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안치범씨 어머니 정혜경씨, 30일 문 후보 찬조연설
“자식 잃은 부모 마음 헤아리니 국민 마음도 헤아릴 것”
‘미생’ 윤태호 작가도 “정치공학에서 가장 먼 후보” 지지
“자식 잃은 부모 마음 헤아리니 국민 마음도 헤아릴 것”
‘미생’ 윤태호 작가도 “정치공학에서 가장 먼 후보” 지지
지난 2월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의 어머니 정혜경씨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이 ‘안전’을 주제로 연 포럼에 참석해 문 후보에게 신발을 건네고 있다. 안씨의 부모는 ‘우리 아들처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뛰어달라’는 뜻으로, 아들을 위해 장만했던 새 운동화를 문 후보에게 전달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다음은 정혜경씨와 윤태호 작가의 찬조 연설 전문이다.
<초인종 의인 고 안치범씨의 어머니 정혜경씨 찬조연설>
□ 방송시간 : 2017년 4월 30일 오전 9시10분 / SBS TV
안녕하십니까. 서울 마포구에 살고 있는 주부 정혜경이라고 합니다.
저는 솔직히 정치같은건 잘 모르는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하루종일 남편과 아이들, 살림 걱정이 다였죠.
그랬던 제가 오늘 이런 자리에 서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스물여덟살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간 제 아들 치범이를 위해,
그리고 저처럼 자식 가진 부모님들을 위해
이 자리에 서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시 생각하기 고통스럽지만 제 아들 치범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치범이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성우가 되고 싶어서
학원 가까운 곳에 원룸을 얻어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9월 9일 새벽 네시쯤이었습니다.
원룸건물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스물한개의 원룸이 있는 5층짜리 건물이었습니다.
청년 하나가 건물에서 뛰쳐나와 119에 신고를 합니다.
그리고는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청년은 층층이 다니면서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렸습니다.
‘불이 났어요’ ‘어서 나오세요’
새벽이라 한창 곤하게 잠들어 있던 주민들은
그 소리에 깨서 밖으로 대피했습니다.
청년은 건물 밖으로 나와 몇 명이 나왔는지 확인하고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불길은 점점 거세져 있었습니다.
목이 따갑고 숨이 막혀옵니다.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달궈진 현관문을 손으로 두드립니다.
쾅쾅쾅!
문이 뜨거워서 손바닥이 쩍쩍 달라붙습니다.
‘불이야, 불이야’
초인종도 누릅니다.
‘일어나세요. 빨리 나오세요’
그 사이 소방차가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원룸에 있던 주민들은 모두 무사히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주민 중 누군가가 외칩니다.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방독면을 한 소방대원들이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5층 옥상입구에 청년 한명이 쓰러져 있습니다.
연기에 까맣게 그을려 질식한 채로 쓰러져 있는 청년.
초인종을 누르며 주민들을 대피시킨 그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은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습니다.
옷을 벗기자 목부터 가슴까지 까맣게 타들어가 있었습니다.
수술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청년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열흘하고 삼일이 지난 뒤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웃을 모두 살리고 자신은 세상을 떠난 청년의 이름은
안치범. 제 아들입니다.
치범이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왜 하필 내 아들이었을까?’
‘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렇게 했을까?’
‘네가 그렇게 가버리면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 그랬을까...’
혼자서 숨죽여 울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조금더 따끔하게 얘기할걸. 후회도 됐습니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이었어요.
치범이는 거실 소파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고
저는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티비에 다른 사람을 구하고 자기는 죽은 뉴스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얘기했어요.
‘치범아 너는 혹시 저런일 있으면 절대로 나서면 안돼.
이 세상에서 제일로 소중한게 자기 목숨이야.’
그러니까 치범이는 그러더군요.
‘옆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 어떻게 모른척 할 수가 있어.
그리고 내가 남을 도와야 남도 나를 돕지.
엄마도 내가 어려운일 겪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주길 바랄거 아냐.
그러니까 엄마, 그렇게 생각하면 안돼.’
저는 뭐라고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아들이랑 다투기 싫어서,
그리고 또,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어?
하는 생각에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겁니다.
그때 내가, 절대로 그러면 안된다고 얘기했어야 했는데....
정말 많은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그랬더라도 치범이는 아마
자기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다른 사람을 도왔을겁니다.
그러다 목숨을 잃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치범이가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동안
친구와 선배, 후배들이 정말 많이 치범이를 찾아왔습니다.
