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앤 애프터’ 사진으로 본 바른정당 약사]
11개월만에 가장 험난한 여로
9월 화합 위한 키스의 기억만
11개월만에 가장 험난한 여로
9월 화합 위한 키스의 기억만
바람 잘 날 없던 바른정당이 창당 11개월 만에 가장 험난한 진퇴 위기에 내몰렸다. 한국의 정당사, 유독 짧고 변화무쌍하다곤 하지만 드물게 보수개혁을 기치 삼은 정당 실험값이 한국 현대사에 남기는 교훈인 터, 유독 쓰고 독하다 할 만하다.
탈당 복당 눈치 보기 뜸 들이기 따위 당선만 바라는 ‘직업 정치인’들의 행보란 비판도 가능하다. 실리의 최명길도, 명분의 김상헌도 여기선 조선 시대 얘기일 뿐이다. 보수개혁은 나아가는가, 멈춰 서는가. 내년 지방선거까지 210일 남았다. <한겨레>가 붕괴 직전의 바른정당 역사를 사진 그래픽 ‘비포(before) 앤 애프터(after)’ 다섯 장면으로 짚어봤다.
#1.
2016년 12월27일.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유승민 의원 등이 주축이 되어 가칭 ‘개혁보수신당’으로 닻을 올렸다. 탈당 의원만 모두 합쳐 30명으로 거침없이 국회 교섭단체가 되었다. ‘보수개혁’을 전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6일 바른정당 9명 의원이 탈당하면서, 창당 멤버 30명 가운데선 8명만 남았다. 가장 먼저 새누리당을 탈당해 보수개혁을 선봉한 김용태 의원도 이날 바른정당을 탈당했다.
#2.
2017년 1월8일. ‘바른정당’으로 당명을 확정했다. 바른정당, 바른정치, 바른정치연대 등 바르기 이를 데 없는 당명 후보군을 제친 결과다. 바른엔 ‘우파’(바른쪽)와 ‘올바람’의 뜻을 실었다. 바른정당은 59표, 바른정치는 37표.
바르고 바르니 발라서…. 결국 바른정당이란 이름은 바른정당을 명분삼은 의원들에 의해 발리고 말았다.
#3.
2017년 1월24일. 바른정당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었다. 정병국 대표, 유승민·김무성 의원, 남경필·원희룡·오세훈 전·현직 단체장 등 지도부 30여명이 중앙무대에 무릎을 꿇었다. “박근혜 정부의 이름으로 대통령의 헌법 위반과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국민 여러분께 사죄한다”는 사과문으로 보수신당의 새 출발을 알렸다.
그리고 286일만에 반성을 마쳤다. 당시 구성된 첫 지도부 7명 가운데 4명(주호영 원내대표, 이종구 정책위의장, 홍문표·김재경 최고위원)이 이달 당을 떠났다.
#4.
2017년 5월9일. ‘바른정당’ 깃발 아래 19대 대선을 치렀다. 유승민 후보가 분투했지만, 당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지율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자유한국당과의 후보 단일화가 공공연히 의제로 떠올랐다.
4월 말 이은재 의원이 1호로 ‘올바른 우파’를 버렸다. 탈당의 물꼬가 터졌고, 5월2일 권성동·김성태·장제원·홍일표 의원 등 12명이 추가 탈당하면서 바른정당은 교섭단체 지위(20석)를 읽을 뻔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황영철 의원이 이튿날 탈당 의사를 번복한 덕에 그 지위는 지켰다.
#5.
2017년 9월10일. 대선 이후 바른정당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사실상의 ‘유승민 체제’에 대한 의원들 불만이 팽배해갔고, 그 반대편엔 김무성 전 대표가 있었다. 되레 바람 불어 좋은 날, 딱 하루 있었다면 이날일 것이다. 소속 의원 18명이 가을달 아래 모인 만찬회동. “바른정당, 영원히 함께”라는 건배사가 오갔고, 유승민 의원과 김무성 의원은 입을 맞췄다.
그러나 그것은 마지막 키스. 11월6일 유승민 대선캠프의 선대위원장이었던 김무성 의원, 바른정당 원내대표인 주호영 의원 등 9명이 탈당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난 5월 교섭단체 지위를 지켜줬던 황영철 의원도 합류했다.
유승민 의원은 6일 “가고자 했던 길로 계속 갈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마음속엔 이 시가 가고자 하여 갔을지 모른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정희영 그래픽 디자이너 heeyoung@hani.co.kr
2016년 12월28일 개혁보수신당(가칭) 의원들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했다.
2017년 1월8일, 바른정당 당명이 확정됐다.
2017년 1월24일 바른정당 의원들은 중앙당 창당대회 중 국민에게 사과한다며 무릎을 꿇었다.
2017년 5월, 대선 승리를 위해 유승민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은 김무성 의원이 맡았다.
2017년 9월10일 바른정당 화합을 위한 만찬회동. 유승민 의원과 김무성 의원이 입을 맞췄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중략)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 만해 한용운
바른정당 창당발기인 대회. 모두 웃었지만, 이제 남은 이와 떠난 이로 갈렸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