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정치일반

장애인 참정권 아직도 높은 문턱, 한뼘 낮아진다

등록 2018-04-19 21:18수정 2018-04-19 22:20

패럴림픽 철인에게조차 힘든 투표소
‘투표소 1층 설치’ 등 법 개정 불구
1.7%인 200여곳은 조건 못 갖춰
“후보토론 방송 수어통역·자막 확대
문맹자 위한 그림투표용지도 필요”

선관위, 6월 지방선거때부터 일부 개선
휠체어 사용자용 대형 기표대 도입
손떨림 무효표 막게 기표용구 작게
투표정보 제공 ARS·음성CD 발송도
손·발 장애인용 기표용구도 편리하게
'제7회 지방선거 장애인 모의 투표체험'이 29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에서 열려 장애인들이 보조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 투표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제7회 지방선거 장애인 모의 투표체험'이 29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에서 열려 장애인들이 보조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 투표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506호. 평창겨울올림픽지원특위 전체회의에 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스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신의현 선수, 파라 아이스하키팀 소속으로 동메달을 목에 건 한민수 선수가 참석했다. 국회는 장애인 이동 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복도와 엘리베이터가 넓어 휠체어 이동이 수월하다. 문턱도 없다. 의족 보행이 가능한 두 선수는 이날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전체회의에서는 다큐멘터리 <우리는 썰매를 탄다>의 한 장면이 상영됐다. 장애인 선수들이 문턱을 넘지 못해 경기장 입장에 애를 먹고 있었다.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장애인 선수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출입문 턱을 탈부착할 수 있다고 한다.

사흘 뒤 열린 국회 본회의. 장애인 등 이동 약자의 투표소 접근 편의를 보장하는 방안을 ‘공직선거관리규칙’으로 정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기존 규칙에는 ‘투표소 설비’ 조항만 있었는데, 이번 개정으로 ‘투표소는 1층 또는 승강기 등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마땅한 장소를 구하지 못한 경우에는 투표소 입구에 장애인 등을 도울 투표 사무원을 배치하거나 임시 기표소를 설치하도록 했다.

패럴림픽 7개 종목에 출전해 9일 동안 63.93㎞를 내달린 철인 신의현 선수도 의족을 쓰지 않으면 참정권을 가로막는 투표소 문턱을 쉽사리 넘지 못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13 지방선거를 위해 투표소 1만4133곳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1층 또는 승강기 조건을 갖춘 투표소는 1만3896곳(98.3%)이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지만 장애인들은 나머지 1.7%에 주목한다. 문재인 정부 ‘국민인수위원회’ 소통위원이었던 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소장은 19일 “선관위가 투표소 선정에 섬세하지 못하다. 매번 이용하던 건물만 쓰다보니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투표율 26%를 넘긴 사전투표소 상황은 여전히 안 좋다. 이번 지방선거 사전투표소 3512곳 중 2904곳(82.7%)만이 1층 또는 승강기 조건을 충족한다. 임시 기표소가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기존에 임시 기표소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장애인들은 “기표한 투표용지를 선관위 직원 등이 대신 받아갔다. 내 손으로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해 불안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공직선거법의 투표소 설치 규정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차별금지 조항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비장애인 참정권은 후보자와 공약을 알 권리부터 투표 결과를 확인할 권리까지 모두 포함한다. 반면 장애인 참정권 논의는 투표소에서 멈추기 마련이다. 홍 소장은 “휠체어 이동이 다가 아니다. 공보물 제작부터 개표 참여까지 장애 유형별 특징을 파악한 참정권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끄럽다며 민원 대상이 되곤 하는 확성기 유세조차 시각장애인에게는 유용한 정보습득 수단이 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이 후보 토론회 방송을 보려면 수화통역이 필요하다. 보통 2명 이상의 후보자가 나오는데 수화통역사는 한 명뿐이다. 어느 후보가 어떤 말을 하는지 구별이 어렵다고 한다. 청각장애인들은 2명 이상의 수화통역사를 한 화면에 배치하고 수화통역과 자막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손 떨림이 심한 발달장애인에게 투표용지의 칸은 너무 좁다. 애써 투표를 하고도 무효표가 되곤 한다. 글씨를 못 읽는 발달장애인은 정당 로고나 후보자 사진 등이 들어간 그림투표용지를 요구하기도 한다. 시설 등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투표소에 직접 가고 싶어도 일률적으로 거소투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시설 직원 등이 특정 후보나 정당을 찍도록 강요했다는 논란이 불거진다. 장애인단체 등은 시설마다 선관위 직원이 배치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댓글’ 하나도 부정투표 논란으로 번지는 요즘, 공정성을 의심 받는 장애인 투표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선에는 전국 1073곳의 장애인 수용 기관과 시설에서 거소투표가 이뤄졌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물의 경우 점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면수가 3배 정도 늘어난다고 한다. 공직선거법은 점자형 선거공보물의 면수를 일반 선거공보물과 동일한 16쪽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또 시각장애인용 선거공보물을 점자형 또는 음성변환 바코드 중에 선택하도록 했는데, 바코드는 음성변환 출력기나 스마트폰을 통해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지난해 대선을 기준으로 시각장애 유권자는 6만2907명이다.

