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첫 총리 후보자 인준을 놓고 여야 기싸움이 치열하다.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낙연 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이 이뤄질지, 통과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총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빗대지기도 하는 자리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정 철학과 목표를 제대로 구현할 총리 후보자를 내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같은 능력에 도덕성까지 두루 갖춘 인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검증에 소홀하면 곧바로 인사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으나 총리가 되지 못한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총 27명의 총리 후보가 지명됐고, 이 가운데 7명이 낙마했다.
김영삼 정부에선 낙마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인사청문회가 없던 시절이다. 1993년 2월 정부 출범부터 1998년 2월까지 황인성·이회창·이영덕·이홍구·이수성·고건 등 6명이 차례로 총리를 지냈다. 여당(신한국당)이 다수를 차지한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도 없이 표결로 인준이 이뤄졌으니 낙마자가 없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김대중 정부의 장상·장대환 후보자는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됐고, 이명박 정부의 김태호 후보자와 박근혜 정부의 김용준·안대희·문창극 후보자는 아예 청문회를 해보지도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 직전 지명한 김병준 후보자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정부, 장상·장대환 임명동의안 부결 치욕
김대중 정부에서는 1998년 2월부터 2003년 2월까지 김종필·박태준·이한동·김석수 등 4명이 총리를 지냈다. 6명의 총리 후보를 지명했으나 장상·장대환 등 2명이 낙마했다.
김 대통령은 정권 말기인 2002년 세 아들 비리와 최규선 게이트 등으로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 그해 7월 장상 이화여대 총장을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후보자로 지명해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아들의 미국 국적, 위장 전입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자유민주연합과 한나라당의 반대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244명이 투표했는데, 찬성 100표, 반대 142표, 무효 1표, 기권 1표였다. 국회에서 총리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1960년 8월17일 김도연 총리 서리 인준 부결 이후 42년 만이었다.
김 대통령은 다음달인 8월 장대환 <매일경제> 사장을 총리 후보로 지명했으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또다시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등 의혹이 제기됐다. 역시 두 야당의 반대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표결에는 266명이 참석해 찬성 112표, 반대 151표였다.
이명박 정부, 40대 총리 후보 지명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2008년 2월부터 2013년 2월까지 한승수·정운찬·김황식 등 3명이 총리를 지냈다. 유일한 ‘낙마자’는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8월 정운찬 총리 후임으로 그를 지명했다. 병역,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 ‘고질적인’ 결격 사유가 없어 무난하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박연차 게이트 연루, 도지사 직권남용, 세금신고 누락 등이 논란이 됐다.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더욱 여론이 악화하자 청문회 이후 자진 사퇴 했다.
박근혜 정부, 총리 낙마 ‘최다’ 굴욕
박근혜 정부는 총리 후보자 낙마가 4명으로 가장 많아 ‘흑역사’의 정점을 찍었다. 후보자 7명 가운데 정홍원·이완구·황교안 등 3명은 총리로 임명됐지만, 김용준·문창극·안대희·김병준 등 4명이 인사청문회에 가보지도 못하고 줄줄이 사퇴하는 ‘인사 참사’를 빚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 2013년 1월 말 첫 총리 후보자로 김용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명했다. 하지만 아들 병역 문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줄줄이 터져 나와 지명된 지 불과 5일 만에 사퇴했다. 박 대통령은 정홍원 전 새누리당 공직후보추천위원장을 지명해 그가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로 취임했지만,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2014년 4월27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사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 지명한 총리 후보자가 두 명이나 낙마하는 참극이 빚어지면서 그는 10개월 뒤인 2015년 2월17일 총리직에 물러났다.
박 대통령이 2014년 5월 정 총리 후임으로 지명한 안대희 전 대법관은 대법관 퇴임 이후 5개월 동안 16억원을 받은 것이 밝혀져 고액 수임료와 전관 예우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 결국 자진 사퇴했다. 뒤이어 후임으로 지명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위장 전입이나 부동산 투기 등이 아니라 국민 정서와 크게 동떨어진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이 문제가 됐다. ‘일본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 발언 논란, 퀴어문화축제 비난, 조부 독립유공자 논란 등으로 비판 여론이 커지자 그 역시 사퇴했다.
박 대통령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자 탄핵을 피하려고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지만,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특위도 구성되지 않아 물러나야 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