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비비케이(BBK)가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2007년 8월17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마지막 합동연설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절규하듯 자신의 도덕성에 문제가 없다고 부르짖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선 때 그는 노점상 소년에서 35살의 나이로 현대건설 사장에 오르고 서울시장 재직 시절 청계천 복원을 밀어붙인 이력을 바탕으로 ‘서민 이미지’와 ‘성공신화’를 적극 앞세웠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남짓 흐른 22일, 구속 영장이 발부됐다. 그의 실상은 서민도 성공도 아니었다. 이 전 대통령을 포장했던 열쇳말들을 통해 그의 삶을 정리해본다.
■ 국밥 2007년 대선 당시 ‘국밥 광고’는 이명박 후보의 서민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정치 광고로 평가받았다. “맨날 쓰잘데기 없이 쌈박질이나 하고 지랄이여. 우린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겠어”라는 시장통 국밥집 욕쟁이 할매의 타박과 소머리국밥 한 숟가락을 먹음직스럽게 떠먹는 이 전 대통령 얼굴, 그리고 “이명박은 배고픕니다”라는 문구는 절묘하게 결합되며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당선 뒤에도 이 전 대통령은 전통시장 등에서 수시로 ‘먹방’을 선보이며 서민 대통령을 자임했다. “내가 어린 시절 노점상을 해봐서 아는데” “나도 수재민이어서 아는데” 등 그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어록도 집권 내내 이어졌다.
하지만 국밥 광고부터 거짓 논란이 불거졌다. 욕쟁이 할매의 식당이 깔끔한 서울 강남의 국밥집이라 허름한 낙원동 국밥집을 빌려서 광고를 찍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검찰이 구속영장에 110억원대 뇌물수수 및 350억원대 횡령 등의 20개 혐의를 적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선 “국밥 대신 나랏돈을 말아먹었다” “‘이명박은 배고픕니다’만 진실이다” 등의 비아냥만 터져나오고 있다.
■ 전봇대 “그 폴(전봇대)을 옮기는 것도 몇 달이 지나도록 안 된다고 하더라.” 2008년 1월18일 이명박 당선인은 대통령직인수위 회의에서 ‘탁상행정’의 표본으로 전남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의 전봇대를 언급했다. 대형트럭이 이동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기업들의 민원을 언급한 것이다. 전국적 관심사로 떠오른 전봇대에 정부와 한국전력은 바로 움직였고, 이틀 만에 전봇대를 옮겼다. 전봇대는 순식간에 탁상행정의 표본이자 ‘엠비(MB)식 규제 완화’의 상징이 됐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 ‘실용정부’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의 색깔을 보여주는 첫 사례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는 성과를 목표로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시이오(CEO) 리더십의 그림자를 보여줬고, 이후 국정운영에서도 이 방식은 계속됐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4대강 사업, 국외 자원 개발, 핵발전소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수출 등은 이 전 대통령 집권 기간 내내 논란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한 손실은 현재까지 ‘부채’로 남아 있다. 2008년 롯데그룹의 숙원사업이던 제2롯데월드 건설 허가 과정에서는 공군의 반대를 묵살하고 청와대가 시나리오까지 작성해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최근 터져나오며, 그가 강조한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동안 불거진 각종 의혹과 최근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이 전 대통령은 이러한 갈등과 논란에 민간인 사찰, 블랙리스트, 국가정보원·군사이버사령부 댓글 부대 등으로 대응했다.
■ 자전거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20일 정례 라디오 연설에서 “자전거는 녹색성장의 동반자”라며 ‘자전거 전도사’를 자임한 적이 있다. “주말이면 우리 부부는 어린 손자와 함께 자전거를 자주 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자전거 사랑은 집권 뒤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녹색성장’과 ‘4대강 사업’과 연결된다.
하지만 녹색성장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 아래 신규 핵발전소 건설 등 ‘원전 르네상스’를 포장했고, 현재 한국은 세계 1위의 원전 밀집 국가라는 오명을 갖게 됐다. 핵발전소 수주를 위해 아랍에미리트연합과 유사시 군 자동개입 등의 내용이 담긴 비밀 군사협정을 맺었다는 사실이 문재인 정부에서 드러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22조원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은 토목사업인 4대강 사업은 환경 파괴와 부실 공사, 건설사 특혜 논란 속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현재 관리 비용만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고, 대규모 녹조 발생으로 골칫거리인 상황이다.
■ 영포 경북 영일과 포항의 줄임말인 ‘영포’는 단순히 이 전 대통령이 자란 지역의 이름이 아니다. 영일과 포항 출신 공직자들의 모임인 영포회는 민간인 사찰과 포스코를 이용한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상득 전 의원이 “영포회는 선량한 포항 출신들의 모임”이라고 항변했지만, 영포회는 ‘만사형통’(만사가 대통령의 형을 통해 이뤄진다) ‘영일대군’이란 말의 근원지가 됐다.
이 전 대통령 소유인 영포빌딩에는 그의 발목을 잡은 다스 소유주 의혹을 일거에 밝히는 자료들이 보관돼 있었다. 검찰은 지난 1월 두차례 압수수색을 통해 이 전 대통령 퇴임 뒤 다스 지분 정리 문제를 검토한 청와대 문건 등 다수의 자료를 발견했다. 이는 “다스는 엠비(MB) 것”이라는 다스 전·현직 사장들과 조카 이동형 부회장 등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핵심 물증이 돼 검찰의 구속영장에 담겼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100% 개인돈으로 다스를 설립했고, 다스는 ‘비자금 곳간’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등 이 전 대통령의 재산 불리기를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대통령은 측근 비리가 터져나오던 2011년 9월30일,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구속 수감돼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지금, 그의 이 말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처럼, 허공을 떠돌 뿐이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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