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전체회의에 참석한 황창규 KT회장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케이티(KT)가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의 비서관을 ‘연구조사역’이라는 직함을 주고 로비 목적으로 채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한겨레> 보도를 통해 제기된 가운데 전직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권 인사들과 군·경찰 출신 등 고위 공무원 12명의 전관들이 비슷한 명목으로 케이티로부터 수천만~수억원의 자문료를 받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경영고문 명단을 입수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케이티 황창규 회장이 20억원을 들여 정·관·군·경 ‘로비 사단’을 구축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24일, 황창규 회장이 취임(2014년 1월)한 뒤 케이티가 월 474만~1370만원의 자문료를 지급하고 채용한 ‘경영고문’의 명단을 공개했다. 짧게는 5개월, 길게는 4년까지 계약이 이어진 12명의 경영고문 중 정치권 인사는 모두 6명이었는데 그 중 3명이 각각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의 정책특보, 재보선 선대본부장, 비서관을 지낸 측근들이라고 이 의원은 밝혔다. 이들이 경영고문으로 위촉된 2014~2015년, 홍 의원은 정보통신 업무를 담당하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방위) 위원장이었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개인의 취업 활동에까지 정치 논리로 불법 여부가 결정되는 시스템으로 변경된 것이냐”며 “케이티 인사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밖에 박성범 전 의원과 남아무개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이아무개 경기지사 특보도 경영고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의원은 고위공무원 출신 경영고문들이 정부가 발주한 사업을 케이티가 따내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2016년 2월 케이티가 수주한 750억원짜리 ‘국방 광대역 통합망 사업’ 입찰에는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신참모부장과 육군정보통신학교장을 지낸 육군 소장 출신 남아무개 고문이 참여했다. 입찰 비리를 막기 위해 입찰 제안서에는 특정인을 드러내는 게 금지돼있지만 당시 케이티는 입찰 제안서에 남 고문을 ‘국방사업자문위원장’으로 표시해 입길에 올랐다. 이 사업을 심사한 국방부 심사위원장은 남 고문이 거쳐간 합참 지휘통신부 간부이기도 했다.
이 의원은 케이티에 경영고문으로 위촉된 김아무개 국민안전처 민방위정책관, 강아무개 행정안전부 정보화전략실장, 차아무개 방송통신위원회 이용자보호국장(퇴직 전 직함)도 “정부 사업 수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밝혔다. 케이티가 2016년 1월 따낸 252억원 규모의 ‘긴급 신고전화 통합체계 구축 사업’의 발주처는 국민안전처였다. 케이티가 채용한 경찰 출신 경영고문(김아무개 전 강원지방경찰청장, 박아무개 경찰청 정보국 분실장)은 “사정·수사당국 동향을 파악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줄 수 있는 정보통들로 골랐다”고 이 의원은 덧붙였다.
황 회장 취임 뒤 경영고문으로 위촉한 이들에게 최근까지 지급된 자문료는 20억원에 이르지만 케이티는 이들의 구체적인 활동 내역을 이철희 의원실에 제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의원은 이들 경영고문이 집중적으로 위촉된 2015년은 △유료방송 합산규제법 △에스케이브로드밴드-시제이헬로비전 합병 △황창규 회장의 국정감사 출석 등 민감한 현안이 많았을 때라며 “내부 임원들조차 이들의 신원을 정확히 알지 몰랐다. 공식 업무가 없거나 로비가 주업무였던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2017년 케이티 쪼개기 정치 후원금 수사 과정에서 경영고문 채용 사실이 확인됐다며 경찰에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 의원은 “2017년 말 시작된 경찰 수사가 1년 넘게 지지부진한 것도 황 회장이 임명한 경영고문들의 로비 때문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황 회장이 회삿돈으로 정치권 줄대기와 로비에 나선 걸로 보이기 때문에 엄정한 수사를 통해 전모를 밝히고 응분의 법적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케이티는 “해당 사업부문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해 위촉했고, 정식으로 고문·자문 계약도 맺었다”고 해명했다.
김태규 김재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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