중앙선관위는 주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책간담회 등을 통해 장애인 참정권 보장 방안을 개선해 나가고 있다. 오는 25일에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 8개 장애인단체가 참석하는 정책간담회가 열린다. 장애 유형별 참정권 보장 방안이 집중 논의될 예정이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에 휠체어 장애인 등이 쉽게 기표할 수 있도록 폭을 120㎝로 넓힌 대형 기표대를 제작해 전국 모든 투표소에 설치한다. 무효표 발생을 줄이기 위해 기표용구 지름을 기존 1.2㎝에서 1㎝로 축소했다. 문자로 된 선거정보에 접근이 어려운 유권자를 위해 음성으로 투표안내 정보를 제공하는 자동응답시스템(ARS)도 도입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투표안내문을 점자와 음성(CD)으로 제작해 해당 세대에 발송한다. 손이나 팔을 쓰기 어려운 신체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손목형·마우스형 기표용구 세트도 개선했다. 작은 변화지만 효과가 분명한 것들이다.

국회가 법을 바꿔야 개선이 가능한 것도 있다. 중앙선관위는 점자형 선거공보물 면수 확대 요구에 대해 “시각장애선거인의 알 권리를 보장하려는 취지에 공감하지만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음성변환 바코드의 효율성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했다. 2016년 헌법재판소는 점자 해독율(5%)과 음성 선거정보 제공 등을 들어 해당 공직선거법 조항을 합헌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거소투표가 이뤄지는 기관과 시설에 선관위 직원이 상주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서는 “1천여 시설에 인력을 상주시키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허위·대리투표를 금지하는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순회 점검을 통해 위법행위를 방지하겠다”고 했다. 문응철 중앙선관위 대변인은 “제도적 한계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 아직은 좀 부족한 점도 있지만, 장애인 유권자의 투표편의 서비스를 하나씩 개선해 나가고 있다. 실질적인 참정권 보장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퇴진 거부…“계엄은 통치행위, 사법심사 안 돼” 1.

윤석열 퇴진 거부…“계엄은 통치행위, 사법심사 안 돼”

한동훈, 윤석열 담화에 “사실상 내란 자백…당론으로 탄핵 찬성하자” 2.

한동훈, 윤석열 담화에 “사실상 내란 자백…당론으로 탄핵 찬성하자”

조국, 오늘 오전 대법원 선고…징역 2년 확정시 의원직 상실 3.

조국, 오늘 오전 대법원 선고…징역 2년 확정시 의원직 상실

정규재 “윤 대통령 과도한 알코올로 국정수행 불가능” 4.

정규재 “윤 대통령 과도한 알코올로 국정수행 불가능”

[속보] 윤석열 “선관위 못 믿어 점검 지시”…극우 유튜버 주장 반복 5.

[속보] 윤석열 “선관위 못 믿어 점검 지시”…극우 유튜버 주장 반복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