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한 카페에서 20대~60대 시민 8명이 모였다. 입시지옥을 뚫고 대학에 입성한 대학생, 초등학생부터 고3까지 자녀를 둔 학부모들, 초·중등학교 교사, 사교육 시장의 논술 강사, 교육시민단체 활동가까지 다양한 교육 관련 주체들이 모였다. 8명의 시민들은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의 교육관련 체험을 바탕으로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교육정책 공약에 대해 150분가량 평가했다. 이들은 학제 개편, 예체능 수업 확대 등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대부분의 공약에 대해서는 학생·교사·학부모 등 교육 현장의 주체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귀영 사회정책센터장이 토론의 사회를 맡았고, 조창훈 연구원이 함께했다.
Q. 본인소개를 해달라.
허영림(이하 허) 경기도 파주에서 중2, 초5 아이 둘 키우는 엄마다. 외벌이인데 남편 월급 중 절반이 관리비를 포함한 주거비로 나간다. 사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오준호(이하 오) 경기도 안산에서 초5, 초3 자녀들을 양육하는 아빠이자 사교육 시장에서 논술 강사도 하고 있는 논픽션 작가다.
박병수(이하 박) 부산 영남중·고교에서 30년 동안 국어 교사로 재직 후 5년 전 명예퇴직했다. 현재 시민단체에서 민주시민 교육 관련 사업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김홍수(이하 김) 경기 파주 문산수억고 수학 교사이자 고3 수험생 학부모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봉사·환경·에너지 등 융합동아리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배성호(이하 배)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이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훑어봤다. 6학년 학생들이 자신들도 투표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 또 어제 ‘사회참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고1, 2 학생 60여명과 교육 공약을 훑어봤는데 “왜 교육 공약인데 우리들한테 묻지 않고 정하냐”는 학생들의 물음에 공감이 됐다.
김정이(이하 정) 대학교 2학년, 재수생 자녀를 둔 엄마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5, 6학년 때 이렇게 공부만 시켜서는 안 되겠다싶어 ‘갭이어’(gap year,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여행·진로탐색·봉사 등의 활동을 하며 적성을 찾고 진로를 모색하는 기간)를 실시했다. 충분한 놀이의 시간을 줬다. 1년 간 학교를 빠져나왔던 그 시간이 아이들에게 자기주도적 삶, 리더십 등의 면에서 긍정적이었다.
김윤희(이하 윤·가명) 연세대 심리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평범한 대학생이다. 지금까지 학교 교육을 줄곧 받아왔고, 앞으로도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 교육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슬기(이하 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라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선공약을 담당하고 있다.
Q. 교육에 관해 어떤 후보의 공약이 눈에 띄나
허 안철수 후보의 공약이 가장 와닿는다. 교육부 폐지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해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향후 10년 간의 교육계획을 합의한다는 부분,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제도가 일관성을 유지될 수 있게 하겠다는 부분이 좋았다. 주변의 학부모들도 ‘제발 교육제도 좀 바꾸지 말라‘고 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정 안철수, 심상정 후보가 교육정책을 가장 깊이 있게 고민하고 제대로 다뤘다고 생각한다. 교육 문제 해결 위한 답은 지역분권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좋은 교육감이 선출돼서 지지대를 만들어왔다. 그 안에서 혁신학교 등 새 흐름이 생겼다. 안 후보의 ‘교육부 폐지’는 상징이다. 중앙통제적이고 전체적인 하나의 원칙으로 교육을 끌지 않겠다는 생각이 보인다. 교육에서 학부모, 학생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변화의 주체는 교육공무원이다. 교육공무원 직무의 범주를 확실히 안정화시키고 권한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 그건 심상정 후보만 노동기본권으로 디테일하게 다뤘다.
김 교육 공약을 보며 우리 교육 관련 미래가 있을까 싶었다. 어떤 후보는 한 달 남았는데 공약도 없다. 하지만 5년 후면 또 바뀐다.
윤 문재인 후보가 예체능 교육을 학과 교육 비중 이상으로 늘린다는 공약이 눈에 들어왔다.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예체능 시간이 줄어든다. 나도 공부를 잘하는 데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예체능을 학과 수업 이상으로 확장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배 국내총생산(GDP) 대비 6-7%의 교육 예산이 확보돼야 공약이 빌 공(空)자 공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설 수 있다. 많은 국민들이 사교육비로 휘청이는 교육 현실에서 공교육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렸으면 좋겠다.