알바시간을 서로 맞춰가며 치범이 곁을 계속 지켜주었어요.
치범이가 자기 고민상담을 해주었던 이야기,
학원에서 조별과제를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나서서 했던 이야기 등을 저한테 해주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아, 우리 아들이 그랬었구나. 우리 치범이가 잘 살고 있었구나.
그래서 지금 외롭지 않겠구나. ’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가 됐습니다.
아들 치범이를 떠나 보내는 날,
마지막으로 아들의 손과 얼굴을 어루만져 보았습니다.
그리고 치범이의 귓가에 대고 말해주었습니다.
‘잘했다 아가야. 잘했어. 잘했어...’
사람이 사람을 믿고 사는 세상.
서로 돕는 의로운 일하는게 당연한 상식이 돼서
모두가 맘편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을 바랐고, 용기있게 행동으로 옮긴
제 아들 치범이가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아버님이 군인이셔서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성향도 보수쪽에 가까웠습니다.
선거 때가 되면 은근히 주변에
보수 쪽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었죠.
그런데 성인이 된 아들 치범이는 저와 정치적인 성향이 달랐어요.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아들과 종종 부딪혔지만
그럴 때마다 말을 돌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그렇게 가고 보니
아들이 살고 싶었던 세상에 대한 꿈을
엄마가 대신 이뤄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남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치범이 아빠가 어느날 이런 글을 쓴걸 봤어요.
‘치범아 아빠는 요새 후회도 많이 하고 반성도 많이 하고 있다.
너한테 용돈 넉넉히 주지 못한 거, 너하고 대화를 많이 하지 못한 거,
아버지라면서 아들이 하는 얘기 귀담아 듣지 않은거.
네가 정권을 교체해야 되고 문재인 후보를 찍으라고 할 때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세상에 불만만 잔뜩 갖고 있는 놈이 하는 사설이다 생각하고
아버지는 다른 후보를 찍었지.
그 결과 우리나라가 지금 이지경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전에 가족 모두 노래방에 갔을 때
네가 싸이의 ‘아버지’라는 노래를 불렀던게 생각이 난다.
그 노래 중에 “아버지 왜 그렇게 사셨나요?”라는 가사가 있지.
그 때는 아빠의 고단한 삶의 일면을 네가 알아준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었는데 요새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진짜 아빠는 그동안 선입견, 고정관념 이런 거에 포로가 돼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저희 부부가 이런 생각을 하며 치범이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사놓고 아직 신지 못한 새 운동화가 있는 걸 보았습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하얀색 운동화였어요.
치범이가 살아있다면 그 운동화를 신고 어디에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와 남편은 의논 끝에, 치범이의 운동화를
우리 치범이가 바라던 세상을 만들어주실 분에게 드리기로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그 운동화를 받아들고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 운동화 한 켤레에 담긴 한 청년의 인생과 꿈, 그 무게감을
그분은 충분히 느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와 남편은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국민도 다른 국민을 돕기 위해 이렇게 목숨을 바치는데
국가와 정치권은 그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국민이 안전하고, 상식과 정의가 존중받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데에 우리 아들처럼 뛰어주세요’
문재인 후보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금은 뜻하지 않게 아들을 떠나보낸 부모님과 가족들이
위로받을 시간이지, 제가 격려 받을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자리를 사양하지 못한 것은
치범군 부모님의 절실한 목소리에 누군가는 응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당연히 고귀한 희생에 대해 응답해야 합니다.’
고 말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대전 국립현충원에 천안함 용사 묘역을 참배하면서,
의사자로 지정된 우리 치범이의 가묘를 찾았다는 기사였어요.
문재인 후보가 치범이의 나무비석을 붙잡고
애도를 하는 사진도 있었습니다.
그 고마움을 뭐라 말해야 할까요?
바쁜 분이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텐데...
우리 치범이를 기억하고 찾아주셨구나.
이분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분이구나.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분이구나.
그러니 국민의 아픈 마음도 헤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나라를 굳건하게 하고 잘살게 하는
큰일도 해야 하지만,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고
보듬어주는 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치범이가 저 세상으로 가고 나서야
이렇게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지도자가
얼마나 절실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든든한 대통령,
국민이 존중받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주실 것 같습니다.
‘정치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민의 아픔에 공감하는 지도자, 그런 지도자만이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은 자기의 잘남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착한 사람은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살리죠.
