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민(왼쪽·17)양과 김윤송(가운데·15)양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3번출구 앞 선거연령 하향 4월 국회 통과 촉구 농성장 앞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난 22일 국회 앞에서 18세 선거권 하향을 요구하며 삭발을 한 두 사람은 20일째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7일 9급 국가공무원 채용 필기시험이 전국에서 진행됐다. 응시 자격은 만 18살부터였다. 18살부터 8~9급 공무원 시험에 응할 수 있어서다. 모집 분야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행정직도 포함됐다. 18살부터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을 엄격히 관리하는 선관위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느 법(공무원임용시험령)은 18살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고, 어떤 법(공직선거법)은 18살이면 아직 모른다며 투표권도 안 주고. 기준이 너무 웃겨요.”
삭발을 한 17살 김정민양이 말했다. 그는 국회 정문으로 향하는 큰 도로 옆에 ‘점’처럼 보이는 작은 천막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9일로 농성 19일째다. 만 19살부터 가능한 현행 선거권(투표할 권리) 나이를 한 살 낮춰 ‘18살 이상’으로 바꾸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18살부터 선거운동과 투표를 감시·관리하는 중앙선관위 공무원도 될 수 있는데, “18살은 미성숙하다”며 투표를 못 하게 하는 ‘모순’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지난 3월22일 15살 김윤송양 등 다른 청소년 2명과 함께 국회 앞에서 투표 나이 인하를 촉구하며 삭발한 뒤, 거리 농성을 시작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어린이책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와 다른 청소년들이 이들 곁에서 지지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6·13 지방선거부터 18살 투표가 가능하도록 4월 임시국회에서 선거법을 개정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16살 투표까지 나아가기 위해 일단 18살 투표를 주장한다. 농성은 4월 국회가 끝나는 5월1일까지 이어진다. 이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시작으로, 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 의원 일부가 천막 지지 방문을 이어간다. 천막에서 만난 김윤송양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청소년이 참가했지만 정권을 바꾸는 대선 때 투표하지 못했다. 정권이 바뀐 뒤 첫 선거인 지방선거부터라도 청소년이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투표 나이 인하에 주저하는 국회 모습이 ‘지체된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여긴다. 정민양은 “국회가 머뭇머뭇하는 게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전날 밤 “두통이 오고 체력이 떨어져” 왼쪽 팔에 영양주사를 맞았다.
이들이 삭발까지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청소년·교육단체 연대모임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등에 속한 청소년들은 지난해 12월 현행 선거법이 ‘동등한 시민’인 청소년의 정치참여 권리(참정권)을 막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지난 1월엔 “투표 나이를 낮추면 전교조 교사들이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청소년은 참정권을 누리면 안 된다”고 말한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대구 북구갑)의 발언을 규탄하는 대구 시내 행진도 벌였다. 2월엔 ‘청소년 참정권 확대’에 동참하겠다는 내용의 스티커를 의원실 앞에 붙여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 모든 방을 사흘에 걸쳐 돌았다. 같은 달엔 투표 나이 인하에 동의하는 시민 1만8천여명의 서명을 민주당 우원식,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 3월 중순엔 선거철마다 청소년을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서울 여의도에서 투명인간 복장을 하고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행진도 벌였다. ‘삭발’은 이 모든 노력에도 꿈쩍하지 않는 한국 정치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었다. 윤송양은 “참정권이 없다는 것은 정치뿐 아니라 일터, 학교, 가정 모든 사회 구성에서 청소년 목소리가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정민양도 “청소년 목소리를 (선거에서) 지워버리려는 가장 악랄한 폭력이 ‘미성숙’이라는 낙인”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선관위는 청소년의 정치적 미성숙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며, 이미 2016년 8월 투표 나이를 낮추는 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냈다. “18살 청소년은 독자적 신념과 정치적 판단에 기초해 선거권을 행사할 능력이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미 여러 국내법이 18살이면 결혼도 하고(민법), 운전면허를 따고(도로교통법), 군에 입대하고(병역법), 8·9급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한다. 하지만 투표만 할 수 없는 ‘이상한 법적 충돌’이 바뀌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16~18살에 투표할 수 있다.
한국이 ‘19살 투표’에 묶인 이유는, 자유한국당의 ‘나홀로 반대’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줄곧 투표 나이 인하를 반대하다, 최근 고등학교를 19살이 아닌 18살 되는 해에 마치는 학제개편을 전제로 한 선거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당장 올해부터 학제를 개편해 7살에 입학해도, 이 학생이 11년 뒤 18살이 돼야 투표가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 등은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는 꼼수”라고 말한다. 자유한국당 방침 탓에 투표 나이 인하를 다루는 국회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 산하 정치개혁소위에서 선거법 개정 논의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개혁소위 민주당 소속 간사인 윤관석 의원은 “자유한국당 입장 때문에 선거법 4월 통과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윤송양은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학제개편은 행정 문제고, 선거권은 헌법에서 보장한 시민의 기본권 문제다. 청소년도 시민이다. 따라서 청소년도 기본권인 선거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18살 투표가 허용되면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의 정치적 혼돈과 함께,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선동당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정민양은 “비청소년(성인)들도 선동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거권을 박탈하겠다고 하지 않으면서 청소년 투표권은 뺏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농성 청소년들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나이 기준으로 나누는 것도 우습지만 18살이 모두 고등학생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18살 투표가 허용되면 60만명 가까운 유권자가 생기는데, 이들이 상대적으로 진보·개혁 성향이어서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것이라고 민주당 등은 의심한다.
이날 삭발 청소년 3명이 노숙 농성하는 지하철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 천막 위로 때마침 벚꽃이 흩날렸다. 윤송양은 불쑥 “‘그때 참 벚꽃이 예뻤지, 그리고 그 4월에 청소년 선거권도 (국회를) 통과했지’라고 기억하고 싶어요”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이번에 18살 투표가 가능해져도 15살인 그는 당장 지방선거에서 투표하지 못한다. 그는 “이건 단지 18살이 투표해야 한다는 문제가 아니니까요”라고 했다. “청소년은 ‘미성숙한 아이 같다’는 혐오에 대한 문제고, 나이로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나이주의’에 대한 문제”라고 윤송양은 말했다. 그는 농성 천막과 국회 정문 사이의 100여미터 간극에 시선을 두며, “있잖아요, 저 국회가 괴물 같아요”라고 짧게 말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에서 활동중인 강민진(22) 공동집행위원장(왼쪽부터), 김정민(17)양, 김윤송(15)양이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에서 자신들의 농성장 앞에서 언쟁을 벌인 한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8세 선거연령 하향 4월 국회 통과 촉구 농성장’ 앞을 지나던 4명의 노인들은 청소년들을 향해 폭언을 하고, 신발을 신은 채 농성장소를 밟았다. "어린애들이 무엇을 아느냐", "야, 너 몇살이야", "너희들이 빨갱이냐" 등의 말을 한 그들은 “모든 국민은 평등한 것 아니냐”는 청소년들의 질문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지 않다”는 답을 하고 떠났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송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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