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헌특위가 지난 29일 구성됨에 따라 여야 정치권의 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6개월 안에 개정안을 마련할 방침입니다. 정부 형태나 개헌 시기 등에 대한 의견차가 커서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개헌 과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개헌을 하더라도 이제는 국회가 아니라 시민이 개헌을 주도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시민주도의 개헌’ 모델인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헌법(憲法, constitution)이야말로 최고의 사회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라고 하는 공동체를 어떻게 구성(constitution)할지를 정하는 최고의 법(憲法)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내용을 정할 때는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합의해야 한다. 처음 만들 때는 물론이고 중간에 고칠 때도 구성원인 국민(인민)들의 뜻을 충분하게 모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48년 처음 헌법을 만들 때나 그 이후 9차례 헌법을 고칠 때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제대로 주체가 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최고 권력자 뜻대로 바꾸거나 정치인들끼리 적당히 타협해서 만들었다. 1960년 4·19혁명 뒤에 이뤄진 제3차 개헌이나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제9차 개헌 때 국민의 뜻이 많이 관철되기는 했지만, 이 역시 국민이 주도하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헌법은 엄밀히 말하면 주인은 뒷전에 빠지고 중개사끼리 만든 국가 계약서인 셈이다. 지금도 정치인들끼리만 개헌 문제를 다루려 하고 있다. 새해 1일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국회 개헌특위(위원장 이주영)는 여야 의원 36명으로만 구성됐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사회적 협약인 헌법의 제정이나 개정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정치 엘리트들이 내용을 정하면 국민이 수용 여부만 결정하는 ‘위로부터의 헌법’이었다면 지금은 내용을 정하는 단계부터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아래로부터의 헌법’이 대세이다.
아일랜드는 헌법 개정을 위해 1차로 헌법회의(2013년)에 이어 지난해 시민 대표만으로 구성된 ‘시민의회’를 구성했다. 시민의회 참가들의 모습. 독립적인 국제미디어 플랫폼인 ‘오픈디모크라시’ 누리집 갈무리.
1차 ‘헌법회의’ 땐 시민과 정치인 공동 참여
첫번째 사례는 아일랜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아일랜드는 기존의 국가 운영 방식을 새롭게 고쳐야 한다는 공감대에 따라 헌법 개정에 나섰다. 2011년 총선에서 주요 정당들은 헌법 개정에 시민 참여를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 상원과 하원은 이듬해 ‘헌법회의’(The Convention on the Constitution, 약칭 The Constitutional Convention)를 구성했다.
2012년 12월 첫 회의를 연 헌법회의는 시민 66명과 의원 33명, 중립적인 의장 1명 등 100명으로 구성됐다. 시민 대표가 의회 대표보다 2배가 많다. 시민 대표 66명은 유권자 명부를 토대로 성별, 지역별, 연령별로 무작위 추첨으로 뽑혔다. 중도에 그만둘 경우에 대비한 예비 대표 66명도 뽑았다. 의원 33명(북아일랜드 4명 포함)은 각 정당과 무소속 등 모든 그룹에서 의석 비율대로 선발됐다.
헌법회의에서 다룰 의제는 의회가 결의안에서 정한 7개와 헌법회의가 자체적으로 정한 2개 등 모두 9개였다. 그 내용은 △7년인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줄여서 의원과 맞추는 문제를 비롯해 △18살인 선거연령을 17살로 인하하는 것 △하원 선거구제 개편 △재외 거주 국민에게 대통령 투표권을 주는 것 △동성결혼 허용 △가정 및 공적 활동에서 여성의 지위와 활동을 증대하는 것 △여성의 정치활동 확대 △신성모독죄 삭제 등이다.
헌법회의는 이런 내용에 대한 시민 의견을 받았으며, 회의는 각 지역에서 번갈아 열렸다. 전체회의는 일반에게 공개했으며, 인터넷으로 실시간 중계했다. 헌법회의는 충분한 토론을 거쳐 마련한 헌법 개정 사안 18건을 정부에 제출했다.
