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새벽, 마침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구속수감됐다. 구속이 곧 처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구속 소식에 속이 후련하다고 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그동안 우 전 수석이 국민에게 ‘이리저리 잘 빠져나가는 밉상’으로 비친 탓이 크다. 올해 초 그가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을 때 그와 친했던 검사가 “길게 보면, 차라리 그냥 지금 구속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가 사이가 틀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 또한 ‘그때 구속됐으면 검찰이 1년이 넘도록 저렇게 집요하고 신중하게 수사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우 전 수석의 구속 소식을 접하면서 올해가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달 초 문무일 검찰총장은 “올해 안에 주요 수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서 그럴 것이다. 문 총장은 “사회 전체가 한 이슈에 너무 매달리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수사가 길어지면 피로감이 커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얼핏 생각하면 우 전 수석의 구속 등으로 문 총장의 말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 총장의 말처럼, 수사 기간과 가이드라인이 정해져 있었다면 우 전 수석에 대한 집요한 수사와 구속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쪽에 가깝다.
검찰이 진행 중인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박근혜 정부 시절 ‘세월호 보고 시점 조작' 의혹과 관련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또 전날에는 이른바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파문을 일으켰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사건을 끝까지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의록 유출의 경우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의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공무상 비밀누설 등 다른 혐의 적용이 가능한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위 두 사건은 검찰이 다루는 많은 사안 중 일부인 듯 보이지만, 시기를 정해놓고 마무리할 게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진실이 규명돼야 할 내용들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나, ‘북방한계선 포기’ 주장이 제기됐을 당시 벌어졌던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떠올린다면, 누구도 이를 대충 덮고 넘어가자고 하지 못할 것이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근 문 총장의 ‘연내 마무리’ 발언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그는 검찰 내부 사정을 꿰뚫고 있는 인사다. “총장과 서울지검장의 관계가 나쁘진 않고, 오히려 총장이 지검 수사를 잘 받아주고 독려하는 편이다. 연내 마무리 발언도 수사의 템포를 조절하려고 한 말이다. 그런데 피로감을 언급한 것은 큰 실수인 것 같다. 내부 전략회의에서나 할 발언이었다. 피로감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순간 ‘연내 마무리’는 기정사실이 되고, 나중에 ‘왜 끝내지 않느냐’고 역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문 총장의 발언은 그 취지와 달리 앞으로 있을 다른 부정부패 수사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의 한 내부 인사는 “수사라는 게 기본적으로 과거의 부정부패나 잘못된 일을 들추는 것이다. 앞으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게 수사인데, 보수정당이나 언론에서 그걸 다 ‘적폐 수사’로 몰아서 그때마다 ‘끝낸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피로감을 언급할 텐데, 그게 걱정”이라고 했다.
실제 이런 우려는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다.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거액의 국정원 돈을 받은 심각한 범죄행위가 그저 ‘적폐 수사’의 한 가지처럼 다뤄지고 있다. 지난주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다음날, 한 검사는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지낸 거물 정치인의 소환이 신문의 단신으로 다뤄졌다. 다음주에는 또 누가 단신 처리 되느냐”고 씁쓸해했다. 이우현 자유한국당 의원의 수뢰 혐의 사건에 대해서도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정치보복을 즉각 중단하라”(김성태 신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황당한 주장이 나왔다. 이런 식이라면, 공정한 취업 경쟁의 기회를 빼앗은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 권성동, 염동열 자유한국당 의원도 ‘정치보복’이나 ‘적폐 수사의 희생양’을 자처하고 나올 판이다.
계속되는 수사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은 잘못된 걸 바로잡는 수사가 해를 넘겼다고 피곤해할 리 없다.
석진환 사회에디터석 법조팀장
soulf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