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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정치권 머뭇거릴 때마다 촛불이 앞장섰다

등록 2016-12-09 22:15수정 2016-12-09 22:18

정치적 유불리에 매몰된
기회주의적 여의도 정치
광화문 촛불로 강한 경고
대통령 거짓말 사과때마다
더 거센 촛불로 민심 전달

“제왕적 대통령제 환상깨고
광장서 시민의식 깨우쳐”
“촛불혁명은 21세기 시민이
20세기 후진정치 밀어낸 것”
3일 저녁 서울 광화문 앞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3일 저녁 서울 광화문 앞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국회가 주권자인 국민의 부름에 제대로 응답했다.

2016년 12월9일 오후 4시10분. 정세균 국회의장이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이 찬성 234표로 가결됐음을 선포하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국회 담장 밖에선 시민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투표 시작에서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47분. 학자들은 이 47분의 순간이 내일의 역사책에 “시민 승리”의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이 상황을 “촛불시민에 의한, 국민에 의한 탄핵”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탄핵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들의 힘으로 끌고 왔다”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중요 국면에서 멈칫거리는 정치권을 등 떠밀어 본회의 투표장에까지 세운 건 ‘촛불민심’의 압박이었다. 여야 정당이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며 ‘질서있는 퇴진’이나 ‘개헌’ 쪽으로 우회하려 하고, 박 대통령이 감정적 읍소와 내용 없는 사과로 국면을 돌파하려고 할 때마다, 광장의 촛불은 더욱 거세졌다. 10월29일 토요일, 2만명으로 시작된 촛불은 찬바람과 눈비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232만명(12월3일)의 횃불로 커졌다. 정치학 박사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국민이 저항권을 행사한 덕분에 국회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수백만의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한목소리로 탄핵을 외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번엔 반드시 ‘적폐’와 결별해야 한다는 절박감이었다. 최태욱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는 “전국에 생방송되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이 사회에 뿌리 깊숙이 자리잡은 정경유착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체감했다”며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체제 이후 20년간 계속된 불안과 불평등의 밑바닥에 깔린 폐단을 ‘이번에는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흙수저’로 태어나면 아무리 ‘노오력’을 해도 ‘개천의 용’이 될 수 없는 ‘헬조선’으로 바뀐 데 대한 분노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김호기 교수는 “(이번 탄핵을 계기로) 경제만 성장하면 모든 걸 용인할 수 있다는 박정희 체제에 종언을 고하고,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깨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탄핵 국면에서 커진 촛불민심은 1960년대 4·19혁명과 1987년 6·10항쟁 등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역사콘텐츠학과)는 “광장 정치가 ‘평화적 방법’으로 승리를 이끌어낸 건 세계사적으로도 유례없는 일”이라며 “강한 적과 싸우기 위해 똑같은 목소리를 내기보다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며 다양한 구호를 외친 ‘21세기 시민’들이 ‘20세기 후진 정치’를 밀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들은 이번 계기를 통해 국민들이 스스로를 국가의 부름에 동원되는 존재가 아닌 ‘주권자’로서,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걸 다시금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이번 탄핵 가결로) 국민들은 ‘대통령도 잘못하면 몰아낼 수 있구나’, ‘저렇게 강고하던 새누리당도 국민 눈치를 볼 수밖에 없구나’ 깨닫고 있다”며 “국회도 좀 더 ‘국민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깨어난 시민들이 단순히 박 대통령을 몰아내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이미 전국에선 ‘시민의회’, ‘광장의회’, ‘만민공동회’란 이름의 자발적인 시민모임들이 싹을 틔우고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는) 대의정치 위기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자, 민의가 왜곡될 땐 국민 스스로 바로잡겠다는 선언”이라며 “앞으론 직접민주주의 요구가 더욱 분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진오 교수는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학교, 직장 등에서도 권위주의, 특권·특혜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 제기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봤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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