오 공약들이 우리 사회에서 몇 년째 교육에 관해 제시된 내용들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것 같다. 대학 졸업을 안 하면 삶의 질이나 사회적 위치가 완전히 달라지는 상황에 대한 해법이 없으면 답이 없는 셈이다.
박 교육 정책은 후보들이 공약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선 이후 국민적 합의로 ‘선당선, 후공약’을 하면 좋겠다. 공약은 대선 기간에 필요한 내용을 집약해 실효성이 없거나 현실성이 없는 경우도 많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공약은 신중해야 한다. 교육공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어 역설적으로 이야기한거다.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검증하는 <한겨레> ‘2017 시민정책오디션’ 참석자들이 지난 6일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교육’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홍수·박병수·오준호·허영림씨,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진행), 김정이·배성호·이슬기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Q. 대입 전형에서 수능보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강화하는 게 맞는 방향인지? (※학생부종합전형: 교과성적과 수상·동아리활동·자기소개서 등 비교과성적을 합쳐서 평가. 학생부교과전형: 교과성적 중심으로 평가)
허 엄마 입장에서 볼 때 학생부 성적은 외워서 나오는 거다. 수능은 암기로 치를 수 있는 시험이 아니다. 학교 내신 평가와 수능 평가가 같아야 하는데 그게 다르다. 우리 아이는 그것 때문에 힘들어한다.
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학생부, 수능 뭐가 좋다고 꼽을 수 없다. 둘 중 하나를 없애는 건 아닌 것 같고, 둘 다 놓고 각자 자기에게 맞는 전형을 찾아야 가야한다. 나도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학생부교과전형으로 지원한 적도 있다. 학교 내신 공부와 수능은 엄연히 다르다. 둘 다 동시에 점수를 잘 받기 힘들다. 내신에 잘 맞는 학생이 있고, 수능에 잘 맞는 학생이 있다. 수능은 사교육을 안 받으면 점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문제 푸는 스킬이 필요한데, 사교육에서는 그 스킬을 가르친다.
오 학종을 강화하면 사교육이 줄어들까. 학종이 강화되면 또 ‘학종 맞춤형 상품‘이 개발된다. 이제는 학부모들이 학종 때문에 힘들어한다. 대학의 서열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김 지방에 있는 우리 학교 학생들은 실제로 학종으로 대학 많이 간다. 학종이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수능이라면 국어·영어·수학 중 수학만 내가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학종이면 내가 수학뿐 아니라 동아리를 통해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다.
이 학종은 사교육 활용 등 불공정성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학부모들이 학종이 부담스럽다고 하는 건 학교에서 할 수 없는 게 많아서다. 경시대회, 소논문 등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 내에 동아리나 학교 수업이 활성화 되는 부분 등 장점이 있다. 의욕있는 교사들이 자기 수업을 갖고 아이들을 끌어가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학부모도 반갑게 생각한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수능이 사고력 보는 것도 있지만 그건 획일적이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고들 하는데, 수능이 더 금수저 전형이다. 많은 연구를 보면 사교육 많이 받고 집안 좋은 학생들이 학종보다 수능을 잘 본다.
Q. 학제 개편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윤 안철수 후보가 학제를 전면 개편한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6-3-3학제로 살아왔다. 그런데 너무 혁신적이라 위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래야만 바뀔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오 나는 6-3-3학제가 좋으냐, 5-5-2학제가 좋으냐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대학입시가 모든 교육 이슈의 블랙홀이 되는 현실에서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절대적 위상을 바꾸는 방향으로 학제 개편이 이뤄져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공부하게 만든다. 15, 16살이 되면 사회에 필요한 공부 마치고, 직업을 택하든, 공부를 택하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지금은 대학까지 마치고 20대 중후반까지 의무나 다름없는 교육제도에 묶여 있다. 시민의 공통적 수준을 맞춰주는 기본 교육은 누구나 경쟁 없이 하도록 제공돼야 한다. 그 다음 대학을 가는 것은 옵션이 되면 좋겠다.
허 학제 개편에 찬성한다. 중2 엄마로서의 경험에 비춰볼 때 중학생 시기는 뭔가 시키는 걸 하기 싫어한다. 3년을 허송하는 것 같다. 이제 뭘 할지 좀 찾으려고 하면 고등학교 가서 공부만 해야 상황에 처하게 된다.
