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2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날은 지난 2011년 닻을 올린 ‘박원순 정치’의 고빗사위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위한 예비후보 등록 첫날인 26일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3%대 아래까지 추락한 지지율 때문이다. 박 시장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연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노력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 시장은 지난 2011년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를 계기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난 뒤 10·26 재보궐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의 ‘아름다운 양보’를 받으며 화려하게 정계에 입문했다. 취임 초 20조원에 육박하던 서울시 채무를 크게 줄이면서,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때 신속한 대처와 과감한 결단력을 보여주며 한국갤럽이 같은 해 6월9~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7%를 받아 여야 대선주자 후보군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누리집 nesdc.go.kr 참고). 그러나 이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 악재를 맞으며 완만하게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박 시장이 결정타를 맞은 건 역설적이지만 지난해 11월 ‘촛불 정국’에 들어서면서다. 박 시장은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대규모 인원이 모일 것에 대비해 화장실 개방을 늘리고 대중교통을 증편하는 등 시민들의 불편 해소와 안전관리에 힘쓰며 서울시장의 역량을 십분발휘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탄핵을 앞장서 외친 이재명 성남시장의 ‘사이다’ 발언에 밀려 큰 빛을 보지 못 한 채 지지율 5%대의 하위권 주자로 밀려났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정감에 있어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보다 약하고, 공격적인 면에선 이 시장보다 약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떨어진다”며 안타까워하는 소리가 나왔다.
박 시장 쪽에선 “1월말까지 지지율 10%대를 회복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1위 주자인 문 전 대표를 겨냥해 ‘친문패권’ 문제를 지적하며 공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지율은 계속 추락해 박 시장은 이번달 한국갤럽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 후보군에서 제외되는 굴욕을 겪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선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똘똘 뭉쳐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그런데 온건 중도진보의 모습을 보였던 박 시장이 갑자기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문재인을 청산하자’고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억지로 안 맞는 옷을 입은 것으로 비쳐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시장의 불출마 선언이 ‘야권 공동정부 구성을 위해 공동경선을 실시하자’는 자신의 제안이 당 지도부에 의해 거부된 데 대한 반감의 표출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박 시장은 전날 밤 대선 불출마를 최종 결심한 뒤 일부 가까운 당내 인사들에게 결심을 전했으나, 추미애 대표 등 당 지도부에는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다. 박 시장의 탈당설이 나오기도 했지만, 박 시장은 “(불출마 선언은) 당의 경선 규칙 결정과는 관계가 없다. 국민의 염원인 정권교체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 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선을 포기한 박 시장은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을 안전하고 시민들이 행복한 세계 최고의 글로벌 도시로 만들어 서울시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 쪽에선 “지금 그런 걸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손을 내젓고 있지만,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부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선을 포기하면서 경선룰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대신 ‘성찰과 단련의 계기로 삼겠다’고 솔직히 준비 부족을 인정하면서, 정치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열어뒀다”고 평가했다.
박 시장은 불출마 선언 뒤 서울시청 기자실을 찾은 자리에서 “짧지만 지난 몇달간 너무 긴 여행을 했던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서울시장 두번을 어렵지 않게 됐던 것 때문에 정치라는 걸 잘 몰랐던 것 같다”며 “그동안 확인한 민심을 성찰하고 추스려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애 하어영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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