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국면을 통과하며 야권 대선주자들의 경쟁구도가 재편되고 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변방의 장수’에 불과하던 이재명 성남시장이 가파른 추격세를 보이며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을 위협하고 있는 양상이다.
야권 대선주자들에겐 ‘호재’라고 할 수 있는 탄핵국면에서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아든 건 이 시장이다. 이 시장은 두 달동안 10%포인트에 가까운 지지율 상승을 기록하며, 문 전 대표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함께 ‘3강체제’에 안착한 듯한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4월, 한국갤럽 여론조사의 대선 주자 후보군에 처음 이름을 올렸을 당시 지지율이 고작 1%였다는 걸 생각하면 가히 ‘돌풍’이라고 할 만하다.
문 전 대표와 가깝지 않은 쪽에선 이 시장의 선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11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시대정신’이라고까지 말하긴 그렇지만 이 시장이 ‘시대감각’을 읽어낸다”며 “이 시장 지지율이 앞으로 문 전 대표보다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최근 각종 자리에서 “민심을 빨리 읽는다”며 이 시장의 정치적 감각을 호평하고 있다. 문 전 대표 쪽에선 “당내 협력적 경쟁구도가 부각되는 게 결과적으론 야권의 파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 “탄핵 이후 국정 정상화 과정에선 이 시장의 선명한 이미지보다는 문 전 대표의 안정적 이미지가 중도층에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갈 것”이라는 관측을 하고 있지만, 최근 ‘고구마’(답답하지만 든든하다)-‘사이다’(시원하지만 그때 뿐이다) 비유까지 들며 이 시장의 선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반면 문 전 대표는 이번 탄핵 국면에서 ‘의문의 1패’를 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전히 1위 자리를 지켰지만, 20%대 지지율 정체에 갇혀 이 시장에게 쫓기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문 대표 쪽에선 “1위 주자의 행보에 실리는 ‘무게’ 탓에 매사 신중할 수밖에 없다. 국민 뒤에 서서 한발 늦게 간다는 기조를 유지했다”고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얻었던 48% 지지율 한계치를 극복하고자 ‘외연확장’에 지나치게 치중하다보니 오히려 ‘집토끼’(지지층)마저 놓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특히 거국중립내각 및 하야 촉구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거나, 야권 유력 정치인들이 모여 탄핵 추진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의 명예로운 퇴진 보장’ 같은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미 대선주자가 다 된 듯 행동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탄핵 국면을 통과하며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 건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다. 야권 주요 정치인 8인회동을 주도하는 한편, 박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촉구하는 거리서명 운동에 앞장서는 등 ‘강철수’의 면모를 보였지만, 지지율은 최고치(4월 갤럽조사 21%) 때보다 반 토막 아래로 떨어졌다. 심지어 지난 9일 갤럽조사에선 10%포인트 격차로 이 시장(18%)에게 밀리면서 3강 구도 밖으로 제외됐다. 강경한 자세를 취하다보니 중도보수 성향의 지지층이 등을 돌렸고, 선명성 측면에선 이 시장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나머지 야권의 주자들은 이번 탄핵국면에서 5%대 안팎의 지지율로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손 전 대표의 경우, 고심 끝에 정계에 복귀했지만 ‘거국내각 총리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뒤로 대선주자로서의 존재감이 더욱 낮아졌다. 하야 투쟁에 거세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박원순 시장이나 ‘안정적 국정혼란 수습’에 방점을 찍었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김부겸 민주당 의원도 탄핵 국면에선 큰 빛을 보진 못 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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