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오른쪽)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청사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헌정 사상 첫 법관 탄핵을 위한 국회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사법 농단에 단호한 대처를 촉구하는 여론과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 야당 사이에 선 여당의 정치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20일 사법 농단 사건에 연루된 현직 판사의 탄핵 소추를 위한 실무 절차 검토를 시작했다. 전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탄핵 소추 필요성에 의견을 모은 지 하루 만에 발 빠르게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민주평화당·정의당 등 탄핵에 동참하겠다는 야당과 함께 재판개입 의혹이 불거진 권순일 대법관 등 최소 6명 이상의 탄핵 소추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이 사법권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어, 국회의 탄핵소추안 처리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 민주, 실무검토 착수…1차 대상 6명 꼽아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사법부 내부에서 자성과 개혁의 목소리가 나온 것을 높게 평가한다”며 “민주당은 동의하는 야당과 협의해 특별재판부 설치와 법관 탄핵 소추 논의를 즉각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도 “사법부 내에서 사법부 독립을 훼손한 재판거래 행위에 대해 탄핵하겠다는 의견이 제시된 이상, 국회는 법관 탄핵에 착수하는 것이 옳다”고 논평을 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의원총회에서 “여당은 조속히 탄핵소추안 발의를 위해 이에 동의하는 정당 간 논의 테이블부터 구성하라”고 제안했다.
민주당은 이날 곧바로 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이 모인 긴급 간담회를 열어 탄핵을 위한 실무검토에 들어갔다. 송기헌 민주당 법사위 간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탄핵 소추 대상 기준 등과 관련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도 있고 13명 법관 징계 요청서도 있어 관련 내용을 가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실무검토에 착수하긴 했지만, 실제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탄핵 대상자 선정이다. 민주당은 구체적인 탄핵 대상 판사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재판개입 의혹으로 헌법 위반이 명백하다고 지목한 법관 6명(권순일 대법관, 이민걸·이규진·정다주·박상언·김민수 판사)을 1차 탄핵 소추 대상으로 보고 있다. 2013년 9월,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열리기 전날, 청와대를 방문한 권순일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 차장)도 1차 대상으로 꼽힌다. 사법 농단 사건을 자체 조사한 특별조사단이 대법원에 징계를 청구한 13명 가운데 이미 재판 업무에서 배제된 이민걸 판사 등 5명을 뺀 8명도 탄핵 검토 대상자다. 권순일 대법관까지 포함하면 탄핵 검토 대상자가 14명이 된다.
■ 의결정족수 확보 등 갈 길 먼 탄핵 민주당 등이 법관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 야당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국회에서의 판사 탄핵 소추는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와 재적 과반 찬성으로 가결된다. 탄핵에 동의하는 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민중당, 무소속 의원까지 합치면 탄핵소추안 통과 의석수를 확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탄핵 추진으로 인해 여야의 ‘대결’이 극한으로 치닫지 않도록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도 탄핵에 동참하도록 최대한 설득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두 당은 사법부 독립 침해 등의 이유를 들며 탄핵에 반대하고 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전날 전국법관대표회의 결과를 거론하며 “판사들이 정치 행위를 하려면 정계로 진출해야 한다”고 깎아내렸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검찰이 수사하고 있고 탄핵 대상을 국회가 특정하기도 어려워 현 단계에서 법관 탄핵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민주당에선 자유한국당 소속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이번 탄핵 추진 과정에서 최대 ‘난제’란 얘기도 나온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뒤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면 검사와 같은 역할인 탄핵소추위원장을 법사위원장이 맡는다. 판사 출신인 여 의원은 판사 탄핵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이은애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사법 농단 내용을 물으려는 의원들의 질의를 막고 고성을 질러 “대놓고 친정 감싸기를 한다”는 지적이 자유한국당 안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탄핵소추위원장을 맡으면 판사 탄핵을 위한 적극적인 법적 논리를 펼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여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법사위원장이 당연직으로 탄핵소추위원장이 되는데 수행을 해도 형식적 수행밖에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애 김태규 정유경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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