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오후 경남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 등이 식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휴대 전화를 머리 위로 들어 촬영하고 있다. 김해/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봉화산 부엉이바위가 내려다보는 가운데 노란 나비 1004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이제는 마음 편히 쉬고, 자유롭게 날아가시라’는 의미를 담아, 노무현재단에서 준비한 행사였다. 고개를 들어 나비가 날아가는 자리를 한참 바라보던 문재인 대통령은 손수건을 꺼내 들고 젖은 눈가를 닦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매년 5월23일이 되면 봉하마을을 찾았던 그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전엔 ‘노무현의 친구’이자, 참여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 또 비극적 죽음을 지킨 ‘상주’였지만 이젠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되어 돌아왔다.
“노무현 대통령님도 오늘만큼은, 여기 어디에선가 우리들 가운데 숨어서, 모든 분들께 고마워하면서, ‘야, 기분 좋다!’ 하실 것 같습니다.” 9년 만에 이뤄낸 정권교체 소식을 들고 노 전 대통령의 8주기 추도식을 찾은 문 대통령은 모처럼 편안한 웃음으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정치적 보복으로 인한 타살’이란 지지자들의 분노 속에 일부 정치인들에게 야유와 욕설, 물세례가 쏟아졌던 과거 추도식과는 달리, 이날 추도식은 눈물과 웃음이 교차했다.
“다 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자”는 문 대통령의 이날 추도식 인사말은 ‘적폐청산’이란 말로 상징되는 ‘개혁’과 이를 기반으로 ‘통합’을 이뤄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좌절’ 이후 잊혔던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이란 ‘미완의 꿈’을 이번엔 문 대통령 자신이 반드시 이루겠다는 것이다. 지난 4월3일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셨던 사람 사는 세상은 개혁과 통합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함께 이룰 때 가능하다”고 말한 것과 같은 연장선에 있는 말이다.
여기엔 노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과 복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 지역주의와 이념 갈등, 차별의 비정상이 없는 나라”를 꿈꿨지만, 참여정부가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반성이 깔려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탄생엔,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바꾸는 동력으로 강조했던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 자리잡고 있다고 봤다. 지난해 겨울부터 올봄까지 온 나라를 환히 밝혔던 촛불민심이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끌어낸 데 대해 문 대통령은 “노무현의 꿈이 깨어 있는 시민의 힘으로 부활했다”고 의미를 짚었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각오를 다지며 동시에 ‘노무현 시대’와의 아름다운 작별을 고했다.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 신분으로 더 이상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고, 그를 가슴에만 간직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린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약속했다. 특정 ‘진영’에 갇혀 ‘그들만의 대통령’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국정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뜨거운 다짐이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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