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 ㅣ 정치부장
“내가 밥을 굶지 않아야 남도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하지 않겠나.”
전화선을 타고 한숨이 들려왔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의 황계성 조직강화특별위원장은 코로나19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더 큰 난관에 부닥치리라고 전망했다. 그와 연락을 한 27일은 인천국제공항공사 문제를 계기로 시작된 ‘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중단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25만명을 넘긴 날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역시 문재인 정부 들어 시행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2017~18년 두 차례에 걸쳐 청소·시설 용역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했고, 지난해엔 1600명에 이르는 고객센터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달 초 건보공단은 사실상 정규직화를 중단했다. 고객센터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노조원들의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노조가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특히 20대 노조원 중 정규직화 찬성 비율은 0.88%에 불과했다. 황 위원장은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며 정규직을 설득하면 찬성 여론이 확산될 줄 알았다. 그러나 교육을 하면 할수록 반대 여론만 조직화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관통하면서 많은 한국인은 연대와 배려의 가치를 습득했다고 한다. 나의 부주의가 남에게 피해를 줄까 염려하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동참했고, 의료진의 헌신에 경의를 표했다. ‘이태원 집단감염’ 사태 때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로 번져선 안 된다는 여론도 일었다. 효율적인 방역과 정부의 발 빠른 지원 등으로 공동체적 역량도 재삼 확인했다. ‘국가의 귀환, 정치의 소환, 지자체의 발견’이란 표현에 공감한 이유다. 과연 우리는 재난 속에서도 ‘더 좋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최근 한 ‘포스트 코로나 인식조사’는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응답자들은 코로나 이후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더 나은 사회가 될 거라고 대답했다. 물론, 이때 눈여겨볼 점은 한국 사회에 대한 신뢰 여부가 문재인 정부의 지지 여부에 따라 나뉜다는 것이었다. 희망의 근거가 정파적인 만큼 뿌리가 얕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또 있었다. 삶의 질이 중요하냐, 경제적 성취가 중요하냐 물었더니 후자가 더 많았다. 연대와 협력보다 경쟁과 자율, 개인 간 능력 차이를 보완한 평등 사회보다 경쟁력을 중시하는 사회에 더 공감했다. 공동체보다 개인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이런 흐름은 2018년 동일한 조사보다 더 강화됐다.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정해진 절차에 따랐음에도, 대중들의 분노가 불붙는 현상은 포스트 코로나 인식조사 결과와 궤를 같이한다.
코로나가 소환한 한국 정치는 상이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삶을 개선해야 하는, 진정한 책임정치의 국면에 들어섰다. 우리는 아직 정규직화의 ‘정의’에 대해서조차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간접고용에서 직접고용으로, ‘기간이 정해진 고용’에서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고용’으로 바뀌었을 뿐, 정규직이 되면 구체적으로 노동의 질이 어떻게 좋아지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호봉제 적용 여부, 승진, 복리후생 등 합의를 봐야 할 것들이 쌓여 있는데, 여전히 ‘고용기간의 정함’ 조항을 없애는 데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이제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경제난으로 나눠야 할 파이가 줄어들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도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옆의 사람이 밥을 먹었는지 물어볼 선의를 지닌 존재들이기도 하다.
책임정치를 약속하는 여당에게 묻는다. 선한 의지와 생존 욕망의 모순적 공존을 얼마나 냉철하게 직시할 수 있는가. 시민들이 나눔과 재분배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내 역량 부족은 내 잘못이다’라는 죄책감,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불신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 것인가. 삶의 리얼리티는 이상의 하늘이 아니라 땅 위에서 구른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화 논란을 보면서 제도 설계의 미비점은 살피지 않고 어느 한쪽만 꾸짖는 여권 정치인들의 입이 거칠게 느껴진다.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