정부는 헌법회의의 권고 내용을 그대로 따라야 할 의무는 없었지만, 4개월 안에 가부간에 응답을 해야 했다. 18건 중 대통령 출마자격을 35살에서 21살로 늦추는 것(헌법회의는 대통령 임기 단축 의제를 자체 토론 결과 부결시키는 대신 후보 나이를 낮추는 방안을 마련)과 동성 결혼 허용 등 2건은 의회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 부쳤다. 대통령 출마 나이를 낮추는 것은 국민투표에서 부결됐으나, 동성 결혼은 통과했다. 헌법회의 활동이 활발했지만, 의회에서 보수파의 반발 등으로 최종 성적은 미미했다.
의회의 이런 미온적인 태도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에 2016년 총선 뒤 엔다 케니 총리 등 집권당은 이번에는 ‘시민의회’(The Citizens’ Assembly)를 구성했다. 이번에는 의회 결의안이 아니라 법률을 만들어서 시민의회를 뒷받침했다.
지난 10월 출범한 시민의회의 대표는 헌법회의와 마찬가지로 100명이지만, 정치인들은 빠지고 전원 시민으로 구성됐다. 99명의 시민 대표는 무작위로 선발됐고, 의장은 연방대법원 판사가 맡았다. 이들은 앞으로 1년 동안 활동하면서 낙태와 국민투표, 인구 고령화 대책, 기후 변화, 선거일 고정 문제 등 주요한 정치 사회적 사안을 다루게 된다. 시민의회는 모임 때마다 전문가 설명과 질의응답, 찬반 토론, 원탁 협의를 거쳐 전체회의를 연다. 진정한 숙의 과정을 거친 뒤 토의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는 방식이다. 전체회의는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며, 웹사이트를 통해서는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접수한다. 낙태 문제에 대한 시민 제안은 1만3천건이나 들어왔다.
시민의회는 헌법 개정 내용을 의회에 제출하고, 의회는 이를 논의한 뒤 국민투표에 부쳐서 최종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법률에 의한 행위인 만큼 의회에 대한 구속력이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도 따라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모델”(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이라는 게 유럽 지식인의 평이다.
아이슬란드 2009년 시민들 주도로 헌법 개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국민의회’를 구성했다. 이에 자극받은 아이슬란드 의회는 시민 대표로 구성된 ‘헌법의회’(나중에 헌법심의회로 변경)를 구성해 헌법 개정안을 만들도록 했다. 사진은 국민회의의 토론 모습. ‘국민의회 2009’ 누리집 갈무리
아이슬란드, 의회가 민 ‘헌법의회’
시민 참여형 개헌은 아일랜드에 앞서 아이슬란드에서 먼저 시작했다. 세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아이슬란드 역시 헌법 개정 등 국가 대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냄비 등 주방기구를 들고 시위(주방 혁명)를 벌인 끝에 집권세력을 쫓아낸 시민들이 주도했다.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2009년 독자적인 ‘국민의회’(The National Assembly)를 구성했다. 국민의회는 각계 대표 1500명으로 구성됐으며, 개헌 안건을 선정해 토론을 진행했다. 이들은 천연자원 공유화와 대통령 및 장관의 권한 제한 등을 의견을 모았다.
총선으로 새로 집권한 ‘사회민주동맹’ 정부는 이에 자극받아 ‘국민포럼’(National Forum)과 ‘헌법의회’(Constitutional Assembly)를 공식적으로 구성했다. 국민포럼은 인구비례에 맞춰 950명의 시민들로 구성했으며, 국민의회에서 다뤄진 것을 포함한 주요한 헌법 이슈를 토론했다. 국민포럼이 국민적 토론에 주안점이 두어졌다면, 헌법의회는 법적인 기구로서 실질적인 개헌안 조문작업을 맡았다. 25명의 헌법의회 위원들은 2010년 11월 전국적인 선거를 통해 뽑혔다.
