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14일 오전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선대위원장 임명장을 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19대 대통령선거 첫 대선후보 티브이토론이 열린 다음날인 14일.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국회 당대표실에 들어서며 “어제 토론 잘봤다”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티브이토론을) 굉장히 오랜만에 해봐서 시간관리가 잘 안 되더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급했어요. 여유있게 할 수 있었는데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
원내 6석의 가장 작은 정당, 그래서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는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더 잘 할 수 있었다, 더 잘했어야 했다’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는 “어제 첫 토론하면서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구나’라고 실감이 되더라”며 “그동안 국도에서 신호대기받고 밀린 차 빠지기 기다리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다른 후보들이 달리던 고속도로에 진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이날 첫 일정으로 오전 9시45분,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입당식을 주재하고 선거대책위원장 임명장을 건넸다. 김 전 위원장은 ‘정의당 2020 프로젝트’를 수행할 책임자로 소개됐다. 10%에 머물고 있는 노조 조직률을 2020년까지 20%로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심 후보는 “김영훈 전 위원장은 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시장을 지지했다. 이 시장 지지자 중 많은 분들이 김영훈 전 위원장과 같은 마음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민주당에서 가장 왼쪽에 있었던 이 시장 지지자를 향한 호소이기도 했다. 이어 민주노총 집행부와의 정책간담회가 진행됐다. 심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민주노총·전교조를 응징하는 것을 국정 제1의 목표로 삼겠다고 하는 대통령 후보(홍준표)가 있어서 민주노총이 이번에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할 거 같다”며 농담을 건넨 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정의당과 민주노총이 함께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방문을 환영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의무사령부 전광판 글씨.
전통적 지지 세력과의 연대를 확인한 뒤의 목적지는 경기 분당에 있는 국군의무사령부와 국군수도통합병원이었다. 정의당은 2015년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로 부상을 당했으나 치료비 750만원을 사비로 부담해야 했던 ‘곽 중사 사건’을 공론화한 바 있다. 심 후보는 전방 부대를 찾는 다른 후보와 달리 이곳을 선택했다. 후보 비서실장이자 국방·안보통인 김종대 의원이 그를 수행했다. 약속시각인 오후 1시 정각에 도착하자 안종성 의무사령관(준장)이 심 후보를 반갑게 맞이했다. 의무사령부 현관 전광판에는 ‘환영 심상정 대통령후보님’이라는 메시지가 번쩍였다. 간단하게 업무보고를 받은 심 후보는 “우리 장병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군대가 돼야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다”며 △부상 장병 100% 국가 치료제 확립 △군 피해자 치유센터 설립 △국군 중증외상센터 건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심 후보는 “진보정당은 안보나 국방에는 관심이 없다는 건 오해”라며 “국회에서 실질적인 지원이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하도록 이끌겠다”고 말했다. 안종성 의무사령관은 “말씀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고 화답했다.
심 후보는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었으나 재활에 성공해 국군수도통합병원 원무과에서 일하고 있는 하재헌 중사를 병동 입구에서 만나 뜨겁게 포옹한 뒤 병실을 방문했다. 5인실에는 자주포를 정비하다 손가락에 열상을 입고, 트럭에서 내리다 발을 접질리고, 골반 부위에 종양이 발견된 병사들이 있었다. 전역을 앞둔 병장부터 갓 입대한 이병까지 계급도 다양했다. 아들 가진 엄마인 심 후보는 장병들의 손을 꼭 잡으며 쾌유를 기원했다.
다음 일정을 위해 다시 여의도로 돌아오는 심 후보의 차에 올라탔다. 토론회 얘기부터 꺼냈다. 그는 “구름 위에 떠있는 논쟁을 삶의 현실로 가져오고 싶었다”며 그런 마음을 ‘절박감’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으로 겨룬 다른 후보들을 짤막한 용어로 촌평해달라고 하니 “문재인의 세력, 안철수의 바람, 유승민의 논리”라고 말했다. “홍준표 후보는…뭐라고 해야 하나…그냥 4명만 하죠.” 심 후보는 “문 후보는 세력이 주는 여유가 있었고 안 후보는 바람을 의식한 긴장이 있었고 유 후보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 세련됨이 있었다”고 했다. 그럼 심 후보 본인은? “저는 정의를 위한 절박함이 있었죠.”
그의 절박함은 이번 대선이 갑자기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로 재편돼 유권자들의 사표 심리가 작동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진보정당의 활동공간이 좁아진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심 후보는 “(될 사람에게 몰아주자는) 비판적 지지는 낡은 기득권 정치를 유지시켰다. 비판적 지지의 역사적 시효는 끝났다”고 말했다. 정의당의 이번 목표는 두 자릿수 득표율 획득이다. 심 후보는 인권·노동·평화·생태 운동에 힘써온 전통적인 진보 세력들과 여성·청년층이 지지를 끌어올 수 있는 주요 타깃이라고 했다. 여론조사 지지율 한 자릿수에서 10% 득표로 확장하기 위해선 다른 후보의 지지자도 끌어와야 하는 상황에서 ‘주적이 누구냐’고 물었다. 심 후보는 “문재인·안철수 후보” 2명을 꼽았다. “안 후보에게는 보수 표만 있는 게 아니라 문재인 후보가 싫어서 간 범야권의 표도 있다”며 심 후보는 “부동표는 줄었지만 표심은 여전히 유동적이고 앞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승자가 한 명뿐인 대선에서 패배가 확실한 독자완주를 꼭 해야 하는 이유를, 마지막으로 조금 더 쉽게 설명해달라고 하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경쟁해야 기울어진 정치구도가 바뀝니다. 대선 이후에도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이 기다리고 있는데 총선 의석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들이 정치구도의 큰 변화를 선택했을 때 개혁의 에너지를 가져갈 수 있죠. 정치구도를 왼쪽으로 과감하게 이동시켜야 합니다. 압도적으로 당선되면 자기가 잘 나서 당선된 줄 알고 자신들의 생각을 시대정신으로 착각하게 되는 문제가 생겨요. 국민 평가를 바탕으로 비전과 정책 중심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도 있겠죠. 심상정의 득표만큼 대한민국을 개혁할 수 있습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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