Q. 교육정책 공약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배 어린이와 청소년을 미래, 희망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아이들에게 ‘대학 가면 달라진다’고 한다. 그 함정은 ‘현재를 유예시킨다’는 거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도 동시대 시민이다. 진정한 교육 정책은 ‘지금’, ‘현장’의 목소리, 당사자 목소리를 끌어 안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에서 초등학생도 교육공약을 입안하는 토론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 교육 정책이야말로 전국민이 걸린 문제다. 향후 10년간 방향과 지침을 만들면 좋겠다. 또 예산을 주되 간섭하지 않는 방향이면 좋겠다. 교육에 있어 학부모·학생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변화의 주체는 교육공무원이다. 교육공무원 직무를 확실히 안정화시키고 권한을 부여하는 게 필요하다.
박 국민교육위원회를 만들어서 집단지성을 모아야 한다. 국가가 책임지고 횟수에 상관없이 최소 1만번 이상 회의를 열어 그 결과가 모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땜질식 처방이 될 수밖에 없다.
배 박 선생님 말씀에 동의한다. 동료 교사들과 이번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동료 교사들은 “현장 모르는 연구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딱잘라 말했다. 학교 내에서 국정교과서로 그렇게 혼란 겪었는데도 공약에 너무 내용이 없더라. 얼마 전 <문화방송>(MBC)의 ‘무한도전’ 프로그램에서 국민 목소리를 담아내 제도화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런 식으로 공약에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1976년 독일의 ‘보이테스바흐 협약’(교사에 의해 강압적인 정치적 교화를 금지하고, 논쟁적 주제를 회피하지 않고 토론하고, 판단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한다는 내용)을 모델로 삼을 수 있다. 독일은 당시 혼란기였다. 이 때 보이테스바흐 지역에 수많은 교육관계자들이 모였다. 여야 정치지도자도 모두 모였다. 여기서 만들어진 원칙이 있다. 첫째, 논쟁성의 재현. 사회적 이슈에 대해 학생도 이야기 한다. 둘째, 교사가 생각을 주입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학생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한다이다.
Q. 교육 정책과 관련 반드시 하고 싶은 말씀은?
윤 ‘1’이라는 숫자만을 위해 공부하는 10대들을 보면 슬프다. 나도 그렇게 해서 대학에 왔지만 정작 청소년 시기는 가장 순수하게 꿈꾸고 배울 시기 아닌가. 그런데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고 있고는 거 같다. 또 요즘 창의력이 강조되면서 창의 인재 뽑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걸 대학에서 평가하는 것도 웃긴다. 심지어 창의력까지 가르치려고 한다.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닌데. 주변에도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해서 대학 온 애들 많다. 나중에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나도 그런 편이다. 대학 보다, 꿈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 교육 정책에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진 게 문제다. 청소년, 대학생 등 교육 당사자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한다. 교육 정책에서 이들에 대한 소외가 극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교육 현장의 교사들도 이런 대선 후보들의 공약 만드는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학부모들도 참여해야 한다. 그러면 이런 공허한 공약 안 나온다. 대선 후보들의 교육 공약 담당자 모아놓고 교육 담당자들이 질문하고 정책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허 획일화된 교육에 반대한다. 우리 아들은 글을 매우 잘 쓴다. 발표도 잘하고 진짜 똑똑하다. 수행평가도 만점이다. 그런데 객관식 시험을 보면 소나기가 내려 성적이 안 좋게 나온다. 학원가는 애들을 못 따라 간다. 지금의 입시전형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이 크다. 우리 아이와 같은 학생들에게도 길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 언론도 후보들이 공약을 낼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 교육문제를 시리즈로 다루면 좋겠다. 그러면 후보들이 공약을 만들 때 단편적인 생각이 아니라 평소의 구상해 제대로된 공약을 내놓지 않을까 싶다.
배 상상력을 키워보자. 프랑스 같은 나라는 교과서 삽화를 그 나라 최고의 작가가 그린다. 우리도 전체주의적인 국정교과서를 만들지 말고 아이들이 보는 교과서를 최고로 만들어야 한다. 또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가 기억난다. 스웨덴 15살 소녀와 우리나라 15살 소녀의 생활을 비교해서 보여줬다. 스웨덴 소녀는 변호사가 되겠다고 하면서 고등학교를 체육고로 갔다. 왜 체육고로 가냐니까 변호사 되려면 체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반해 한국 소녀는 독서실을 다녔다. 새벽 2시까지 공부했다. 한국의 수많은 청소년들이 힘들다. 이 아이들이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걸 중심으로 두고 고민 하자. 그러면 지금처럼 공약의 선명성 경쟁으로 끝나지 않고 진정 아이들을 위한 공약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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