그래서 저는 문재인 후보가 국민들을 섬기는 대통령,
자기의 권위가 아닌 국민의 권위를 세우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끝으로 하늘나라에 있을 제 아들 치범이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치범아
시간이 어떻게 가는줄도 모르는 사이, 겨울이 가고 벌써 봄이 왔어.
시간은 참 잘도 가고 있구나.
하지만 엄마는 지금도
너를 볼수도 네 목소리를 들을수도 없다는 것이 믿을수 없어.
네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살리고 떠났다고 사람들이 상을 주어도
엄마에겐 너무 큰 아픔이야.
네가 엄마에게 무슨짓을 하고 간거니?
너는 엄마가 해주는건 뭐든지 맛있게 잘먹는 착한 아들이었지.
얼마전에는 네 큰 매형이 온다고 하여
갈비찜을 준비하는데 막 눈물이 흘렀어.
‘엄마밥은 집밥이 아니야’ 칭찬하면서 맛있게 먹던 네모습이 떠올라서...
치범아 보고싶다. 내새끼.
그렇게 허망하게 가버리고 나니 고기 한점이라도 더 먹일걸.
작년 네 생일에, 나가서 먹지 말고 집에서 미역국에 밥해줄걸.
후회가 밀려온다.
아직도 엄마는 네가 그냥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네 방에 불을 켜놓고 있다.
예전에 항상 네가 늦게 들어올 때마다 방불 켜놓았듯이...
치범아. 이제 너의 바람은, 엄마와 아빠의 바람이 되었어.
또 많은 국민들이
착한 사람이 존중받는
상식적이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5월 9일 투표하고 좋은 소식 갖고 너에게 찾아갈게.
안녕.
감사합니다.
<웹툰 <미생> 그린 윤태호 작가의 찬조 연설>
□ 방송시간 : 2017년 4월29일 오후 8시20분 / MBC TV
안녕하십니까
‘미생’과 ‘내부자들’을 그린
만화가 윤태호입니다.
두 작품 모두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서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셨는데요,
제일 많은 호응을 얻은 인물이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였습니다.
장그래는
18살 때 까지
바둑만 두던
바둑연구생이었습니다.
그러다
집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낙하산으로
종합상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연히
회사가 요구하는
어떤 스팩도 없는
청년입니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많은 청년들은
‘낙하산으로 들어가면 어떠냐,
장그래가 부럽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청년실업문제가
연일 기사화 되는 게
현실 아닙니까.
학자금 대출이
11조원을 넘었고
이것을 못 갚는 청년들이
3년 새
720%나 증가했답니다.
취업을 해야
대출금을 갚는데
취업문이 바늘구멍이니까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헬조선’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청년들을 두고
‘3포 세대’,
‘5포 세대’ 하더니
요즘엔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는 세대라면서
‘n포 세대’라고까지 합니다.
얼마 전에는
‘지옥고’라는 말이 새로 나왔다고 합니다.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에 사는
청년들의 현실을 빗댄 말이랍니다.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지만
그 별을 따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이
제2, 제3의 장그래, 우리 청년들입니다.
그렇다면 회사에 취직한 장그래에게
장밋빛 미래가 펼쳐졌느냐.
아닙니다.
스펙도 없는 계약직이었으니까요.
계약직 하니까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 한 TV토크쇼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4시간을 달려서 녹화장에 온
한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계약직으로만 일하다가
얼마 전에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너무 좋아서 방송에 그 얘기를 하려고 왔다면서
펑펑 우셨습니다.
사연을 듣는 저도 울컥했습니다.
일하는 청년 열 명중에 네 명은
알바 같은 임시 일용직이라는데,
이들에게 희망을 만들어줄 수 없나...
또 한 번 막막했습니다.
이번 대선에 나오는 후보들 모두
청년 일자리 문제에 대해
다양한 공약을 내놓고
해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공약은 두 번째라는 생각이 듭니다.
번지르 한 공약 전에 공감이 먼저가 아닐까요.
갈수록 더 고단해지는
흙수저들의 삶을 체험하고
깊이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대통령감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다시 미생 얘기로 돌아가서,
그러면 스팩 빵빵한
장그래의 동기나 선배들은
행복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느냐.
실제로 제가
취재를 위해 만난 직장인들 대부분이
엄청난 스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저에게 털어놓는 속마음은 의외였습니다.
취업을 위해
밤잠 설쳐가며 준비했던 수많은 스팩이
회사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취업이 또 다른 입시경쟁이 아니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취업을 해도
슬픈 현실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모험을 하라고 말합니다.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도전과 모험은 새로운 길이기에
대부분의 경우 실패를 전제로 합니다.
