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가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2016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막아야 한다며 탄핵에 앞서 ‘총리 추천 선결론’을 고집해온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더이상 ‘선총리-후탄핵’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총리 추천’과 관련한 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 갈등 요인이 제거됨에 따라 야권의 ‘탄핵공조’는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박 비대위원장은 23일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총리 추천 문제로 야권 공조가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이 실망하고 정치권에도 (좋지 않은) 자극이 되기 때문에 일단 우리도 탄핵을 준비하며 26일 촛불집회에 당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국민의당은 ‘선 총리-후 탄핵’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탄핵 절차에 돌입한 뒤에도 야권은 ‘총리 교체’를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방침이지만, 청와대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안팎의 중론이다. 남은 문제는 탄핵안이 가결될 경우 상당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는 ‘황교안 대행체제’의 정치적 리스크를 어떻게 최소화하느냐다. 민주당 주류는 겉으로는 “황교안 체제가 큰 위협이 되기 힘들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다.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식물상태’가 된 상태에서 황 총리가 독자적 운신 폭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박근혜라는 뒷배경 없는 황교안은 허수아비일 뿐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더라도 ‘관리형 총리’ 이상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 공연히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황교안 리스크’를 심각하게 여기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 이건 황교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와 보수세력 전체의 문제다. 박근혜는 황교안을 통해 지속적으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테고, 보수세력도 황교안 체제를 통해 반격을 준비할 텐데 그 리스크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고 했다. 민주당의 한 다선의원도 “황교안의 야심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보수의 구심 역할을 노리고 어떤 무리수를 둘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장관으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방해’하고,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한 황 총리는 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 지난해 6월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야권의 흐름은 ‘황교안 체제’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황교안 대행체제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국면의) 고건 대행 체제처럼 아주 일상적인 업무와 선거준비 업무만 하는 데 그쳐야 한다. 그 이상의 중대한 정책 결정을 하려면 국회와 협의해야 하고, 그렇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한다면 국회에서 탄핵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총리가 주요 직책의 인사권이나 국내외 중대 현안과 관련한 정책 결정권을 행사하려고 나설 경우 이를 제어할 법적 장치를 사전에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대통령 탄핵과 달리 국무총리 탄핵은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만으로 가능하다. 야 3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황 총리가 자신의 행위를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 권한을 정당하게 대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경우 탄핵의 사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황 총리를 제어할 수단이 현재로선 ‘여론의 압박’과 ‘황 총리의 염치’밖에는 없는 셈이다. 전날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무위원 총사퇴’를 요구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법무장관이 사퇴했다고 한다. 헌정유린과 국정난맥을 초래하는 데 책임이 있는 총리는 뭐하고 있나요? 남은 국무위원들도 국민이냐, 대통령이냐는 국민의 물음에 답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세영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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