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조기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야권 대선주자들이 곳곳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 시장은 12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비상시국에, 배고프고 정신 없고 이럴 때, 사이다와 고구마를 주면 사이다 먼저 먹는 게 맞다”고 말했다. 탄핵정국을 거치며 ‘고구마’(답답하지만 든든하다)로 비유되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비해 ‘사이다’(한때 뿐이라지만 시원하다)같은 자신이 리더로서 더 적임자임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이 시장은 “(대선 승리를 위해) 팀플레이를 해야 된다. 서로 인정하고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그리고 누가 엠브이피(MVP)가 될지, 즉 최종승자가 누가 될지는 국민에게 맡겨야 된다”며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의원의 우산으로도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는 “‘원순 형님’(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국민승리의 길을 가겠다”라고 한 10일 페이스북 메시지와 맞물리며, 향후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후발 주자들과 ‘연대’할 뜻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됐다. 현재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 시장이 당내 경선에 ‘결선투표제’ 도입을 염두에 두고 ‘비문(재인) 후보’ 규합에 나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은 2012년 대선 당시 ‘결선투표제’를 도입했으나, 민주당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결선투표 규정이 삭제됐는데, 향후 경선룰 세팅 과정에서 이를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후보 진영에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특히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날 “안희정·박원순·김부겸·이재명이 한 우산, 한 팀이 되려면 그에 걸맞는 대의와 명분을 우선 말해야 한다”며 “대의도 명분도 없는 합종연횡은 작은 정치이고 구태정치다. 오로지 자신이 이기기 위한 사술로 전락할 것”이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재명 시장은 논란이 되자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팀원들이 각자 분발하자는 취지이지 문 전 대표를 배제하자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여야를 통틀어 지지율 1위를 지키고 있는 문 전 대표는 이날도 탄핵 국면에 드러난 촛불민심을 받드는 행보를 이어갔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저녁 서울 마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촛불과의 대화’에 참석해 “지금 촛불시민의 요구는 단순히 박 대통령의 퇴진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대통령의 퇴진을) 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때까지 절대로 마음 놓지 마시고, 그것은 정치가 할 일이라고 미루지도 마시고 처음 우리가 시작했듯이 끝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협력적 경쟁 관계가 야권 전체의 파이를 키울 것’이라는 짐짓 여유있는 기조 아래‘조기대선’과는 거리를 둔 채, 촛불민심을 이어가는 것에 매진하는 모양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역시 이날 헌법재판소에 자신이 길거리에서 받은 박 대통령 탄핵 찬성 서명서를 제출하며, 촛불민심과 함께 하는 정치인이라는 면모를 과시했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안 전 대표와의 ‘제3지대 연대’ 가능성에 대해 이날 <교통방송>(tbs)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에게) 제3지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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