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된 뒤 산회에 앞서 자리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정우택, 장제원, 김현아…. 이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없었으면 문재인 정부 첫 추가경정예산안은 휴일인 22일 본회의를 소집하고도 처리를 못하는 ‘망신’을 당할 뻔 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상당수 본회의에 불참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추경안 처리에 야당이 협조를 하지 않는다며 한때 울먹였던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로서는 면이 서지 않게 됐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추경안 찬반 토론을 마친 뒤 오전 10시50분께 표결에 들어갔다. 그러나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1시간 동안 표결을 마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자유한국당의 반대에도 공무원 증원과 관련해 합의한 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의원 40여명이 본회의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표결이 진행됐지만 의결 정족수에서 4명이 모자란 146명에 그쳤고 50분이 지나도 참석한 의원은 149명이었다. 본회의에 불참한 여당 의원은 26명에 달했다. 결국 우원식 원내대표는 본회의에서 추경안 반대토론을 한 뒤 집단퇴장한 자유한국당을 찾아가 본회의 참석을 ‘읍소’해야 했다. 과거에도 토론 종결 후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의결하지 못하고 투표불성립된 사례가 많았던 탓이다.
앞서 자유한국당은 본회의 전 의원총회를 열어 “추경안 처리에 찬성하는 의원 70%, 공무원 증원에 반대하는 의원 70%”라는 입장을 확인하고 반대토론 뒤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우리가 본회의장에서 빠지니까 의결 정족수가 안 된다고 한다. 자기들(민주당)로 정족수를 채울 수 있는데 우리가 빠졌다는 게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정 원내대표는 “애초 월요일(24일)에 본회의를 하기로 우 원내대표와 합의했는데 갑자기 이를 우 원내대표가 번복하더니 혼선이 빚어졌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은 “의결에 참여하지 않고 비행기 타고 나간 (민주당) 의원들이나 찾으라고 하라”며 의원 소집도 제대로 못한 민주당 상황을 꼬집었다.
민주당 불참자 가운데 일부는 사전에 예정된 불가피한 해외일정 등이 있었다지만, 45일을 끌어온 문재인 정부 첫 추경안 처리라는 점에선 민주당 지도부로서는 ‘원내전략 부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당은 “여야 합의 처리를 약속해 놓고 자유한국당이 집단퇴장하며 신사협정을 깼다”며 책임을 자유한국당에 돌렸다. 하지만 과거에도 본회의 참석 뒤 집단퇴장 등으로 표결에 불참하는 전례가 있었던 만큼 ‘추경안 합의’ 소식에 민주당 내부의 긴장감이 느슨해진 것이 이번 ‘수혈 요청’ 망신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이 과정에서 복당파인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이 본회의장을 일찌감치부터 지켜 눈길을 끌었다. 장 의원은 표결 직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해 표결이 지연되는 상황에서도 본회의장을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재석 의원수가 의결 정족수에 한 명 부족한 149명이 됐을 때도 의석을 지켰지만 ‘재석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들이 장 의원의 자리로 우르르 몰려가 ‘응원’하는 진풍경도 빚어졌다. 그러나 장 의원은 민주당의 ‘긴급 수혈’ 요청을 받은 자유한국당이 본회의장에 들어와 표결에 참여하자 그 때서야 추경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장 의원은 본회의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야가 어렵게 합의를 했는데 국회의원으로 본회의 참석을 하지 않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상경한다.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를 잘 하고 내려오겠다”고 썼다. 바른정당과 뜻을 함께하는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도 이날 본회의장을 계속 지켰고, 추경안에 찬성표를 눌렀다.
“토요일인데 뜻을 같이 해줘서 감사하다. 더 단합하고 결집해서 나갈 수 있도록 넓은 마음, 단합된 마음으로 해달라.”
이날 오후 추경안이 통과된 뒤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박수가 쏟아진 의원총회는 민주당이 아닌 자유한국당이었다. 박수를 받은 이는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민주당 지도부는 오늘 불참한 소속 의원들의 ‘살생부’를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우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어젯밤 3당이 힘을 모아 의결정족수를 만들어 본회의를 열려고 했을 때 자유한국당이 연기를 요청하면서 오늘 본회의에 참여하겠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약속을 위배하고 퇴장한 점은 유감스럽다“면서도 ”나중에 참여한 것은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도 ”어젯밤에는 충분히 (정족수가) 됐다. 그런데 오늘 부족했던 이유는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 김삼화 의원 등이 자유한국당이 들어온다고 하니 (의결 정족수는) 충분하다고 보고 본인들 일을 보러 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이 참여한다고 해서) 긴장감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는 그런 실수가 없도록 하겠다“면서도 “국회의장의 중재로 (자유한국당이 표결 참여를) 약속했는데 이를 어긴 것은 문제다. 국회를 농락한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을 비판했다.
김남일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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