하지만 보수적인 대법원이 일차적인 암초였다. 대법원은 투표 과정의 몇가지 문제를 들어 2011년 초 헌법의회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에 아이슬란드 의회는 헌법의회를 ‘헌법심의회’(Constitutional Council)로 바꿔서 같은 임무를 부여했다. 위원도 대부분 그대로였다. 헌법심의회는 국민의회와 국민포럼에서 논의된 결과를 반영한 개헌안을 2011년 7월 마련해 의회에 제출했다. 이렇게 나온 개헌안은 2012년 국민투표도 통과(찬성 66.3%)했다.
하지만 개헌안은 최종 관문인 의회에서 좌초됐다. 보수 야당인 독립당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의회 표결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2013년 총선에서 보수파가 승리함으로써 시민 주도로 만들어진 아이슬란드 개헌안은 추진 동력을 잃었다. 지난 10월 총선에서 아이슬란드 해적당 등 이 개헌안을 살리겠다고 약속한 세력의 약진이 예상에 미달됨에 따라 개헌안이 상당 기간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세력 간의 갈등으로 마무리에 실패하긴 했지만, 아이슬란드의 사례 역시 개헌 과정에 영감을 주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 역시 ‘시민참여형 헌법’의 전형적인 모델로 손꼽힌다. 백인의 식민지배와 인종차별 정책으로 20세기 내내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졌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91년 백인 정부가 인종차별정책을 철폐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다수 흑인과 소수 백인이 함께 사는 공동체를 건설해야 하는 과제를 앞에 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백 세력 간에 2년에 걸친 협상 끝에 헌법 개정 절차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1994년에 헌법을 만들 ‘헌법의회’(Constitutional Assembly)가 구성됐다. 490명으로 구성된 새 의회는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민 참여를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마련했다. 모든 구성원을 망라하는 ‘포괄성’과 누구나 개헌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접근성’, 정보를 공개하는 ‘투명성’ 등 3가지를 헌법의회 운영의 원칙으로 정했다. 모든 회의를 공개했으며, 국민들의 제안서를 비롯해 의회의 토론 내용, 결론에 관한 모든 자료도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다. 헌법 규정에 대한 초안이 나올 때마다 공개해서 각계각층의 의견을 다시 수렴했으며, 법 조항은 일반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용어로 썼다. 이런 과정에만 또다시 2년이 걸려, 마침내 1996년 새 헌법이 성립했다.
“우리도 별도의 개헌 시민기구를”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은 그 내용에 있어서도 미래헌법의 모델이다. 헌법 제1장 1조의 내용은 이렇다. “하나의, 주권을 가진, 민주적 국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다음의 가치에 기초해 있다. 인간의 존엄, 평등의 성취, 인간의 권리와 자유의 신장, 반인종주의 및 반성차별주의, (후략)”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가장 먼저 앞세우고 있다.
나라마다 역사와 사회적 상황과 환경, 절차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헌법 개정 또는 제정 과정에 공통된 것은 구성원인 시민이 주체였다는 점이다. 헌법 개정 논란이 일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권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가 개헌 과정에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고 유도한 것은 민주주의를 본질적으로 진전시킨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개정 절차는 헌법대로 하더라도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별도의 법률을 만들어 이런 기구를 한시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도 “사회적 약속인 헌법을 고치는 일을 정치인끼리만 하는 것은 안 된다”며 “별도의 시민의회를 만들어서 국회 개헌특위와 함께 헌법 개정 작업을 하도록 하는 등 시민의 의견을 직접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헌민회’를 제안했다. 선거권이 있는 국민 중 3600명(지역 대표 1800명, 영역 대표 840명, 계층 대표 960명)을 무작위 추첨으로 뽑아서 이들에게 개헌 작업을 맡기자는 것이다. 이런 의견들에 대해 우리 국회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촛불 시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