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2차 청문회는 말 그대로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였다. 최순실씨는 물론 증인으로 채택된 27명 중 절반이 넘는 14명이 갖은 이유를 대며 불참했다. 이날 청문회는 ‘맹탕 청문회’에 그쳤다.
국정농단과 관련한 핵심 증인들은 공황장애(최순실씨)와 섬유근육통(최순득씨), 극심한 스트레스(이재만 전 비서관), 뇌경색 전조증상(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등 ‘건강상의 이유’와 ‘재판·수사 진행 중’(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이라는 이유를 들어 청문회에 불참했다. 심지어는 ‘자녀에게 영향을 미쳐 사생활을 침해’(안봉근 전 비서관)할 수 있다거나, ‘(운영하고 있는) 유치원 학부모 미팅’(최순실씨 조카 장승호씨) 때문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기도 했다.
김성태 국정조사특위 위원장(새누리당)은 “이분들의 불출석을 누가 자유로 보겠나. 인권이란 명분 속에 서슴없이 몸을 숨기는 행위야말로 이제까지 해온 국정농단 인물들이 얼마나 후안무치·안하무인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며, 해외에 있는 정유라·장승호씨, 입원사실증명원을 제출한 이성한씨 등 3명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의 증인에 대해 오후 2시까지 국조에 출석하라는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이날 예정된 시간까지 출석한 이는 장시호씨 한 사람뿐이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그의 장모 김장자 삼남개발 회장은 동행명령장을 들고 간 국회 경위를 피해 행적을 감췄고, 구속 상태인 최순실씨와 안 전 수석, 정 전 비서관 등도 끝내 동행명령장 집행을 거부했다.
최씨 등 핵심 증인들의 잇딴 불출석으로 국정조사는 ‘맹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1차 기관보고 때 김수남 검찰총장을 시작으로, 5일 2차 기관보고 당시에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밝혀줄 청와대의 박흥렬 경호실장과 박배성 수행부장 등이 불참하면서, 특위 활동이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좀처럼 진상 규명의 실마리를 찾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국조특위 쪽은 이날 최순실씨를 비롯해 진상 규명에 반드시 필요한 불출석 증인들을 3~4차 청문회 때라도 다시 부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들의 출석을 강제할 ‘뾰족수가 없는 상황이다. 동행명령장에 응하지 않을 경우, 사후에 국회 모욕죄를 적용해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지만, ‘체포영장’과는 달리 증인을 강제로 데려올 수는 없는 탓이다. 국조특위 관계자는 “최순실씨 등 구속된 사람들은 어차피 현재 재판 중인 다른 범죄 혐의들과 병합해 처벌을 받게 될 테니 안 나가도 손해볼 게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쪽에선 이에 관련법(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에 관한 법)을 개정해 처벌 조항을 강화하는 한편, 국회가 증인에 대해 일정 기간 동안 구금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미국식 ‘의회모독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법의 한계’를 탓하기 전에, 국조특위 위원들이 철저한 준비와 출석한 증인들에 대한 압박 질문을 통해 단 한 가지라도 더 진상 규명의 실마리를 찾는 모습이 잘 안보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날도 야당 의원들은 “모른다”로 일관하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 호통만 칠 뿐 허점을 파고들 ‘팩트’를 내놓지 못해 김 전 실장에게 내내 눌리는 모양새였다. 야당의 한 의원은 “5일 밤 ‘대통령이 태반·백옥·감초 주사를 맞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등 유의미한 발언 등이 나왔는데, 이어서 추가 질의를 하지 않고 예정대로 청문회가 끝나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