의 진정한 위험성은 다른 곳에 있다. 성공을 지키기 위한 정치논리가 과학적 정책의 발목을 잡기 시작할 때 케이방역은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자리에 멈춰 있을 것이다. 케이방역의 성공을 넘어 효율적이지만 유능한 국가, 과학에 기반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전망을 제시하려는 야심찬 미래를 펼쳐야 한다. 케이방역의 성공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를 앞장서서 정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 여기에 좋은 예가 있다. 백신을 공동개발한 옥스퍼드대학과 아스트라제네카는 팬데믹이 종료될 때까지 이윤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을 것이며, 부자 나라들의 백신 선점을 막기 위해 전세계에 고루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팬데믹이 지나간 이후 누가 진정한 리더로 평가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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