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에게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는 권한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총리의 권한을 둘러싼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헌법 86조와 87조는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며, 국무위원의 임명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지닌다’고 정하고 있으나, 현재 야당이 요구하는 총리의 권한은 헌법의 규정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새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가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넘겨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야당은 새 총리가 국무위원에 대해 ‘임명 제청’이나 ‘해임 건의’가 아니라 실제로 임면권을 쥐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종 결재 단계에선 대통령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해도, 총리가 직접 고른 인사들로 내각이 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이보다 더 나아가 국무위원뿐 아니라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임명권까지 새 총리에게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박한철 헌재소장의 후임자를 누가 지명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려면, 대통령이 검찰총장의 임명권을 행사해선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새 총리의 정책 결정권한 범위도 쟁점이다. 내치는 국무총리, 외치는 대통령이 맡는 ‘외치-내치 분담론’이 나오고 있지만, 야당은 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내치-외치의 경계가 애매할 뿐 아니라,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대통령이 과연 대한민국을 대표할 자격이 있느냐도 논란거리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내치는 물론, 의전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박 대통령이 새 총리에게 자신의 헌법상 권한을 이양하고 2선으로 후퇴하겠다는 분명한 선언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박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어디까지 총리에게 넘길 것인지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국회가 힘을 실어준 총리라고 하더라도 허수아비에 그치거나, 국정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박 대통령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하더라도 이를 되돌릴 법 규정이 없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불가역적인’ 정치적 선언이 필요하다고 야당은 입을 모은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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