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한결같았습니다. 9일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위 7차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 말입니다. 20명 가운데 고작 4명이 나왔습니다. 그마저도 2명은 동행명령장이 발부되고 나서야 마지못해 오후에 나왔습니다. 나왔으면 말이라도 제대로 하면 좋을 텐데 ‘모르쇠’로 일관하니 청문회장에서는 고성과 한숨이 계속 터져 나왔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마지막’ 청문회를 마무리하며 김성태 위원장은 증인 4명에게 마지막 발언 기회를 줬습니다. 이들이 말을 마치자 김 위원장은 “참 한심하고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남긴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참고인으로 나온 노승일 케이스포츠 부장은 어떤 말을 남겼을까요. 어젯밤 놓친 ‘최순실 청문회’ 마지막 장면들을 소개합니다.
구순성 “보안손님 못 봤다. 청문회, 가족에게 너무 아픈 상처”
구순성 대통령경호실 경호관은 관저 담당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는 경호관이죠. 취임 전부터 근접 경호를 해 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7시간’ 진상 규명을 위해 불렀지만, 그는 “나는 전날 야근을 해 그날 휴무였는데 왜 나를 부른 거냐”며 초반부터 직설적으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에 잔무를 처리하고 점심 때야 집에 도착했다는데, 누구 하나 그에게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는 이가 없어 저녁까지 참사를 몰랐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후에도 동료들에게 세월호 당일 대통령 행적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고 끝까지 입을 닫았습니다. 관저를 들락날락한 최순실씨 등 ‘보안손님’도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 말고는 본 적이 없답니다. 그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왜 이렇게 따박따박 호전적으로 대답하냐”고 묻자 “그런 의도로 물어보는 것 아니냐”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발언에서조차 그는 “(보안손님을) 못 봤으니 못 봤다고 하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가족의 상처를 토로하거나 “개인적으로 세월호 참사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마지막 발언이 되레 국민의 화를 돋우는 이유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에 김성태 위원장은 “참 한심하고 답답하다”고 ‘화답’했습니다.
조윤선 “문체부 신뢰 회복 (안 그만두고) 최선 다해 노력”
마지못해 출석해 마지못해 블랙리스트를 인정했습니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7차 청문회는 아마 그런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는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오전에 출석하지 않았다가 국회의원 3명이 동행명령장을 집행하기 위해 국회를 떠나기 직전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오후에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18번이나 집요하게 묻지 않았다면 과연 그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인정했을까 싶습니다.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 존재만 인정했을 뿐 “본 적도, 작성한 적도, 실행한 적도 없다”며 ‘3단 부정’을 선보였습니다. “혼자 몰랐다면 왕따냐, 바보냐”는 장제원 바른정당 의원의 다소 모욕적인 말에도 “왕따였을 수 있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직원들로부터 지난해 9월 이미 ‘예술인 지원 배제’ 관련 보고를 받고도 왜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에 나서지 않았냐는 의원들의 질의에는 “기관장으로서 직원을 보호해야 하므로 특검처럼 파헤칠 수 없었다”는 이해하기 힘든 답변을 늘어놓았습니다. “당장 장관에서 물러나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조 장관은 마지막 발언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블랙리스트 사태의 핵심이 본인인데 자신이 사태를 마무리 짓겠다는 겁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리를 지키겠다는 모습에서 ‘문체부의 박근혜’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정동춘 “최순실, 동네 아주머니로 봤는데…나도 일말의 책임”
“재단에 쏟아진 많은 의혹 한가운데에서는 더는 업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돼 이사장직을 사퇴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9월29일 정동춘 전 케이(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낸 입장표명문 일부입니다. 하지만 7차 청문회가 열린 9일에도 그는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12일자로 자신을 해임한다는 재단 회의록이 공개됐는데 이는 “조작”이라고 우기기도 했습니다. 정 전 이사장은 최순실씨가 다니던 스포츠마사지센터를 운영하던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최순실을 위해서는 할 일이 없지만 재단을 위해서는 할 일이 남아 있다”며 이사장직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에 국조특위는 정 전 이사장 사임 권고를 결의하고 그에게 선물했습니다. 정 전 이사장은 “심각하게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발언에서 최순실을 ‘동네 아주머니’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정말 ‘동네 아주머니’가 자신을 재단 이사장에 앉혔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남궁곤 “순수한 의도로 한 일…결과론적으로 내 능력 부족”
특혜를 줄 이유가 없었답니다. 정윤회씨의 딸인 것은 알았지만 말입니다. 정유라씨가 자기 실적으로 들어온 거랍니다. 입학이 취소된 지금도 말입니다. 윗선에서 지시한 일도 없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한 일도 아니랍니다. 남궁곤 전 이화여대 입학처장은 김경숙 전 체육대학장에게 정씨에 대해 미리 듣고 2014년 10월 입시 면접위원들에게 “금메달을 딴 학생이 있으니 뽑으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입학처장과 면접위원들은 지시-복종의 관계가 아니”랍니다. 단지 “면접 대상자 중에 금메달리스트가 있다”고만 했답니다. 그는 마지막 발언에서 이 모든 일을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로 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내 능력이 부족했다”고도 했는데, 이 말에선 ‘들키지 않았다면 완벽했을 것’이라는 속마음이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순수한 의도’로 생각해보니 ‘결과론적으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노승일 “국민이 제일 무섭다는 걸 보여주려 용기 내 증언했다”
증인 4명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인물이 바로 참고인으로 나온 노승일 케이스포츠재단 부장입니다. ‘최순실 게이트’ 진상을 드러내기 위해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을 내던진 그에게 청문회 막바지에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를 일컬어 “이번 청문회 가장 위대한 증인”이라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제 카키색 코트를 입은 노승일 증인을 청문회장에서 더는 볼 수는 없겠지만 어디서든 무사히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똑같을 것입니다. 김성태 위원장이 그에게 마지막 말을 청하자 그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이 제일 무섭다는 걸 보여주려 용기 냈다”고 말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그의 ‘안전 귀가’를 위해 국회 경호원을 붙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글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그래픽 강민진 디자이너 rkdalswls3@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