과정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험에서 실패한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관용과 재기의 기회를 주는 곳이었습니까?
이력서에 용기 있게
도전과 실패의 경험을 넣을 수 있습니까.
독자인 청년들이
가장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하는 대사는 이것이었습니다.
‘잊지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이 반응은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꾸역꾸역 견뎌내기 위해
어머니라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요.
현실이 이렇다보니 독자들은
장그래의 시선으로 묘사된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쩔쩔매는 신입사원 장그래로,
누군가는 이리저리 치이는 중간 다리 김대리로,
누군가는 사내정치와 상관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오차장으로 말입니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은 상사가
자신을 오차장이라고 설정한다며
어떡하면 좋냐는 민원이
제게 좀 오긴 했습니다만,
하여튼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오차장 나이쯤 되는 중년들은
살만할까요?
저는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서
현대인들의 고민 중
잃어버린 일상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 이야기는
남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제 스스로
일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신인시절을 거쳤던 저는
뒤늦게 찾아온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삼사일 밤을 새며
원고를 썼습니다.
제가 자고 있을 때
아이들은 등교를 하고,
아이들이 하교했을 때
저는 출근을 한 이후였습니다.
가족들의 얼굴을 보는 건
일주일에 한 두 번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린 가족이니까
서로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가족이 다 모여도 인사 하고 나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게
편한 사이가 되어있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현실-.
저는 만화에 그 장면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비단 저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중년층이 가장 공감했던 미생의 대사는
이것이었습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회사 밖은 지옥이다.
버텨라’
당연해야 할 칼퇴근이
대선 공약 이슈가 되는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그래와 오차장,
청년과 중년의 삶은
전혀 다른 이야기일까요?
저의 생각은 아니라는 겁니다.
적어도 제가 미생을 그리며 만난
장그래와 그 선배들은
동전의 양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청년세대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미래는
지금의 4,50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 중년들의 모습이
청년세대가 원하는 미래일까요?
저를 포함한 지금의 중년세대는
산업화시대를 달려 온 우리 부모 세대가
모든 걸 던져 키운 자식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년세대는
우리 부모세대와
얼마나 달라져 있습니까?
한밤중까지
자식의 사교육에 매달리는 현재의 중년세대는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요즘엔
대학 졸업한 자식
취업걱정까지 해야 합니다.
그런 중년을 바라보는 청년세대는
앞으로 자기 인생에
어떤 꿈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청년정책은
그들의 몇 년 후 현실이 될
중년층에 대한 정책과
함께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끊어진 다리를 건너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그려진 만화 미생은
연재 완료시점에
누적 조회수 10억,
단행본 260만부 판매를 기록하며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작가로서는 감사할 일이지만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이런 현실을 그릴 수밖에 없는 환경은
작가인 제게도 상처이기 때문입니다.
미생은 사실
시작부터 어려웠던 작품이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고
취재를 부탁한 회사들은
모두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품 준비에 이미
3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한 상태여서
더 이상
고민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일단 작품의 전체 이야기를 쓰고
플롯이란 것을 만들었습니다.
플롯이란, 작품의 이야기를
좀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작가로 93년도에 데뷔했으니까
지금은 24년 정도 됐습니다.
이 정도 경력이면
독자를 들었다 놓는
자기 나름의 기술 몇 가지는
터득했다고 착각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미생’은
아무리 해도 뭔가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내가 직장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말해야 하나,
이런 고민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당연합니다.
당시 저는 회사에서
부장이 높은지 과장이 높은지도 몰랐으니까요.
결국 저는 플롯을,
인위적으로 이야기를 재밌게 만드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림만 그렸던 제게
직장인의 세계가 낯설었던 것처럼
바둑밖에 몰랐던
고졸 신입사원 장그래의 눈으로 바라본
낯선 직장인들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독자들이
호응하고 감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매 선거철이면
‘정치공학’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정치9단’이란 말도 많이 들립니다.
정치판에서 10년, 15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낸 분들은
아마도 전문가적인 시각과
테크닉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슈는 진지하게,
어떤 이슈는 가볍게,
어떤 이슈는 선점해야하고
어떤 이슈는 자연스레
잊혀지게 만드는 기술들 말입니다.
노련한 창작자의 플롯처럼
유권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놓는
경력 있는 정치인들의 기술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격이
정치공학으로만 완성될 수 있을까요?
