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 | 정치부장
아…. 4월15일 저녁 출구조사 결과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진짜 안 되는 건가?
그를 만난 건 4년 전이다. 나보다 나이 어린 30대 국회의원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가족을 지역구에 두고 혼자 서울에 떨어져 사는 게 낯설다고 했고, 상임위원회 관련 현안을 파악하기 위해 사법시험 볼 때만큼 열심히 공부한다고 했다. 가장 관심 있는 분야가 무엇이냐고 묻자 “교육, 그리고 기회의 평등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열세로 나온 출구조사 결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현장에서 넘어오는 총선 기사를 손질하는 틈틈이 그가 속한 선거구의 개표 상황을 살폈다. 표차는 좀체 줄지 않았고 자정이 채 되지 않은 시각, 상대 후보 이름 앞에 ‘당선 확실’이란 타이틀이 떴다. 40대가 된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김해영(부산 연제)은 결국 재선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선거일 사흘 뒤 김해영에게 전화해 안부를 물었다. 낙선인사 중이라고 했다. 4년 뒤를 기약하며 열심히 뛰겠다는 그에게 21대 국회에 들어올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현안에 대해 분명한 의견을 밝혀야 한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욕을 먹더라도 말하는 게 옳다.”
적어도 김해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첨예한 갈등적 의제들 앞에서도 용기 있고 일관되게 소신을 밝혀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명 직후 자녀들의 진학 문제가 논란이 됐을 때 “교육은 격차 완화의 수단이 돼야 한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했고, 문희상 국회의장의 지역구 세습 시도가 불거졌을 때도 공개 비판했다. 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의 과반 의석 확보를 막아야 한다’며 위성정당 창당에 뛰어들 때도 “우리가 그러면 안 된다”고 반대한 것도 그였다. 조 전 장관에 대한 발언 이후 지지자들로부터 ‘문자 폭탄’이 쏟아질 때 어땠느냐고 했더니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감내해야 할 일이다. 정치인이면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이번 총선에서 민심은 변화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조건적 반대와 혐오를 일삼는 퇴행적 야당을 심판했다. 그 덕에 민주당은 압승했다. 이렇게 탄생한 ‘180석 슈퍼여당’을 두고 사람들은 “개헌 빼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법안이 있다면, 야당이 반대해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올려 처리하면 된다. 민주당은 드디어 의회 권력의 절대반지를 쥐게 된 것일까?
나는 좀 불안하다. 불어난 몸집만큼 위험 요인도 커졌다. 지금은 60%에 육박한 대통령 지지율이 여권 전체를 떠받치는 형세다. 그러나 조만간 닥쳐올 코로나발 경제위기는 견고해 보이는 것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릴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건강함을 잃지 않으면서 위기 대응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정당 내부의 정치적 역동성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다.
지금은 ‘폭망기’가 다분한 미래통합당이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2000년대 초중반 미래통합당의 전신 한나라당은 당시 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라는 소장파 트리오가 주요 현안마다 독자적 목소리를 내며 당 주류와 충돌했다. 하지만 당시의 한나라당에서 그들은 분란을 키우기보다 당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들로 평가받았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승리에는 중도로 당의 외연을 확장한 그들의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턴가 ‘다름’에 대한 인내심이 사라진 당 주류는 다수 의견에서 이탈한 이들을 잇달아 솎아내기 시작했다. 종 다양성이 사라지고 ‘친박’이란 단일 우세종만 남게 된 그 당의 현재는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바대로다.
2015년 비주류 집단탈당 이후 민주당은 주류·비주류가 따로 없는 ‘단일 계파 정당’이 됐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압승을 거치며 민주당의 ‘단일색’은 한층 강화됐다. 자칫 소모적인 충성 경쟁이 당의 역동성을 해칠 수도 있었지만 민주당은 건재했고, 더 크게 승리했다. 민주당에는 있고 통합당에는 없었던 입바른 초선들의 기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21대 국회에서는 더 많은 ‘초선 김해영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4년 뒤의 ‘재선 김해영’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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