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19일 오전 경기도 이천의 조류독감(AI) 거점소독시설을 방문해 현황을 파악하고 공무원과 방역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 지 19일로 11일째를 맞았다. 그간 황 권한대행은 적극적인 민생행보를 이어가는 한편 국회와의 마찰도 피하지 않는 ‘저돌성’까지 보였다. 지난 2004년 3월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고건 총리가 보여준 낮은 자세와 전혀 다른 모양새다. 정치권 원로와 전문가들은 “황 권한대행도 박 대통령 탄핵에 책임이 있다. 보다 낮은 자세로, 선량한 관리자의 모습으로 탄핵 정국에 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 황 권한대행도 탄핵에 공동책임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장관(2013년 3월~2015년 6월)을 거쳐 국무총리(2015년 6월~현재)로 일해왔다. 박 대통령이 탄핵에 이르기까지, 그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지난 17일 촛불집회에서 황 권한대행의 동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 이유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박근혜 정부가 저리 된 데 대해 황 권한대행도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라며 “그런 정황을 고려하면 근엄하고 오만하게 굴지 말고, 좀 더 겸손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황 권한대행 본인도 국정농단 사태에 방조 내지 종범으로 책임이 있다”며 “권한대행에 머무르지 않고 대통령 행세를 하는 건 자기 분수를 모르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정운찬 전 총리는 “대통령이 탄핵됐다는 것은 총리도 함께 탄핵된 것과 마찬가지”라며 “대통령이 직무정지되고 총리를 바꿀 수도 없는 상황에서,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할 황 총리는 최소한의 일을 야무지게 해야 한다. 그 이상의 것을 하려고 하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 야당과 주도권 다투려 하나 황 권한대행이 총리가 아닌 ‘대통령 권한대행’ 신분임을 내세워, 야당과 맞서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갈등 상황을 최소화하면서 이것을 수습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지, 자꾸 덧내는 행동을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며 “어떤 동기에서건 박근혜 대통령으로 인해 유사 이래 전례 없는 혼란에 빠져 있는데, (정치권과) 갈등을 키우는 행동을 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의장도 “국정중단 사태에 대해 새누리당 책임론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국회의 중심은 야당일 수밖에 없다”며 “국정운영의 협조를 구하더라도 야당에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전 의장은 이어 “야 3당이 합동 회동을 하자는데, 개별 회동을 하자고 역제안하는 건 순수하지 못하다”며 “야당을 분열시키고 그 틈을 이용해 자기 주도권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잘못은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밀실에서 권력을 사유화한 것”이라며 “탄핵으로 정치의 중심이 청와대에서 국회로 왔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국회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 마사회장 임명이 시급한 인사? 지난 16일 공석 중인 한국마사회장 임명을 시작으로 황 권한대행은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권까지 적극 행사할 뜻을 밝혔다. 야 3당은 “국정현안에 대한 협치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를 두고 김형준 교수는 “국회에 양해를 구해 시급한 공공기관장 인사를 하면 누가 비판할 수 있겠느냐”며 “국회와 그런 정지작업 없이 인사권을 행사하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나선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물려받은 (대통령의) 권한을 다 행사하겠다고 하지만, (2004년 3월 탄핵 당시) 고건 전 총리는 매우 조심스럽게 최소한으로 권한을 행사하려고 했다”며 “인사를 해야 할 자리를 반드시 공석으로 둬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마사회장이 꼭 그리 시급한 자리인지는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임 전 의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부 공무원이라면 모를까, 공기업처럼 국정운영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는 기관의 기관장을 지금 임명할 필요가 있느냐”며 “특히 마사회 같은 곳은 대행체제로 운영할 수 있고, 전혀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인사를 서두른 건 자기 과시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꼬집었다.
■ 사드·국정교과서 등 차기 권력에 맡겨야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사드 배치 등 쟁점 현안에 대해 황 권한대행은 ‘뒤집을 수 없으므로 그대로 현상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지금 진행하든지 또는 다음 정권으로 보류하겠다든지 선택하는 건 권한대행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반면 정 전 총리는 “국정교과서는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안 한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사드 배치 문제도 국론이 분열된 상황이다. 국론이 분열돼 있으면 추진을 삼가야 한다. 국민 마음 거스르는 일을 하려고 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은 “권한대행을 잠깐 맡고 있는 사람이 갈등을 키울 수 있는 문제를 자기가 결정짓겠다고 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은 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며 “지금 상태로 멈춰두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 선출되는 권력에게 마무리를 맡겨야지, 탄핵 당한 대통령이 추진하던 정책을 강행하려고 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최혜정 이세영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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