작가인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생’의 감동이
기술적인 플롯에서 나오지 않았듯이
정치도 테크닉을 뛰어넘는,
정치공학을 뛰어넘는
깊고 진실한 테마와 명분 없이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정치가
얄팍한 정치공학을 포기하기를,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화하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이런 정치공학에서
가장 멀어진 후보를 지지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번에 대통령 후보를 고르는
두 번째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현실을 한 번 보겠습니다.
‘미생’과 달리
오로지 상상만으로 그린 만화가 있습니다.
바로 ‘내부자들’입니다.
영화 ‘내부자들’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인구에 회자가 됐던 대사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뒤 현실에서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진 것입니다.
사건이 보도되고
제 전화는 불이 났습니다.
사실 저도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의 상상이
대한민국의 현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국민을
개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슨 국민을 위한 일을
하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국민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부산에서 있었던
문재인 후보의 토크콘서트 때였습니다.
무대에 함께 올랐는데
그는 자신의 공약을
죽 나열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인데도
게스트에게 발언권을 주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일방적으로 말하기보다
대화를 청하고 모르는 것은 물어봤습니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문후보를 돕는
주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자연스럽게 자기 할 일을 했고
병풍처럼 후보 뒤에 도열해있거나
90도 인사를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큰소리로 외치는 예스맨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미생에 이런 대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좋은 친구는
두개의 좋은 귀를 가진 사람이다’
우리의 대표자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대통령은
두 개의 좋은 귀를 가진 사람이다’
문 후보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만화 얘기로 돌아가서,
혹시 ‘사고실험’이란 말 들어보셨습니까?
사고실험이란
어떤 일을 실행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미리 상상해보는 것인데요
과학자들이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지만
저희 창작자들도 사고실험을 합니다.
아직 쓰지 않은 내용을
머릿속으로 막 떠올려서 진행해 보는 거죠.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사고실험을 하며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세 명의 샐러리맨이
소주와 곱창을 앞에 두고
사고실험을 시작합니다.
주제는 ‘왜 우리 부장은 퇴근하지 않는걸까?’
각자의 사고실험 결과가 쏟아지고
갑론을박이 일어납니다.
일을 열심히 해서다,
아내랑 사이가 안 좋은 거다,
집에 가면 게임을 못하니까 게임하는 거다...
사고실험이란 이렇듯
우리의 일상이기도 합니다.
3년 전.
4월 16일.
수 백 명의 승객을 싣고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침몰했습니다.
뉴스는 오락가락 했습니다.
오보가 난무했고
우리는 티비 앞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 배가 완전히 침몰 되고 난 후.
아이들이 보냈던 문자메시지가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용서받을 수 있을 아이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글을 썼습니다.
미안함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사랑한다며,
정말 사랑한다며
작별을 고했습니다.
저는 그 문자를 보며
사고실험을 당했습니다.
제 아이들의 목소리가
문자 위로 겹쳐치는 것이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닙니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라면
세월호 속에 갇힌
내 가족, 친구, 후배를 상상하며
몸서리를 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뜻하지 않은 사고실험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저는 지금도 세월호만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누가 미래를 이야기합니까.
미래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일입니까? 모레입니까?
5년 후입니까? 10년 후입니까?
정말 그 미래에 행복 할 수 있습니까?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으로
나라가 한 일을 보십시오.
경제력이 부족해
이런 참사가 생긴겁니까?
책임 질 자리에 있는 자들이
어떤 책임을 졌습니까?
지금 나는, 우리는
진흙뻘에 빠져있는데
어떻게 미래로 도약한단 말입니까?
이런 나라라도
미래가 되면 좋아지는 겁니까?
제가 희망을 찾은 것은
지난 겨울, 광장에서였습니다.
시민들은 평화를 지키면서
절대 권력의 종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힘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미래를 지향하되
지금 여기, 현재를 놓치지 않는 후보
망가진 시스템을 정상으로 만들고
도약의 단단한 토대를 만들
그런 후보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사고실험을 합니다.
매번 광장에 함께했던
문재인 후보를 떠올립니다.
광장의 함성을 귀로 듣고
국민의 힘을 눈으로 확인하며 어금니 깨물던 그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지 상상해봅니다.
흔해빠진 단어 ‘정의’가 아니라
낯설고 신선해진 ‘정의’가
우리 앞에 놓이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여러분도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청년도, 그 청년의 아버지도,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문재인 후보가 그런 세상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그래서 저는,
우리는 문재인이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