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전날 발표된 기무사 개혁위원회의 개혁안은 면죄부에 불과하다며 기무사 해체 수준의 개혁안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현재의 기무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재편해 과거와 전면적이고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3일 국군기무사령부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하라고 지시하면서 한 발언이다. “과거와 전면적이고 역사적으로 단절된”이라는 표현을 쓴 데서 대통령의 심중을 읽을 수 있다. 군의 수사정보기관으로 주로 대공·방첩 업무를 해온 기무사는 대한민국 역사 동안 정치개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무사의 연혁은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조선경비대 정보처에 대공 업무를 담당하는 특별조사과가 설치된다. 이 기구가 기무사의 전신이다. 이후 특별조사대, 육군본부 정보국 특무대(방첩대) 등으로 개편됐다. 1949년 방첩대의 김창룡 대장은 김구 선생 암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한국전쟁 이후 대공 업무 확대 필요성에 따라 육·해·공군 부대에 대공전담기구가 창설됐고, 이후 1977년 국방부 장관 직속기관으로 육·해·공군의 보안부대를 통합한 국군 보안사령부(보안사)가 탄생했다.
보안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권력 공백 상황에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노태우 등과 함께 12·12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들끓는 민주화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야당 정치인, 민주화운동 가담자들을 체포했다. 5·18 민주화운동을 무력진압하고 그해 11월 언론 통폐합으로 언론까지 장악하려 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90년 보안사가 김대중·김영삼·노무현 등 1300여명의 재야인사를 사찰해온 사실이 내부고발로 탄로 났다. 이른바 ‘윤석양 이병 폭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보안사 해체 요구가 거세지자 보안사는 이듬해 기능을 축소하고 ‘기무사령부’로 이름을 바꿨다. 기무는 사전적 의미로 '비밀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일', '근본이 되는 일'이라는 뜻이다. 군 수사·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듯했다.
문민정부 이후에도 기무사는 군 내에서 정보를 장악하고 대통령에게 독대 보고를 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누려왔다. 다만 기무사의 활동이 일반 대중에 알려지진 않았다. 기무사가 다시 논란을 일으킨 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댓글 공작을 한 사실이 지난해 밝혀지면서다. 또 기무사가 세월호 유가족까지 사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무사 개혁 요구는 더욱 커졌다. 많은 시간과 기회가 있었음에도 기무사 스스로 개혁을 하지 못하고 급기야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계엄을 모의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기무사는 2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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