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변혁을 위한 개헌추진회의' 간담회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세균 국회의장은 23일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가 주최한 개헌 공청회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국민주권회의’는 김원기·임채정·김형오·정의화 전 국회의장, 이상수·김두우·박형준 등이 이끌어가는 개헌 단체다. 정략적 색채가 옅은 편이다.
정 의장은 “내년부터 국회 개헌특위가 가동되면 개헌이 반쯤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 개헌특위는 구성 이후 실질적으로는 활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차기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둘째, 원내 1당으로 올라선 민주당이 개헌론에 불이 붙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전 20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개헌 찬성 의사를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레임덕에 들어가고 차기 유력주자는 존재하지 않던 특수한 상황 덕분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느닷없이 개헌 카드를 들고나왔다. 최순실 국정농단 물타기 용도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환영했다. 친박 주류뿐만 아니라 비박 김무성 의원 등도 반색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움츠러들었다. 개헌추진 모임을 이끌던 원혜영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제의로 시민사회와 야당에서는 개헌 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말했다. 정치인과 정당의 모든 행동은 정략적이다. ‘순수한 개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정략은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안 된다.
정가의 개헌 움직임은 크게 두 가닥이다.
첫째, 새누리당 친박 세력과 신당 세력이 추진하는 ‘정계개편용 개헌론’이다.
23일 아침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국가변혁을 위한 개헌추진회의’가 열렸다. 이주영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의원 모임이다. 정우택 원내대표와 원내대표 선거에서 패한 뒤 탈당을 선언한 나경원 의원이 같이 참석해 차례로 인사말을 했다. 김무성 전 대표도 모습을 드러냈다. 당이 쪼개지는 상황에서도 ‘친박’과 ‘비박’은 개헌을 고리로 전술적 제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원내대표 당선 직후 인사말에서 “개헌정국을 우리가 이끌어서 내년에 좌파 정권, 진보좌파가 들어오는, 집권하는 이것을 여러분과 함께 반드시 막아내도록 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파탄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친박세력이 개헌을 통해 정권을 계속 잡겠다는 것이다.
김무성 전 대표도 자신의 의도를 구태여 감추지 않는다. ‘친박과 친문을 제외한 세력’이 개헌을 명분으로 제3지대에서 대안세력을 만들어 집권하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개헌보다는 정권연장이 목표인 것이다.
정계개편용 개헌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지금 즉시 개헌을 해서 내년 선거를 새로운 헌법으로 치르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개헌은 고리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 문재인 전 대표를 제외한 대부분의 야권 주자들은 ‘코멘트용 개헌론’에 머물고 있다.
개헌에 가장 적극적인 손학규 전 대표는 정계복귀의 명분을 개헌에서 찾고 있다. 개헌의 동력을 이어가야 정치를 계속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소리는 크지만 실효성은 별로 없다.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등은 차기 대선 유력주자로서 개헌에 대해 이런저런 언급을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실제로 개헌을 추진할 힘도 없고 이유도 없다.
새누리당과 야권 대선주자들의 개헌 공세에 문재인 전 대표는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전 대표가 개헌에 소극적인 이유는 임기 5년의 단임제 대통령이 되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개헌론으로 여야 대치 전선이 흐트러지면서 정권교체가 안 될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그의 참모들은 개헌에 대해 지나치게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지 말 것을 주문했지만 문재인 전 대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을 어긴 것이 문제지 헌법이 왜 문제냐”고 버티고 있다. 임기단축 개헌 공약에 대해서도 문재인 전 대표는 “의원내각제를 전제로 하는 얘기”라고 반대하고 있다. 팽팽한 대치 국면에서 밀릴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당내 경선이 시작되면 문재인 전 대표도 개헌의 내용과 일정을 자세히 밝힐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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